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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압도적 경제 성장, 미국인도 정말 부유할까?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

입력
2023.10.10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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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빛나는 미국경제, 부진한 일본경제' 맞나?
1990년 이후 미국 4.6% 성장할 때 일본 0.9%
유럽 선진국들도 1~3%대 성장하는 데 그쳐
크루그먼 "하위 85% 소득, 평균에 크게 못 미쳐"
생산인구 1인당 소득...미국, 유럽·일본과 비슷
결국 나라는 잘 살지만, 국민이 부유한지는 의문
외형성장보다 근로계층 1인당 소득 증가 중시해야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미국 경제는 전 세계에서 압도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부유하지만 국민은 부유한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경제는 전 세계에서 압도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부유하지만 국민은 부유한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세계적인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미국 경제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렸다. 미국이 유럽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기사의 골자였다. 1990년 이후 세계 주요국의 미국 달러 기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비교하면, 미국은 4.6% 성장한 반면 일본은 단 0.9%에 그친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1.7%, 그리고 프랑스는 2.5%를 기록해 유럽의 선진국들도 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그래픽= 신동준 기자


이와 같은 성장률의 격차는 자산시장의 성과로 이어졌다. 1990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100달러를 투자했다면, 2022년에는 2,300달러로 불어난 반면,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지수에 투자한 사람의 자산은 510달러로 불어나는 데 그쳤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PwC의 세계 100대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21조6,000만 달러를 기록해 전체의 약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럽은 13%에 불과했고 일본은 단 한 기업(도요타 자동차)만 이름을 올려 0.6%에 그쳤다. 테슬라나 애플 그리고 에어비앤비 같은 혁신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산업을 지배하고 기존 기업들에 변화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참여자들이 미국에만 투자를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세계 100대 기업 국가별 점유율(시가총액 기준, 30조8,000억 달러)
PwC(2023)



그럼 어떻게 미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인 성과를 기록했을까?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의 칼럼니스트는 미국의 뛰어난 인적자원, 거대한 시장의 규모가 경제 성장을 촉진시켰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강력한 역동성을 보유한 것도 미국의 장점이라고 덧붙인다.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이동하려는 적극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시장을 가진 덕분에 스타트업 붐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이나 일본 경제는 역동성도 떨어지고, 시장도 협소하며 인적자원 면에서도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니 앞으로도 미국을 영원히 따라잡을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 2023년 장외시장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은 스타트업 1,221개 중에서 미국이 656개를 차지하며, 중국이 275개(홍콩을 포함하면 283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참고로 영국 53개, 독일 30개, 프랑스 26개, 한국 18개, 일본 10개, 아일랜드와 스웨덴 그리고 네덜란드 각각 7개, 스위스 6개, 핀란드 4개, 벨기에 3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2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 두 가지의 비판이 가능한 것 같다. 첫 번째 비판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 제기한 것으로, 그는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 높은 성장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수명이 급격히 감소하는 등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인의 기대수명 감소는 소득 분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으로, 상위 15%를 제외한 나머지 85%의 소득이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탄한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다. 실제 스위스의 은행 UBS가 조사한 성인 1인당 순자산 중간값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10.8만 달러에 불과해 일본(12.4만 달러)이나 영국(16.5만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즉 나라는 잘 살지만, 국민들이 정말 부유하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불평등 문제뿐만 아니라 인구 증가로 인한 성장의 착시 현상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은 1990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주요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을 나타낸 것인데,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미국의 1인당 GDP 성장률은 3.7%로 내려앉은 반면, 스페인이나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 성장률이 미국을 넘어선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2020년 미국 전체 인구의 13.7%인 4,393만 명이 이민자인 반면, 유럽에서는 독일(18.8%)과 영국(13.8%) 그리고 스페인(14.6%)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민자 비중이 높지 않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참고로 이 통계는 구매력 기준(PPP)으로 측정되었는데, 시장 환율로 측정된 국민소득은 실질적인 구매력 수준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일본에 여행 간 사람들은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환율 변동을 제거하고 생활필수품의 물가를 국제적으로 비교해 측정한 소득이 PPP 기준 소득 통계이니,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1인당 소득이 아닌, 생산활동인구 1인당 소득 증가율을 비교해보자. 여기서 생산활동인구(Working Age)란, 15세에서 64세까지의 사람들로 이들의 취업률이 다른 연령 인구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활동을 통해 경제 전반에 강력한 수요를 자극한다. 따라서 생활 수준의 향상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생산활동인구 1인당 GDP의 성장률을 살펴보아야 한다.

생산활동인구 1인당 소득의 변화를 측정해보면, 미국이 3.8% 영국 3.8% 그리고 일본 3.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기준으로 한국 역시 미국과 같은 3.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멕시코(2.5%)와 브라질(2.7%) 남아공(2.4%) 등 이른바 신흥국 경제는 생산활동인구 1인당 소득 증가 면에서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신흥국이라고 해서 생활 수준이 가파르게 향상되는 것이 아니며,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생산활동인구 1인당 소득 면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성장세를 기록했던 셈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두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일본과 유럽이 생산활동인구의 감소 속에서 매우 선전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같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부진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일본이나 유럽의 실질적 생활 수준은 꾸준히 개선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국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정부 부채가 쌓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2010년 발생한 남유럽 재정위기도 이 과정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한국도 2020년을 고비로 본격적인 인구 감소 국면에 접어든 만큼, 경제의 외형 성장보다는 근로계층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중시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 교훈은 이민의 중요성이다. 경제의 외형성장을 유지하고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이민의 유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비혼 출산율이 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현실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혼 커플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사생아’ 딱지를 붙이는 나라에서 비혼 출산율이 반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노령인구의 증가에 대비한 간병·헬스케어 노동력과 전문 기술인력을 중심으로 대규모 이민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 정부가 농촌 및 중소기업의 노동력 부족사태를 해결할 목적으로 2023년 4분기 외국인력 쿼터를 크게 상향 조정하는 등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 것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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