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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간첩단' 누명 쓴 일가족... 법원 "국가가 27억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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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간첩단' 누명 쓴 일가족... 법원 "국가가 27억 배상"

입력
2024.05.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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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재심 무죄 받고 손배소
법원 "국가가 인권침해 가해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다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다빈 기자

'거문도 간첩단'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45년 만에 누명을 벗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민사소송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았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최규연)는 고 김재민씨 일가족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원고가 청구한 약 47억2,000만 원 중 27억4,2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1976년 9월 전남 여수시 거문도로 잠입했다가 붙잡힌 남파간첩 김용규는 수사기관에서 "김씨 식구와 접선해왔다"고 진술했다. 이에 당시 경찰은 김씨 부부 등 7명을 연행했고, 한 달 뒤 중앙정보부는 그 중 5명을 가리켜 "고정간첩을 검거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김용규의 일관되지 않은 진술만을 근거로 김씨 일가를 간첩으로 간주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 구금 △영장 없는 압수수색 △자수를 위한 고문 의혹 등이 불거졌다.

재판에서 김씨 가족은 '불법 수사'를 호소했지만 이듬해 1심 법원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부인 이모씨에겐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자녀 셋은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고, 김씨는 수감 중 위암이 발병해 7년 만에 숨졌다.

명예 회복의 물꼬는 40년이 넘게 지나서야 트였다. 재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3년간 심리 끝에 2022년 "불법구금 상태에서 가혹행위 때문에 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장은 "국가 폭력으로 고통 당한 분들께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이어진 손해배상 소송 재판부도 수사∙기소∙재판에서 이뤄진 일련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는 수사발표 당시 간첩 혐의의 진실성을 담보할 만한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공개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질타했다.

정부 측은 "수사만 받고 풀려난 나머지 자녀 2명의 소멸시효는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인권침해라는 측면에서 실질적 차이가 없는데도 차등을 두면 검사의 불기소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해 권리구제 여부가 달라지게 돼 형평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된 것"이라며 "김씨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수용생활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나머지 식구들도 본인이나 부모가 반국가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야 했다"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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