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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세로'에 가려진 여자친구 '코코'의 비극

입력
2023.11.11 14:00
수정
2023.11.11 1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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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생활하다 지난달 16일 숨진 그랜트얼룩말 '코코'. 서울시 제공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생활하다 지난달 16일 숨진 그랜트얼룩말 '코코'. 서울시 제공

"세로, 외로워서 어쩌나", "탈출 얼룩말 세로, 다시 혼자됐다", "세로, 여자친구 코코도 잃었다."

올해 3월 동물원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힌 그랜트얼룩말 '세로'와 함께 살던 '코코'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후 보도된 기사 제목의 일부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 역시 "남겨진 세로가 불쌍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부모를 잃었는데 이젠 여자친구도 잃었다'는 내용이 주였다. 정작 산통(疝痛, 말의 배앓이)으로 세상을 떠난 코코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원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미 유명세를 탄 세로의 슬픔에만 관심이 쏠린 듯 보인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따르면 코코의 사망 원인은 '산통에 의한 소결장 폐색 및 괴사'였다. 산통은 전체 말의 약 10%에서 발생하는데 자체적으로 회복되기도 하지만 수술이 필요하거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생활하던 그랜트얼룩말 코코(왼쪽)와 세로의 모습. 서울어린이대공원 제공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생활하던 그랜트얼룩말 코코(왼쪽)와 세로의 모습. 서울어린이대공원 제공

그렇다면 코코에게 왜 갑자기 산통이 발생했을까. 또 이를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산통의 여러 원인 중 스트레스가 지목됐다고 한다. 코코는 2022년 5월 12일 생으로 세로보다 세 살 어린 미성숙 어린 말이었다. 대공원 측은 당초 내년에나 코코를 데려와 세로와 합사하려 했지만 국민적 관심을 끈 세로가 외롭다는 지적에 따라 예정보다 빨리 합사를 시켰다. 빠른 합사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간과됐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미 성성숙이 온 세로와 그렇지 못한 코코가 분리될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함께 지내면서 코코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세로만을 고려한 합사일정이 아니었다면 코코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욱이 얼룩말은 번식이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간이 한정된 상황에서 번식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 3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인근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인근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세로의 탈출 당시에도 어린이대공원이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은 '부모를 잃고 반항기에 접어들었다'는 세로의 서사에 묻혔다. 더욱이 동물단체들은 암컷을 데려와 개체 수를 늘리고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대신 세로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어린이대공원은 이번에도 또 다른 암컷을 들여오는 것을 검토 중이다. 확대한 얼룩말 사육 공간에는 수컷 1마리, 암컷 2마리 수용이 가능하다며, 또 다른 암컷을 들여오는 것은 코코의 죽음과 관계없이 원래부터 추진해 오던 일이라고 했다.

국내에는 6월 기준 8개 동물원에 36마리의 얼룩말이 살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은 세로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번식 가능성과 수컷들의 다툼, 사육공간 확보 등을 이유로 받아주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번식을 시도하는 것은 세로를 포함한 다른 얼룩말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작정 '여자친구'를 데려오기 전에 코코와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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