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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엔 억울했다"… 과학고 출신 25세 청년, 6년째 수능 도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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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엔 억울했다"… 과학고 출신 25세 청년, 6년째 수능 도전 이유는

입력
2024.02.02 13:30
수정
2024.02.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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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가난 빌미로 괴롭힘당해
재수 중 배달일 하다 급성 패혈증
"의사 돼서 힘든 사람 도와주고파"

과학고를 졸업한 정순수씨가 지난달 3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에 출연해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과학고를 졸업한 정순수씨가 지난달 3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에 출연해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아픈 부모를 돌보면서 6년째 수능을 응시하는 과학고 출신 한 수험생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다. 그는 부모 대신 생계를 유지하려 배달 일을 하다가 급성 패혈증까지 겪기도 했다.

구독자 115만 명을 확보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는 지난달 31일 '헬스터디 시즌2'에 합류하는 참가자를 공개했다. 이 콘텐츠는 참가자들이 2025학년도 수능에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모든 교재와 대면 강의, 전문가들의 학습 멘토링 등을 지원해준다. 목표 대학에 합격하면 첫 학기 등록금도 전액 지원한다. 미미미누 측은 약 4,000명의 지원자 중 면접을 거쳐 합격한 참가자 2명을 선정했다.

참가자로 선발된 정순수(25)씨는 올해로 여섯 번째 수능을 치른다. 그는 중학생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교사들의 추천으로 과학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대치동 과학고 입시반에서 친해진 애들끼리 이미 무리가 형성돼 있었다"며 "대학 수학까지 선행 학습을 끝낸 애들 사이에서 진도를 못 따라갔다"고 떠올렸다. 반 친구들은 정씨가 문제를 풀지 못하자 비웃고, 조별과제를 할 때도 "정순수랑 같은 팀 하면 망한다"며 따돌렸다.

과학고를 졸업한 정순수씨가 지난달 3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에 출연해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과학고를 졸업한 정순수씨가 지난달 31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에 출연해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정씨의 집안 형편도 놀림거리가 됐다. 그는 "친구 세 명이 제 노트북에서 자기소개서를 봤는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걸 다른 애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그때는 가난한 걸 들키면 안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 중 한 명이 '살살 좀 괴롭혀라. 쟤 저러다가 자살이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고 비꼬듯이 말했는데 상처를 받았다"며 "꾹 참고 학교에 다녔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한 친구가 정씨의 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사준 노트북을 발로 밟아 부수기도 했다.

첫해 대학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준비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정씨는 인터넷강의를 듣기 위한 노트북이 없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가 조울증으로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돈이 더 필요했다"며 "하루 12시간씩 배달 일을 하다가 아스팔트에 팔이 갈리는 사고가 났는데 병원비가 아까워서 혼자 연고 바르고 치료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다 급성 패혈증에 걸려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정씨 부모님이 조울증, 치매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안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정씨 부모님이 조울증, 치매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안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미미미누 유튜브 캡처

그러다 2021년 정씨의 아버지마저 치매에 걸리게 됐다. 정씨는 "병원에 아빠를 데려가서 치매랑 파킨슨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의사는 '네가 의대생이라도 되냐'고 무시했다"면서 "응급실에서 입원이 안 된다고 하는데 아빠는 괜찮다더라"라며 울먹였다. 이어 "아빠가 살도 40㎏까지 빠지고 그랬다"며 "너무 암울해서 딱 죽으려고 했다. 그때가 제 생일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씨는 "그냥 죽기가 너무 억울했다"며 다시 마음을 다잡은 이유를 밝혔다. 그는 "학교 폭력 당한 것도 제 잘못이 아니고, 부모님 아픈 것도 제 잘못이 아니지 않냐"며 "아빠한테 너무 미안했다. 과학고 간다고 하지 말고 일반고 가서 잘해서 의대 갔으면 아빠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 "의사가 돼서 엄마, 아빠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장기적으로는 나같이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결심으로 의대에 지망하게 됐다"며 "동정이나 연민 말고 응원이나 격려를 보내달라"고 덧붙였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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