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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인 서시의 고향에 숨겨진 이야기

입력
2024.05.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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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절강고진 ⑩주지, 항저우

명나라 문인화가 당인이 그린 ‘사대미녀도’. 왼쪽부터 왕소군, 초선, 서시, 양귀비. ⓒ최종명

명나라 문인화가 당인이 그린 ‘사대미녀도’. 왼쪽부터 왕소군, 초선, 서시, 양귀비. ⓒ최종명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국 사대미인은 도대체 누가 언제 정했을까? 사료나 고증도 없으니 짐작하기 어렵다. 당나라 양귀비가 가장 늦은 인물이다. 소설 삼국지의 전신인 원나라 대본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에 초선이 등장한다. 명나라 중기 문인화가 당인이 사대미녀도(四大美女圖)를 남겼다. 원나라 후기나 명나라 초기라 추정할만하다. 사대미인 중 기원전 인물인 서시를 만나러 간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미인 서시의 고향, 주지(諸暨)

주지 서시 고향의 사당 입구. ⓒ최종명

주지 서시 고향의 사당 입구. ⓒ최종명

항저우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주지(諸暨)로 간다. 서시의 고향에 사당이 마련돼 있다. 지붕과 문, 담장과 나무, 사자 암수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 단아하다. 장산종령(長山鍾靈)과 완수육수(浣水毓秀)가 적혀 있다. 장산과 완수는 산천이다. 종령육수는 아름다운 환경이 우수한 인재를 잉태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천 년 역사를 대표하는 미인을 배출했으니 그럴싸한 자랑이다.

서시 고향의 사당 '서시전'. ⓒ최종명

서시 고향의 사당 '서시전'. ⓒ최종명

서시는 생몰 기록이 없다.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출신이다. 사기의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을 펼친다. 나라를 되찾으려(反國) 애태우며 생각하고(苦身焦思) 쓸개를 두고 앉아(置膽於坐), 앉으나 서나 쓸개에 의지해(坐臥即仰膽) 먹고 마실 때마다 쓸개를 맛본다(飲食亦嘗膽)는 기록이 있다. 섶나무에 눕는다는 와신(臥薪)은 과장이거나 거짓이다. 상담(嚐膽)을 기획한 범려(范蠡)가 서시를 발굴했다. 둘이 연인이었다는 전설도 있어 드라마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오왕 부차에게 보내졌다. 정사에서 흔적은 없지만 비사로 구전돼 흥미진진한 핏빛으로 그려졌다. 당대 서예가인 류하이쑤가 쓴 서시전 편액이 보인다.

서시 사당의 서시와 물고기. ⓒ최종명

서시 사당의 서시와 물고기. ⓒ최종명

서시는 실 짜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늘 강에서 빨래를 한다. 그가 나타나자 물고기가 모두 헤엄치기를 멈추고 가라앉았다. 비사에 어울리는 상상이다. 실 씻는 완사(浣紗)와 물고기 가라앉는 침어(沉魚)라는 미명(美名)을 받았다. 이백을 비롯해 시인이라 불린 남성은 경쟁하듯 영사시(詠史詩)를 남겼다. 옛 역사를 안주로 감상을 드러낸 시다. 수중의 물고기라도 되려는지 구애가 깊다. 서시가 단정한 미모로 사당에 앉아 있다. 연못에는 입을 벌리고 놀란 물고기가 있다. 시인의 사모곡은 대부분 드러누운 물고기를 닮아 언급하기가 부끄럽다.

서시의 고향인 주지 서시전에 '절대가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최종명

서시의 고향인 주지 서시전에 '절대가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최종명

절대가인(絕代佳人) 필체가 독특하다. 부드러운 선율로 흐르다 말끔하게 매듭짓는 필법이 서시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서시는 실제 얼마나 예뻤을까? 당인은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 누명을 쓰고 평생을 풍류 가객으로 살았다. 서화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사대미녀를 그린 후 소감을 찾아 적었다. 연꽃과 함께 서시를 그린 후 상단에 시 하나를 인용했다.

늦은 저녁 지나 첩첩산중 어둠이 에워싸고(千重越甲夜成圍)
연회 마친 군왕은 취기로 사리분별 못하네(宴罷君王醉不知)
오나라 물리친 공로는 단연 최고라 하겠네(若論破吳功第一)
서시 양성한 보람 황금이 돼 되돌아왔구나(黃金只合鑄西施)

북송 문학가 정해의 '조범려'. 서시에 대한 감상이자 범려에 대한 조소이다.


서시 사당 와신상담 전각의 월왕 구천과 가신 문종, 범려 조각상. ⓒ최종명

서시 사당 와신상담 전각의 월왕 구천과 가신 문종, 범려 조각상. ⓒ최종명

북송 관리이자 문학가인 정해의 작품이다. 서시를 양성한 보람이라 했으니 범려에 대한 조소다. 제목이 조범려(嘲范蠡)다. 사당 옆에 와신상담 전각이 있다. 월왕 구천을 가신인 문종과 범려가 나란히 보좌하고 있다. 둘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다. 문종은 구천 옆에 남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범려는 토사구팽을 염려해 미스터리한 이름인 치이자피(鴟夷子皮)라 개명하고 산둥 땅 도(陶)나라로 떠났다.

서시의 연인? 월나라를 구한 상인 범려

주지의 범려 사당. ⓒ최종명

주지의 범려 사당. ⓒ최종명

북쪽 500m 거리에 범려 사당이 있다. 사마천은 상인의 길을 걸은 범려를 극찬했다. 부호에 대한 기록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 가장 먼저 거론한다. 19년 동안 천금지재(千金之財)를 세 차례나 번 훌륭한 상인의 면모다. 빈곤한 친구와 멀리 떨어진 형제 친척에게 재산을 나눴다고 언급한다. 선행의 뜻을 두 번이나 펼쳤다. 거상의 면모라며 모두가 도주공(陶朱公)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산시성(山西省) 타이구 공가대원의 '도주연'과 저장성 주지 범려 사당의 찬사 비문. ⓒ최종명

산시성(山西省) 타이구 공가대원의 '도주연'과 저장성 주지 범려 사당의 찬사 비문. ⓒ최종명

후대 상인도 범려를 존경했다. 명나라 이후 전국을 주름잡던 산서 상인도 그랬다. 타이구(太谷)의 공가대원(孔家大院)에 걸린 도주연(陶朱緣) 족자를 본 적이 있다. 공자의 후손이자 상인 공상희의 고거다. 범려를 닮고자 했던 마음이 느껴진다.

주지의 사당에도 찬사가 있다. 탐스러운 서체로 내용도 흥미롭다. 주지 출신 서예가 허디페이의 솜씨다. 어렵지 않게 경상비자공치군사손무(經商比子貢治軍似孫武)를 읽는다. 장사 수완은 자공보다 뛰어나고 군대 통솔은 손무와 닮았다는 말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로 상인이다. 손무는 손자병법의 저자다. 두 부문 모두 뛰어난 인물에 대한 예우다.

주지 범려 사당의 '어월성신'과 '대장군' 편액.ⓒ최종명

주지 범려 사당의 '어월성신'과 '대장군' 편액.ⓒ최종명

월나라를 구한 위대한 신하라는 어월성신(於越聖臣)이 걸렸다. 조각상 뒤로 대장군(大將軍)도 보인다. 정치가이자 장군이던 범려다. 왕을 도와 나라를 부흥시켰으며 장사로 돈을 벌어 백성이 재신으로 대우한다는 대련도 붙어 있다. 문무를 겸비하고 정치와 상업에 두루 뛰어났으니 신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기원전 최고의 상인이라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기원후 최고의 상인은 누구일까? 가까이에 있다.

청나라 최고의 상인 호설암 고거

안후이성 지시의 호종헌 조각상. ⓒ최종명

안후이성 지시의 호종헌 조각상.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고거의 면선성영.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고거의 면선성영. ⓒ최종명

북쪽으로 1시간을 가면 항저우다. 휘주 상인 호설암(胡雪巖) 고거로 간다. 명나라 병부상서를 역임한 호종헌과 근대 유명 학자인 후스를 배출한 안후이성 지시(績溪)에서 태어났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조부인 차상(茶商) 호병형도 유명하다. 거상의 피가 흐르는 지역 출신이다.

13세에 항저우로 이주해 입지전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다. 휘주 정신을 대표하는 상인이 된다. 3년에 걸쳐 1875년에 준공한 저택이다. 대문에 걸린 면선성영(勉善成榮)은 선행에 힘써 번영을 성취한다는 말이다. 선(善)에 7획과 8획의 점이 없다. 마침표에 대한 비유다. 끝도 없는 선을 행한 인물이란 극찬인데 동치제의 친필이다.

항저우의 호설암 옛집 백사루. ⓒ최종명

항저우의 호설암 옛집 백사루.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옛집 백사루의 사자상.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옛집 백사루의 사자상.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옛집의 창문. ⓒ최종명

항저우 호설암 옛집의 창문. ⓒ최종명

손님을 접대하거나 회의를 하던 본당은 백사루(百獅樓)다. 건물 기둥 끝에 사자 100마리가 붙어 있다. 고급 목재인 자단으로 꼼꼼하게 조각한 사자가 혀를 내밀고 눈을 부라린 모습이다. 다소 바랬으나 황금빛으로 무장했다. 파란 유리로 치장한 창문도 보인다. 햇살이 비치면 바닥으로 파랗게 반사되는데 흔히 보기 어려운 색감이다. 건축에 사용된 나무도 다양하다. 은행나무와 녹나무도 있다. 동남아에서 가져온 홍목과 남양삼나무도 보인다.

항저우의 약국 호경여당의 호설암 초상. ⓒ최종명

항저우의 약국 호경여당의 호설암 초상. ⓒ최종명

약 500m 떨어져 호경여당(胡慶餘堂)이 있다. 1874년에 설립한 약국이다. 지금껏 유명세가 있어 손님이 많다. 관복 차림으로 머리에 붉은 모자를 쓴 초상화가 걸려 있다. 호설암은 허드렛일로 시작해 3년 만에 정식 직원이 됐다. 은행인 전장을 설립하고 키워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절강순무인 왕유령, 군인이자 정치가인 좌종당과 피로 맺은 인맥을 쌓았다.

간쑤성 자위관 현벽장성에 실크로드를 지나 신장 토벌에 나선 좌종당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최종명

간쑤성 자위관 현벽장성에 실크로드를 지나 신장 토벌에 나선 좌종당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최종명

청나라 말기 민란이 발생해 신장위구르 지역이 불안했다. 러시아가 침입하려는 시도까지 생겼다. 좌종당은 실크로드를 지나 신장 지역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운다. 군비가 필승 요인이었다. 호설암은 상하이의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한다. 좌종당과 호설암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상인이 나라를 구했으니 청나라 조정이 가만있지 않았다. 관복인 황마괘와 주옥이 붙은 모자를 하사했다. 이때부터 홍정상인(紅頂商人)이라 불렸다.

항저우 호경여당의 '진불이가' 편액. ⓒ최종명

항저우 호경여당의 '진불이가' 편액. ⓒ최종명

호설암이 직접 쓴 진불이가(真不二價)가 걸려 있다. 품질이 믿을 만하고 값도 싸며(貨真價實), 노인이나 어린이조차 속이지 않으며(童叟無欺), 시시콜콜 따지는 흥정은 허락하지 않는다(不允許討價還價)는 장사 원칙이다. 나라까지 구한 상인으로 기원후 최고의 상인이란 칭송을 들었다.

청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듯 상인의 운명은 하룻밤 사이에 추풍낙엽이었다. 부자 삼대를 지나기 힘들다 했는데 한 세대도 넘지 못하고 파산했다. 정치인과 상인이 결탁한 정적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1885년 파산과 동시에 생을 마감했다. ‘돼지가 살찌는 먹성을 두려워하듯(豬怕強) 사람은 출세를 두려워할(人怕出名) 일’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이 흔히 속삭이는 속담이다.

사랑이야기 넘치는 서호의 다리

항저우 서호의 단교.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단교. ⓒ최종명

전당강에서 흘러온 호수인 서호로 간다. 아름다운 풍광만큼 러브스토리가 곳곳에 핑크빛을 뿌린다. 당나라 시인으로 항저우 관리를 역임한 백거이가 북쪽에 제방을 쌓았다. 백제(白堤)라 부른다. 앞쪽에 나지막한 다리인 단교(斷橋)가 보인다. 백사전(白蛇傳)의 남녀 주인공인 허선과 백소정이 만난 장소다. 인간이 된 흰 뱀 백소정은 전생에서 생명의 은인인 허선을 만나 배필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항저우 서호의 장교.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장교. ⓒ최종명

동남쪽 장교(長橋)에는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서려 있다. 1995년 영화 ‘양축(梁祝)’으로 알려진 양산백과 축영대가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던 장소다. 가문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죽어서라도 사랑을 이루려 하는지 둘은 무덤에서 솟아 나와 훨훨 나비가 돼 날아오른다.

항저우 서호의 서령교.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서령교.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서령교에 소소소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서령교에 소소소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최종명

단교, 장교와 더불어 3대 정인교(情人橋)라 불리는 다리가 있다. 서북쪽에 위치한 서령교(西泠橋)다. 무덤까지 있으니 그냥 전설만은 아닌 듯하다. 남북조 시대 인물로 재주가 남달랐던 기녀 소소소(蘇小小)가 주인공이다.

소소소는 일찍 부모를 잃었다. 총명하고 감수성이 뛰어나 뭇 남성의 마음을 빼앗았다. 아쉽게도 열아홉 나이로 요절한다. 춘향과 황진이를 섞은 듯하다. 우연히 만난 재상 아들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울적한 마을을 달래다 과거를 준비하는 서생을 만난다. 물심양면으로 격려하고 건투를 빌어준다. 관찰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시를 지어 위기에서 벗어난다. 서생은 과거에 급제해 돌아와 은혜를 갚으려 했다. 둘이 만난 장소에 아담하게 무덤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항저우 서호의 제방 소제.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제방 소제. ⓒ최종명


중국 인민폐에 그려진 항저우 서호의 석탑. ⓒ최종명

중국 인민폐에 그려진 항저우 서호의 석탑. ⓒ최종명


항저우 서호 삼담인월로 가는 배에서 본 풍광. ⓒ최종명

항저우 서호 삼담인월로 가는 배에서 본 풍광. ⓒ최종명

서쪽에 북송 문인 소동파가 세운 제방인 소제(蘇堤)가 있다. 항저우에서 관리로 재임하던 시기 건설했는데 무려 3㎞나 된다. 시원한 호수 바람이 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중간에 있는 부두에서 유람선을 탄다. 서호 제일의 비경이라 할만한 삼담인월(三潭印月)로 간다.

배 위에서 한 아가씨가 인민폐 1위안을 들고 있다. 호수 위 3개의 석탑을 담았다. 소동파가 세운 양식 금지를 위한 표시였다. 현재의 것은 명나라 후기에 새로 만든 석탑이다. 수면 위로 2m 정도 솟아올라 세 군데로 떨어져 호수를 지키고 있다.

항저우 서호의 삼담인월. ⓒ최종명

항저우 서호의 삼담인월. ⓒ최종명


수련이 핀 항저우 서호이 삼담인월 호수. ⓒ최종명

수련이 핀 항저우 서호이 삼담인월 호수. ⓒ최종명

삼담인월은 밭 전(田) 모양의 섬이다. 서호 안에 또 다른 서호라 할 수 있다. 외곽과 가운데로 길이 있다. 나무가 우거져 호수로 푹 내려온다. 정자도 스르르 잠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니 호수도 옷차림을 바꾼다. 꽃잎이 떨어졌는지 솟아났는지 모를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밝은 밤이면 달과 호수, 탑이 서로 비추는 경관이 탄생한다. 까만 밤에 다시 와야 할 듯하다. 석탑에 촛불을 밝히면 하늘과 호수, 탑에 모두 달의 발자국이 닿는다 하니 말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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