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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정신이 붕괴한 사회

입력
2023.07.3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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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학교 공동체 붕괴가 젊은 교사 비극 초래
규제와 소송, 사회적 비용ㆍ부작용 증가
더 늦기 전에 ‘공동체 정신’ 되살려 내야

27일 서울 중부교육지원청 앞에 6개월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사립 초등학교 교사 A씨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중부교육지원청 앞에 6개월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사립 초등학교 교사 A씨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 이 안타까운 사건의 전체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젊은 초임 교사가 극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은 존재하되 학교라는 공동체는 사라져 버렸다는 자조(自嘲) 섞인 푸념이 비극적인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한다.

이 사건을 특정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으로 국한시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자발성(自發性)에 기초를 둔 공동체 정신을 급속하게 상실하고 말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공동체 정신에 입각해서 스스로 풀기보다는 관청에 민원을 넣는 등 타율적 해결에 호소하고 사소한 사안을 갖고도 고소ㆍ고발을 해서 문제를 검찰과 법원으로 가져가고 있다. 학교는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 등 어디서든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과거 같으면 당사자끼리 털고 갔던 문제가 소송으로 비화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대한민국이 민원과 고소ㆍ고발이 넘쳐흐르는 이상한 나라가 된 지는 오래됐다. 공동체 정신이 사라지자 책임질 만한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모든 직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민원과 고소ㆍ고발에 대비하는 방어적 경영에 몰두함에 따라 그 생산성은 곤두박질쳐 버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추세에 적응해서 살아 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힘들게 살거나 아예 포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공동체 정신을 상실한 사회에 대신 들어선 것은 온갖 잡다한 법률과 규제다. 무슨 일만 터지면 국회는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자발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이 책임을 강화하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일은 아예 회피하는 부작용도 생겨난다. 의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면 의사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응급실 의사가 부족하고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문을 닫는 현상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01년 필립 하워드라는 변호사는 법과 규제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선 ‘공동선’(Common Good)이란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고 개탄하는 책(‘공동선(共同善)의 붕괴’)을 내서 호응을 얻었다. 하워드는 미국 공립학교에선 의욕적인 교사를 보기 어렵다면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관료적 규칙에 얽매여 있어, 열성적인 교사들은 아예 교직을 떠나고 있다. 교사는 수업을 교란하는 학생을 제어하려 하지 않는데, 말썽 부리는 학생을 제지했다가는 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정직이 덕목’이라고 가르치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고, 이제 학생들은 적법절차라는 보호막 안에서 거짓말과 부정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년 전에 필립 하워드가 지적했던 현상을 오늘날 우리의 학교 교육이 겪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미국의 공립학교는 총기 난사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인 처지로 전락했으니 그것을 보고 우리는 그래도 조금은 낫다고 스스로 위안한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사라져 버린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서로가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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