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사랑과 낙관으로 채운 관능적인 시, 미국을 매혹시키다

입력
2023.12.02 04:30
25면
0 0

월트 휘트먼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이자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글을 씁니다.

월트 휘트먼. 위키피디아 커먼스

월트 휘트먼(1819~1892)의 시집 '풀잎'을 읽기 전에는 거리낌 없이 ‘나는 시인입니다’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하지만 '풀잎'의 서문을 읽고부터는 시인이라고 말할 때 조금 주저하게 된다. 내게 해당 사항 없어 보이는 웅장한 언급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시인이란 “궁극의 머리”를 가지고서 “판사가 재판하듯 판단하지 않고 태양이 무기력한 것들 주변에 떨어지듯 판단한다. 가장 멀리 봄으로 가장 풍성한 믿음을 받는다. 그의 생각은 사물들에 대한 칭송의 노래다.” 가망 없는 사물들에도 빠짐없이 빛을 보내면서 언젠가는 그것들이 각자의 고유한 싹을 틔울 것을 굳게 믿는 태양처럼 시인은 판단한다. 그러니까 그에게 판단은 일종의 믿음이다.

네루다도 '추억'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은 편협한 기준에 따라 어떤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려는 일들뿐일지라도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여기며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애쓰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다. 휘트먼은 시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믿음은 영혼의 소독제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퍼져 그들을 보호한다…” 이 정도라면 나 같은 보통 시인도 따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바로 다음에 예술가의 영혼을 시험에 들게 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가장 고귀하게 표현하는 천재의 힘을 꺾고 조롱하는 문맹의 사람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선함과 무의식이 있다. 시인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예술가만큼 성스럽고 완벽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인간이 성스럽고 완벽하게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이런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태로 들어가도 그럴 수 있을까? 가령 작가들은 작품을 환대해 주는 독자를 만날 때 뜨거운 인간애를 느낀다. 그러나 자기 작품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이들 앞에서도 그런 믿음을 갖기는 어렵다. 아무리 한심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라 해도 용기 내어 드러낸 자기 진심이 모욕당하는 상황을 견디기는 힘들다. 결국 우리는 추상적 차원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무한 낙관론자일 수 있지만 구체적 삶 속에서는 극단의 환멸론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자신의 예술을 확신하는 동시에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에게서 신선함과 성스러움을 발견하다니, 휘트먼은 정말 강한 정신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이 귀족적 관대함은 태어날 때부터 많은 것을 소유했기에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거하게 베풀어도 자산 총량에 별 손실이 없는 이들이나 지닐 법한 미덕으로 보인다. 그의 삶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던 것일까?

사실 휘트먼이 살면서 가장 풍족하게 소유했던 것은 가난이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노동자들이 사는 작은 집을 지어서 파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집을 짓지 못했다. 휘트먼도 열한 살부터 변호사 사무실의 급사나 인쇄소의 견습공으로 일해야 했다. 브루클린의 공립학교에 5년간 다닌 것이 그의 학력의 전부였다. 그러나 견습공으로 지내는 동안 도서관에 다니고 지역의 토론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그 뒤로는 교사, 신문 편집자, 다시 인쇄소 식자공, 서점 직원, 목수, 건설 노동자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며 떠돌았다.

풀잎·월트 휘트먼 지음·허현숙 옮김·열린책들 발행·280쪽·1만4,800원

1855년 서른여섯 살의 휘트먼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첫 시집 '풀잎'을 출간했다. 긴 서문과 12편의 장시로 구성된 시집은 자비로 출판되었다. 그런데 2주 뒤, 시집을 읽은 랠프 월도 에머슨이 “재치와 지혜가 있는, 미국이 배출한 가장 놀라운 작품”이라고 극찬을 했다. 에머슨은 니체가 여행 중에도 그의 책을 탐독했을 만큼 당대 지식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시인 철학자였다. 그런 에머슨이 '풀잎'에 대해 5페이지나 되는 추천의 글을 써서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돌렸으니 당연히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에머슨은 휘트먼을 찾아와 애정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다. 몸에 대해서 너무 솔직하게 쓰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시인은 자신을 아끼는 철학자의 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청했고 최대한 겸손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내 이론을 고수하고 그것을 삶으로 보여주려 하는 데 더 없는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는 시의 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외설 논란에 시달렸다. '풀잎'이 출간되고 10년 후 그가 내무성 산하의 서기로 취직하게 됐을 때 '풀잎'을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6개월 만에 해고될 정도였다.

미국 사상가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 위키피디아 커먼스

이 일화가 보여주듯 '풀잎'은 몹시 관능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민감하고 뜨거운 사랑, 낙관, 너그러움과 용기로 가득 차 있다. '나 자신의 노래'라는 시 속에서 한 아이가 풀잎을 들고 와 시인에게 묻는다. 풀잎이 뭐예요? 시인은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자 “신의 손수건”이라고 대답한다. 또는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구석 어디엔가 그 주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그것을 본 우리가 누구 것이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것.” 어디서나 자라는 풀잎을 보면서 희망의 깃발과 향기로운 선물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사실 모든 곳에서 희망과 향기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그냥 느끼는 정도가 아니다. 시인은 “나는 내게 와닿는 것에 미칠 것 같다”고 쓴다. 그러니 일기장에 “나는 차갑게 태어났다… 내 몸의 습관은 차갑다. 나는 밖에서든 안에서든 추위에 떤다”고 썼던 에머슨으로서는 그의 시집에 매혹된 자신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풀잎에서 느끼는 미칠 것 같은 촉감은 에로틱하다. 그는 숲의 강둑에 함께 누웠던 한 사람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몇 번의 가벼운 입맞춤… 몇 번의 포옹… 감싸 안는 팔들”을 떠올리며 “작은 시냇물이 그들의 온몸을 지나갔다”고 쓴다. 풀, 강물, 바람 모든 것이 연인처럼 시인의 몸을 어루만지고 그 촉감으로 영혼의 빈 잔을 넘치도록 채운다. 넘치는 느낌은 “나의 선의를 마음대로 영원히 흩뿌리는, 나”라는 고백과 함께 모든 이로 향하는 사랑이 된다. “다른 이들이 경멸하는 이들의 권리의 목소리, 별 볼 일 없는 이들과 의기소침한 이들, 바보스러운 이들과 무시당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통해 흘러나온다.” 그는 접촉의 시인답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만지는 것인가? … 새로운 정체성으로 나를 떨게 하며.”('나 자신의 노래')

월트 휘트먼. 위키피디아 커먼스

휘트먼은 아모르 문디(Amor Mundi), 즉 세계 사랑을 실현하는 시인이다. 이 막대한 사랑의 힘은 그를 둘러싼 사물들, 타인들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일부 독자들은 시인의 부유한 사랑에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사랑은 없다”는 아라공의 시구를 외치며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휘트먼도 동의한다. 그도 우리처럼 외로웠고 고통받았고 거의 모든 사랑에서 실패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고 내 사랑은 화답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나는 이 노래들을 썼다”('창포')고 그는 고백한다. 사랑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나는 가슴뼈가 부서져 곤죽이 된 소방관… 무너져 내린 벽들이 그 잔해 속에 나를 묻었다”고 말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늘 다음과 같은 용기의 선언으로 이어진다. “고통은 내가 바꿔 입는 옷들 중 하나다.”('나 자신의 노래') 우리는 사랑이 남긴 한 벌의 고통을 닳도록 입거나 아니면 한없이 움츠러들어 무엇과도 접촉하지 않고 혼자 벌거벗은 채 있곤 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풀잎'은 행복이 아니라 사랑과 용기로 가득한 시집이다. 아라공은 용감하게 노래했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둘의 사랑이다.”('행복한 사랑은 없다') 둘만의 사랑도 이러한데 세계를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행복을 꿈꾸겠는가?

* 휘트먼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루이스 하이드가 쓴 '선물'(전병근 옮김, 유유)을 참고하고 인용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월트 휘트먼 지음·황유원 옮김·읻다 발행·200쪽·1만2,000원


진은영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