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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팔던 LP, 이젠 악성 재고에 창고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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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팔던 LP, 이젠 악성 재고에 창고 신세

입력
2024.04.01 04:30
수정
2024.04.01 10:28
20면
0 0

CD 넘어선 주류 매체로 떠오르다 지난해 첫 감소세
외부 활동 늘고 문화 소비 위축, 가격 거품도 문제
과열 분위기 가라앉으며 수요·공급 안정화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방문자들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방문자들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최근 바이닐 레코드(LP) 애호가들 사이에선 지난달 26일까지 열렸던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음반 할인전이 화제였다. 평소 4만~6만 원대 가격으로 팔리던 국내 대중음악 LP 제품들을 1만~2만 원대로 할인 판매했기 때문이다. 평소 6만 원에 팔리던 록 밴드 넬의 7집은 2만 원에, 4만 원대에 팔리던 장필순의 '베스트' LP는 1만 원대에 판매됐다. K팝 그룹인 2PM의 '머스트(Must)',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의 해방일지'의 사운드트랙(OST) 음반도 50% 이상 할인된 가격이 붙었다. 적잖은 음반들이 사전 예약 또는 발매 직후 바로 품절되던 2021, 2022년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번 할인전에서 장필순, 한영애, 거북이, 영턱스클럽 등의 자사 발매 LP를 판매한 시샵코리아 관계자는 "올해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가량 줄어든 듯하다"면서 "재고를 갖고 있는 것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판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가격을 크게 낮췄다"고 말했다.

아이유의 '꽃갈피' LP는 2014년 처음 출시된 뒤 지난해 소속사가 재발매하며 4만여 장을 판매했는데 이 역시 금세 품절됐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는 이 같은 '현역' 톱스타의 LP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라 수요에 맞는 공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유의 '꽃갈피' LP는 2014년 처음 출시된 뒤 지난해 소속사가 재발매하며 4만여 장을 판매했는데 이 역시 금세 품절됐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는 이 같은 '현역' 톱스타의 LP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라 수요에 맞는 공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CD 판매고를 넘어서며 물리적 음악 매체의 주류로 당당히 떠올랐던 LP의 성장세가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 급속도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성장세가 둔화하긴 했어도 매년 꾸준히 커지고 있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선 2022년까지 시장이 확대되다가 지난해에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인 예스24가 31일 밝힌 연간 LP 판매량 증감률 추이에 따르면 2020년 전년 대비 116.7% 증가율에서 2021년 47.3%, 2022년 13.8%로 떨어진 뒤 지난해에는 한 자릿수 감소율을 보였다. 최하나 예스24 LP 담당 과장은 "팬데믹 기간 급격하게 확장됐던 국내 LP 시장이 가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수요와 공급이 안정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LP 시장의 축소세는 제작·유통 현장에서 감지된다. 현재 국내 유일의 LP 공장인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시장이 정점을 찍었던 2022년 대비 판매량이 30~40% 수준으로 줄었다는 게 국내 LP 제작사들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국내 LP 시장이 위축된 주요 요인으로는 팬데믹으로 인한 여러 환경 변화가 꼽힌다. 팬데믹이 끝나고 외부 활동이 늘어난 데다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문화 관련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다. 해외 팝 음반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가요 LP의 가격, 들쑥날쑥한 품질, 발매 지연 등으로 LP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OST는 2022년 8월 발매 예정이었으나 몇 차례 연기된 끝에 이듬해 4월 출시됐다. 백예린의 '선물' 제작사는 음질 문제로 구매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다시 제작해 교환을 진행했다.

회원 수가 1만8,000여 명인 네이버 카페 'LP카페'의 운영자인 '오라(카페 아이디)'는 "가요 LP 1장에 5만~6만 원 많게는 9만~10만 원까지 오르면서 점차 매력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한다"며 "불량 제품이 다수 등장하고 예약 판매 후 예정된 시점보다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늦게 발매되는 음반이 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불신과 피로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발매된 이소라 7집 바이닐 레코드(LP)는 13만 원이라는 높은 소매 가격이 책정돼 팬들의 원성을 샀다. 구매자 리뷰에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다수 담겨 있다. 예스24 화면 캡처

지난 1월 발매된 이소라 7집 바이닐 레코드(LP)는 13만 원이라는 높은 소매 가격이 책정돼 팬들의 원성을 샀다. 구매자 리뷰에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다수 담겨 있다. 예스24 화면 캡처


"K팝은 LP 발매 안 하는 앨범 많아 콘텐츠 한계"

국내 LP 시장이 축소됐다기보다는 발매되는 음반의 종류가 늘면서 개별 제품의 판매량이 줄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국내 LP 공장 가동을 준비 중인 최성철 아트버스터 대표는 "최근 들어 대형 온라인 서점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늘었고 온·오프라인 음반 판매점도 많아져 전체 판매량이 줄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CD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K팝 음반이 LP 발매로 이어지지 않아 매출을 견인할 인기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LP 시장이 위축된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미국 LP 매출 규모는 2022년 전년 대비 4.2%의 성장률을 보이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기에 힘입어 14%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매출액 상위 10개의 음반 중 1~3위를 비롯해 4개가 스위프트의 앨범이었다. 반면 국내에서 LP로 발매되는 K팝 앨범 수는 일부에 불과하다.

하 대표는 "LP 열풍 현상에 거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과거 LP를 주로 소비하던 중장년 세대를 겨냥한 옛 앨범의 재발매가 주를 이루면서 콘텐츠가 한계를 드러냈다"며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품질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대표 또한 "리드 타임(기획에서 발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8개월 이상 소요되다 보니 K팝 LP는 제작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10~20대 소비자의 유입이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 시장 정체의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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