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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영수회담 앞 공수처장 지명…야권선 '시기·출신' 견제

2024.04.27 04:30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제2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 판사 출신인 오동운(55·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금성 파트너변호사를 지명했다. 김진욱 전 처장 임기 종료로 공수처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3개월 만이자,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 2명을 추천한 지 두 달 만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지명 발표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수장 없이 '대행 체제'인 데다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지명을 서두르지 않다가 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하기로 결정한 직후 인선 발표를 하면서다. 야권에선 이 대표가 영수회담 때 채 상병 특검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특검보다는 이 사건을 현재 수사 중인 공수처에 힘을 싣기 위한 차원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오 후보자 인선 결과를 발표하며 "신속히 국회에 인사 청문 요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 후보자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부산지방법원 예비판사로 공직에 입문,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 등을 거치며 19년간 법관으로 지냈다.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29일 영수회담 일정을 확정한 직후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오 후보자를 지명하자 야권에선 ‘채 상병 특검’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내주 예정된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채 상병 특검을 수용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 국민적 관심과 요구, 의혹이 큰데도 수사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현 공수처에 수사를 맡겨선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명분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이날 오 후보자를 임명하면서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자는 반박 주장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윤 대통령은 야당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여권이 추천한 후보군 중에서 지명자를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에선 초대 공수처장에 이어 판사 출신을 임명한 것을 두고, 공수처 정상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오 후보자가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는 ‘채 해병 수사 외압 사건’ ‘디넷을 활용한 검찰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등을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지휘할 인물인지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정치적 해석에 대해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각에선 공수처장 지명이 너무 늦어지는 게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며 "그런데 막상 공수처장을 지명하자 수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온당하지 않다. 공수처장 지명과 특검법을 연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 오 후보자가 낙점된 것에 대해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오히려 오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윤 대통령과 접점이 있는 검사 출신인 다른 후보자가 아닌 오 후보자가 낙점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오 후보자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이명순 변호사의 경우 검사 시절 윤 대통령과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를 함께한 이력으로 야당의 비판을 받은 점이 고려됐다는 취지다.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영수회담이 마침내 성사됐다. 29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이다. 막혔던 물꼬를 튼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의제 조율보다 일단은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무(無)의제' 회담 의사를 공개적으로 대통령실에 전한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민생'과 '총선 민심'을 가감 없이 회담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조금의 물러섬도 없다.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과 '채 상병 특검법 협조' 등을 모두 털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회담은 '그들만의 시간'이지만, 모두발언은 공개될 예정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모두발언을 통해 내놓을 메시지에서 회담 전체의 방향성을 점칠 수 있을 전망이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26일 각각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차담 회동'을 갖는다고 밝혔다. 회담 시간과 장소, 형식에 대한 양측 조율의 결론이었다. 홍 수석은 "날짜를 마냥 늦출 수 없어서 가장 빠른 날로, 오찬 여부도 중요치 않다는 두 분의 뜻을 감안해 차담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천 실장은 "차담이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데 유리하겠다 판단했다"고 했다. 홍 수석과 천 실장은 이어 "차담 회동은 1시간으로 잡혔다"고 했다. 다만, 상황에 따라 30분가량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정치권에선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독대 회담을 기대했지만, 양측에서 세 명씩 '3 대 3 회담'으로 결론 났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 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민주당에서는 천 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각각 배석한다. 다만 홍 수석은 "말씀을 나누시다 자연스럽게, 아마 시간이 필요하시면 그렇게 하실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뒀다. 영수회담 논의는 이 대표가 이날 오전 "그것(의제)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가 아쉽기 때문에, 신속하게 만날 일정을 잡겠다"는 발언과 함께 급물살을 탔다. 윤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제안한 건 지난 19일, 이후 1주일간 두 차례 실무협의를 가졌지만, 의제 설정 이견으로 진척은 더뎠다.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과 채 상병 특검법 수용 등 민감한 의제에 대한 수용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게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오전 홍 수석과 세 번째 협의에 들어갔던 천 실장은 "이 대표가 결단했고 대통령실에서도 환영을 표했기 때문에 논의가 길어지지는 않았다"며 “10분가량 주요 대안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극적인 회담 성사에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측은 '메시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홍 수석은 "대통령께서 민생 현안과 국민적 관심 사항들에 대해 이 대표와 만남 속에서 모멘텀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생 관련 국정과제 협조, 총리 인선 협조 등을 논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번엔 첫 만남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이 대표의 입장을 듣는 데 치중한 뒤, 회담 정례화를 제안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의 키워드는 민생 회복과 국정기조 전환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며 "민생 현장의 참혹한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요청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천 실장도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민생을 살리라는 것이고 국정 운영 기조를 변화하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그동안 보여왔던 일방적인 국정 운영, 오만, 독선적 태도 변화가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역시나 민주당은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과 '채 상병 특검법 협조'를 비롯한 민생, 총선 민심 수용 관련 다양한 안건들을 내밀 계획이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행사한 거부권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김건희 여사 특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천 실장은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해 "특정 의제를 제안하거나,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바 없다"고 전했다. 전날 이 대표와 회동을 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채 해병, 김 여사 특검법 등 지난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적 요구에 성실하게 답하시길 기대한다"며 힘을 보탰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회담 종료 이후 각각 회담 결과를 브리핑할 계획이다. 홍 수석은 "끝나자마자 공동합의문은 문안 작성 시간이 있기 때문에 용산은 용산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