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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와 '맞는다'는 다른가?

입력
2024.01.23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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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견식
신견식번역가·저술가

편집자주

세상 언어들의 이모저모를 맛보는 어도락가(語道樂家)가 말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틈새를 이곳저곳 들춘다. 재미있을 법한 말맛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숨겨진 의미도 음미한다.

삼진제약 제공

삼진제약 제공

새해 들어 많은 이가 반긴 일이 있었다. 국립국어원에서 드디어 '맞다'의 형용사적 용법을 받아들여 기존에는 '네 말이 맞는다'만 문법적으로 맞았다면 이제는 '네 말이 맞다'도 맞는 말이 됐다. '네 말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처럼 '맞다'는 여전히 동사적 성격도 두드러져서, 형용사 '알맞다/걸맞다'의 '그게 알맞은지/걸맞은지'와 다르다. 이 형용사는 동사처럼 '알맞는/걸맞는'이라 하는 이도 적지 않아서 이 '맞다' 계열의 말들은 품사 지정이 골치가 아프다.

어느 언어든 문법상 딱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고 '맞다'도 그냥 동사/형용사 두루 인정했어도 될 일이긴 하다. 벌써 1930년대 신문에서도 형용사적 쓰임이 보인다. 예컨대 동아일보 1930년 3월 19일 자에는 '여러 신하들은 마음에 맞다는 듯이 일제히 업듸어('엎드리다'의 준말 '엎디다'의 활용형 '엎디어'의 구식 표기)'라는 구절이, 1938년 8월 28일 자 연재소설 신개지(新開地)에는 "네 말이 맞다"는 말이 나온다.

또 적어도 1960년대부터는 '맞다'의 형용사적 쓰임이 신문에서도 늘기 시작한다. 언론에서 표준어를 우선시함을 감안하면 아마도 일반에서는 그런 쓰임이 일찍이 꽤 퍼졌으리라고 짐작된다. "맞다 게보린"이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가 이미 1984년에 나왔다. 이로부터도 40년 만에야 인정을 받았다.

물론 이번에도 표준용법이 되지 않은 것도 있다. '(정답을/과녁을/주사를) 맞히다'의 뜻으로 '(짝을/초점을/줄을) 맞추다'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다. 실상은 오히려 '정답을 맞추다'가 훨씬 더 널리 쓰이는 듯한데,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양복을) 마추다'도 따로 구별하다가 '맞추다'로 통합했듯이 아마 언젠가는 하나로 합쳐질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어휘 구별에서 섬세함이 좀 떨어져서 밋밋해질 것 같다. 어쨌든 대부분 아직은 '맞히다/맞추다'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맞히다'의 용법으로 '맞추다'를 틀리게 썼다고 지적을 받아도 수긍하는 편이라서 당분간 표준어로는 구별을 남겨둘 걸로 보인다.

그럼 '맞다/맞는다'와 '맞히다/맞추다'의 인식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형태론과 음운론을 달리 받아들여서일까. 딱히 그것도 아니다. 형용사 어간에는 종결 어미 '-냐', 동사 어간에는 '-느냐'가 붙는 게 원칙이다가 2015년 개정에서 동사 어간에 '-냐'만 붙어도 맞게 돼서, 그전에는 '뭐 하느냐?'만 맞았다면 이제 '뭐 하냐?'도 맞는 말이다. '맞다/맞는다'는 글에서 자주 보이지만 '(느)냐'는 주로 말에서만 나오므로 저런 형태론이 있었는지도, 표준어로 인정받았는지도 큰 관심들이 없던 듯싶다.

넷플릭스 자막에 '맞는다'가 거슬렸다는 이도 많은데,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자꾸 노출되면서 오히려 반발심이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막 번역 작업자 탓은 아니다. 되도록 규범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 규범의 잘못도 아니다. 여럿이 함께 쓰려면 기준은 정해야 한다. 그걸 늘 신줏단지처럼 모시기보다는 제때 잘 써먹어야 낫다.

형용사/동사의 구별이 흐릿해진 '느냐/냐'만 따지면 그전에는 '답이 맞느냐고 물었다(동사/-느냐)'만 맞았다면, 2015년부터는 '답이 맞냐고 물었다(동사/-냐)'도 맞게 돼서 올해부터 바뀐 것과 같다(동사 및 형용사/-냐). 언어 규범은 막상 해당 언어 화자도 헷갈리는 게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되는대로 써도 내버려두는 게 능사는 아니다. 두루두루 잘 쓰려면 귀찮아도 정리 정돈은 해야 한다. 말의 쓰임이 틀린 건지 바뀐 건지 돋보기를 들이대고 얼마나 다듬어야 할지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귀찮아도 해야 된다는 게 방점일지도 모른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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