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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암행어사표'·장범준의 '티켓추첨제'에 박수 쳐야 할 이유

입력
2024.01.07 13:30
수정
2024.01.07 14:2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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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암표 없는 세상이 올까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성상민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가수 장범준(왼쪽)은 추첨제로, 아이유는 불법 거래 신고 시 표 제공 등으로 암표에 대처하고 있다. CJ ENM,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장범준(왼쪽)은 추첨제로, 아이유는 불법 거래 신고 시 표 제공 등으로 암표에 대처하고 있다. CJ ENM,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2023년은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해였다.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비로소 벗어난 끝에 관객들은 '좌석 띄어 앉기'나 '환호 금지' 같은 제한이 사라진 곳에서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시 온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제자리를 흔든 건 연초부터 전해진 암표 관련 소식이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가수 장범준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공지가 올라왔다.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공연 티켓 예매를 전부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글이었다. 해당 공연은 1월 3일부터 한 달여간 열릴 ‘ㅈㅂㅈ 평일소공연’으로, 회차당 50명, 총 10회로 예정됐다. 장범준의 높은 인지도와 관객 수에 반비례하는 관람 희소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표를 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됐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명 ‘업자’들의 사재기로 정가보다 한참 높은 웃돈을 줘야 겨우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부풀려진 금액은 공연과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울 터였다. 초강수로 암표 근절에 '칼'을 뽑아 든 장범준은 예매 방식을 추첨제로 전환했다.

장범준이 1일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린 글. 유튜브 캡처

장범준이 1일 유튜브 커뮤니티에 올린 글. 유튜브 캡처

국내 암표 시장 상황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359건에 그쳤던 공연 암표 신고는 2022년 4,224건까지 늘어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지난해엔 더 폭발적으로 수치가 증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음지에서 거래되는 암표의 특성상 노출되지 않은 피해사례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암표 금액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50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임영웅의 불법 티켓이 온라인에 등장해 충격을 줬지만, 해외 팬이 많은 K팝 아이돌그룹은 거래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1,000만 원 가까운 금액이 책정된 암표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암표를 그릇된 욕망이 불러온 개인의 실패 정도로 여기는 사이 암표 시장은 조직화, 사업화를 거치며 더욱 영악해졌다. 유명 암표상은 대부분 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철저한 분업을 통해 운영된다. 암표 거래는 티켓을 직접 파는 경우와 사전 신청을 받아 대리 구매를 진행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업자’가 구한 티켓으로 공연장에 입장하려면 또 다른 ‘업자’가 필요하다. 입장 시 실명 확인을 하는 공연은 티켓구매자 명의의 아이디로 티켓을 옮겨주는 ‘아옮’이나 거래자의 불법 입장을 돕는 '입장 도우미'가 필수다. 명령어 자동 실행을 통해 빠르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의 유료 판매도 흔하다.

지난해 실시간 검색어로 뜬 '암행어사 전형'. 과거 시험 열리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난데없이 암행어사를 소환한 곳은 아이유 콘서트 티켓 예매 현장이다. 아이유는 암표 거래를 제보하면 부정 예매한 티켓을 취소한 뒤 신고자에게 불법 거래 신고 포상으로 그 표를 주는데, 이런 방식으로 티켓을 얻는 것을 팬들은 암행어사 전형이라고 부른다. X(구 트위터) 캡처

지난해 실시간 검색어로 뜬 '암행어사 전형'. 과거 시험 열리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난데없이 암행어사를 소환한 곳은 아이유 콘서트 티켓 예매 현장이다. 아이유는 암표 거래를 제보하면 부정 예매한 티켓을 취소한 뒤 신고자에게 불법 거래 신고 포상으로 그 표를 주는데, 이런 방식으로 티켓을 얻는 것을 팬들은 암행어사 전형이라고 부른다. X(구 트위터) 캡처


이렇게 촘촘히 조직화한 암표 시장에 비해 티켓 부정 거래 처벌 방식은 아직도 50년 전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게 놀랍다. 암표상은 지금까지 형법 제314조에 따른 업무방해죄나 경범죄 처벌법 제2항 등으로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등 거래 장소에 초점을 맞춘 경범죄 처벌법이나 포털사이트나 파워 링크 광고주 등에 한정된 업무방해죄 피해자 기준을 보고 있으면, 날이 갈수록 암표상이 활개를 치는 현실이 필연처럼 느껴질 정도다. 다행히 올해 3월부터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한 입장권 등의 부정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적용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고도화된 암표 생태계에서 실질적 처벌까지 효과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암표 없는 세상이 올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아마 그런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고 어둠은 전염력이 강하다. 법과 제도는 언제나 가장 뒤늦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불법에 대응해 멈추지 않는 업계 내부의 움직임은 그래서 더 귀하다. 연초부터 암표 거래에 경각심을 울린 장범준의 결단, 부정 티켓 거래를 신고하면 신고자에게 공연 티켓을 증정하고 이미 티켓이 있으면 소정의 포상을 제공하는 아이유의 암표 대처('암행어사표')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새겨본다. 팔지도 사지도 말자는 단순하고 당연한 법칙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건 그것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뿐일 테니 말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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