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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 중하다면서 왜 안 가르치나요?" 꾸짖은 포르투갈 도시

입력
2023.11.1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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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의 별의별 유럽]
⑭ 포르투갈 루사다: 환경 교육 모범 도시

편집자주

인류와 지구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유럽의 마을과 도시를 탐험하는 기획을 신은별 베를린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에서 환경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이곳에 사는 동물들 모습을 담은 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에서 환경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이곳에 사는 동물들 모습을 담은 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덥거나 추웠을 뿐이다. 또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다는 정도였다. 과거 날씨는 이렇게 그냥, 평범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는 '전례 없는' '사상 최악의' 같은 수식어가 붙는 일이 잦아졌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전 세계 인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 주변엔 어떤 위기가 닥쳤나' 혹은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주저하는 이가 많다. 교육의 부재 탓일 가능성이 크다.

포르투갈 북서부에 위치한 루사다시는 그래서 '제대로 된 환경 교육'을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 내 동식물 연구를 토대로 '루사다 맞춤형 교육'을 개발하고, 시 관할 37개 초·중·고등학교에 환경 교육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노인 프로그램 등 주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수업도 별도 개설했다. 인구 약 4만8,000명의 소도시가 감당하기에는 수고와 부담이 커 보이지만, 시는 도리어 "안 될 게 없다"고 자신한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8~10일(현지시간) 루사다시(市)를 직접 찾아 교육 내용과 운영 비결을 살펴봤다.

"북극곰 알고, 뒷산 동물 모른다? 환경보호 의지 생기겠나"

루사다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와 40㎞쯤 떨어져 있다. 지금은 포르투의 베드타운으로 기능하며 많이 성장한 도시가 됐으나, 10년 전만 해도 한 달에 두 차례 마을 공터에서 열리는 시장이 최대 행사였을 정도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었다.

환경오염과 거리가 먼 도시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논밭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매연 등으로 이미 오염돼 있었다. 문제는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주민들 사이에 자리 잡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어서다. 더 큰 문제는 도시에서 살 날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조차 관련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루사다시 잘못은 아니었다. 포르투갈 중앙정부 관할 사안이기 때문에 시 당국이 별도로 수업을 마련할 책임이 없었다. 2013년 포르투갈 사회당 소속 페드로 마차도 시장의 당선으로 함께 시정에 참여하게 된 마누엘 누네스 시의원은 지난달 9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 대한 환경 교육이 시급했다"고 회상했다.

포르투갈 루사다의 마누엘 누네스 시의원이 지난달 9일 환경 교육장에서 자체 제작한 교육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루사다에서 서식하는 식물이 담긴 책자.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루사다시 제공

포르투갈 루사다의 마누엘 누네스 시의원이 지난달 9일 환경 교육장에서 자체 제작한 교육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루사다에서 서식하는 식물이 담긴 책자.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루사다시 제공

누네스 의원 등 시 관계자들은 당장 교육 자료 개발에 나섰다. 역내에 사는 동식물 전수 조사가 시작이었다. 기존 자료를 활용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자체 자료를 만들기로 한 것일까. 누네스 의원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빙하가 녹으면 북극곰이 위험해진다'고 교육하면,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선 편하다. 그러나 이는 실생활과 관련이 없다. 내 집 마당, 뒷산에 사는 동물을 알아야 내가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조사는 2년간 진행됐다. 시는 동물 210종, 식물 370종이 역내에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포르투갈 국립공원인 '페네다 제레스'에 서식하는 동식물 종류와 맞먹었다. 백과사전 형태로 정리한 연구 결과 자체가 교육 자료로 활용됐다. 시는 자료의 활용도와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학년별·수준별 자료를 따로 만들었다. 초등학생을 위해선 역내 동식물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동화를 만들고, 상대적으로 학업 중요도가 큰 중·고등학생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료를 과학 등 다른 교과목과 접목해 가르치는 식이었다.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시 당국 안에 강사진도 별도로 갖췄다. 시가 직접 고용한 환경 교육 담당 직원은 총 5명. 이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교육법을 전달해 학교가 자체적으로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누네스 의원은 "환경 교육 담당 조직을 구비한 곳은 포르투갈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드물다"고 말했다.

"책에서 본 곤충" 스스로 환경보호 나선 아이들

현장에서도 잘 적용되고 있을까. 10일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봤다.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본 식물들. 왼쪽 사진 속 식물은 바싹 말라 있지만, 오른쪽 사진의 식물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곤충의 먹이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고온건조한 기후에도 잘 자라는 식물을 학생들이 별도로 심어 둔 것이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본 식물들. 왼쪽 사진 속 식물은 바싹 말라 있지만, 오른쪽 사진의 식물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곤충의 먹이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고온건조한 기후에도 잘 자라는 식물을 학생들이 별도로 심어 둔 것이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아이들은 주위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학교를 둘러보니 교내 언덕과 들판에 학생들이 직접 심었다는 푸릇푸릇한 식물이 보였다.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는 주변 식물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교사 세우는 "포르투갈의 여름은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고 가뭄이 심해 식물이 바싹 마르는데, 곤충들로선 먹이가 사라진다는 의미"라며 "이 때문에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 식물을 일부러 심어 둔 것"이라고 했다. 나무 곳곳엔 겨울철에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하는 새를 위한 먹이통이 달려 있었다. 고온건조한 기후를 고려해 시 당국이 조성한 인공 연못에서는 그간 파악되지 않았던 곤충이 새로 발견됐는데 학생들은 이를 정리해 시 당국에 따로 보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환경 교육을 즐거워했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주제로 한 환경 수업이 한창인 교실을 들렀더니 루사다 내 자연보호구역 위치, 해당 장소가 생태계 보호 및 주민 건강에 이로운 점 등에 대한 이론 교육이 한창이었다. 조별로 모여 장난감 블록 레고로 모형 도시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인공 연못을 만들면 좋겠다" "자동차보다는 기차가 다니도록 철도를 깔자" 등의 의견을 내며 도시를 조성했다. 블록으로 숲을 만들고 있던 마팔다(10)는 "도시에는 공원이 꼭 필요하다"며 웃었다.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팔다(10)와 친구들이 장난감 블록 레고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도시 모형을 만들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팔다(10)와 친구들이 장난감 블록 레고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도시 모형을 만들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중앙정부가 마련한 정규 교과 과정에 환경 수업을 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학교 측의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누네스 의원은 "2년의 조사를 거쳐 '이런 생명이 주변에 살고 있는데 모른 체할 수 있느냐'고 설득하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대신 교육 현장의 부담 등을 감안해 처음부터 환경 교육을 전면 도입하는 대신 시범 사업으로 실시한 뒤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한 환경 수업은 지난달 말 기준 37개 학교에서 3,382회 진행됐다. 이에 참여한 학생 수는 총 6만7,324명(누적 인원)에 달한다.

"모두가 참여 안 하면 말짱 도루묵"... 노인 교육도 마련

학생들을 통해 환경 교육 효과를 확인한 시 당국은 교육 대상 확대에 나섰다. 2019년 도입한 노인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시 관계자 인터뷰를 토대로 고령층에 주목한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①고령층은 자연을 접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교육 흡수율이 좋다. ②직접 농사를 짓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③가정 내 지위나 역할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교육이 자식, 손주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 ④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은퇴 이후 사회적 교류가 적어지는 고령층에게 환경 교육은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고령층이 어린이와 한두 시간씩 만나 자연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관련 활동을 함께하는 식이다. 10일 시내 광장에선 6, 7세 학생들이 주워 온 나뭇잎을 지점토 위에 올려 잎 모양을 새기는 놀이가 한창이었다. 노인대학에 다니는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나뭇잎이 어떤 나무에서 나왔는지 살뜰하게 알려주며 나뭇잎 모양이 지점토에 잘 새겨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은퇴 후 이러한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조지는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빌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이런 활동 속에서 우리도 많이 배운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에서 노인대학 소속 어르신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점토 놀이를 하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지난달 10일 포르투갈 루사다에서 노인대학 소속 어르신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점토 놀이를 하고 있다. 루사다(포르투갈)=신은별 특파원

노인 교육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나이에 무슨 교육이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루사다시 환경교육팀 소속 페드로 새는 "직원들이 고령층을 일일이 방문하며 사업을 홍보하고 교육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00명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루사다시는 시내 중심부, 숲 등에 별도 환경 교육장을 마련하고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적극적인 환경 교육을 전개하는 활동을 인정받아 루사다시는 세계 각국의 지방자치단체 2,500곳으로 구성된 국제자치단체환경협의회(ICLEI)로부터 2019년 '변혁적 행동상'도 수상했다. 교육 내용과 방법을 배우려는 방문객도 각국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성과에도 루사다시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욕심을 낸다. 기후 위기가 삶을 위협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는 만큼, 루사다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환경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게 시 당국의 설명이다. 누네스 의원은 이렇게 물었다. "환경보호, 몰라서 못 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루사다(포르투갈)=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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