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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에 열광하는 한일 젊은이

입력
2023.06.10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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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에 대한 반동, 글로벌 복고 열풍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 복고풍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디지털화에 따른 ‘비물질적 소비’에 따른 반발,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소비의 물질성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 복고풍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디지털화에 따른 ‘비물질적 소비’에 따른 반발,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소비의 물질성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는 복고 사랑

일본에서도 젊은 층 사이에 복고풍이 인기를 끈 지는 꽤 오래되었다. 예를 들어,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카메라 ‘우츠룬데스’(‘찍힙니다’라는 뜻)는 최근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은 대표적인 복고 아이템이다. 1986년 후지필름에서 처음 출시한 ‘우츠룬데스’에는 미리 장착된 필름을 다 사용하면 수명이 끝나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다. 일회용이라고는 해도 렌즈, 셔터, 플래시까지 사진 찍기 기능은 제대로 갖추었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꽤 사랑받았던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 철 지난 일회용 카메라가 최근 24시간 편의점의 판매대에 다시 놓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부활한 것이다. 스마트폰에 달린 고성능 카메라와는 달리 아날로그 감성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란다. 더구나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필름 카메라를 경험할 수 있으니 가성비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의 소비 성향에도 딱 맞는다. 그 밖에도 ‘패미콘’(80년대에 대유행했던 게임기)이나 ‘헬로키티’(70년대부터 인기를 끈 고양이 캐릭터) 등 ‘헤이세이’(平成, 1989~2019년, 아키히토 일왕 재위 시절의 연호) 시대의 감성을 간직한 대중문화 아이템들이 젊은이 사이에서 꽤 ‘핫’하다고 한다.

한편, ‘쇼와'(昭和, 1926~1989년 히로히토 일왕 재위 시절의 연호) 시대의 감성을 지닌 찻집에서 차를 즐기고 소셜미디어에 방문 사진을 올리는 ‘준킷사(純喫茶)’ 순례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 중이다. 1920년대 일본에서 카페라고 하면 당시에 호스티스라고 불렸던 여성 접대부가 주류와 음식류를 함께 제공하는 업태를 뜻했다. 1930년대에 비로소 커피나 홍차와 디저트 등을 즐기는 건전한 찻집이 새로 등장했다. 술을 파는 당시의 카페와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순수하다는 뜻의 ‘純’과 찻집을 뜻하는 ‘喫茶’를 붙여 준킷사라는 어색한 명칭이 생겼다. 즉, 순수하게 커피나 홍차 등을 즐기는 찻집이라는 뜻이다. 이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준킷사는, ‘쇼와’풍의 오래된 인테리어와 영업 방식을 고집하는 고풍스러운 찻집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대도시에는 대체로 고령층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준킷사가 꽤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커피 애호가로서 도쿄에 있는 몇몇 준킷사의 단골이었다. 차분하지만 어두컴컴한 실내 분위기가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마스터가 정성스레 내려주는 중후한 드립 커피 맛이 각별했다. 다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퀴퀴한 감성의 커피집에서 20, 30대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요즘에는 소셜미디어에서 ‘인싸’로 주목받는 젊은이들이 이런 곳을 드나든다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참 재미있다.

◇ ‘뉴트로’ 열풍에 숨겨진 한일 서로에 대한 문화적 관심

한국에서도 젊은 층 사이에 복고풍 소비가 꽤 인기라고 한다. 패션, 음악,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레트로 감성이 주목받고, 대도시 구도심의 뒷동네나 골목에 이른바 ‘힙’한 패션피플이 모여든다고 한다.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허름하고 차분한 감각과 감성을 매력으로 재해석하고 즐기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소비 행태라는 측면에서 ‘뉴트로(newtro, ‘새로운 레트로’ 라는 뜻)’라는 말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젊은이들의 레트로 사랑은 공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나라를 동시에 보고 있는 내게는 특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유행 중인 복고 취향 중에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했던 옛 시절의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일본에서도 방영되어 주목받았는데 여주인공이 착용했던 복고 취향의 비즈 액세서리가 한동안 소셜미디어에서 ‘핫’한 아이템이었다. 한국의 드라마나 연예인이 소개하는 복고 패션은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사실 일본에서는 해외의 복고 트렌드를 탐구하고 즐기는 ‘수입 레트로(輸入レトロ)’도 꽤 주목받는 트렌드다. 미국의 틴에이저 드라마에 등장하는 Y2K(2000년 전후 시기) 패션이 부활한다거나, 옛날 감성의 대만식 포장마차가 인기를 끄는 등이다. 한국풍 복고가 이 ‘수입 레트로’의 중요한 한 흐름인 것이다.

반면, 한국의 젊은이들의 복고 사랑에도 일본풍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뉴트로의 ‘성지’라고 하는 을지로나 익선동의 일본 복고풍 인테리어의 소규모 펍이나 바가 적지 않고, ‘시티팝’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1970, 1980년대의 세련된 제이팝(J-Pop, 일본 대중음악의 별칭)이나 일본 아이돌의 노래 등도 자주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런 풍토에 대해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를 걱정하는 기성세대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도 이해할 수 있지만, 색다른 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갖는 개인적 취향 그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한국 젊은이들의 ‘뉴트로’ 감성이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왜 복고에 열광하는 것일까?

지난해 미국에서 LP레코드가 CD보다 많이 팔렸다는 보도를 접했다. 198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일상적이 된 만큼, 음반이나 디스크 판매가 저조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CD와는 대조적으로, 아날로그 매체의 대표 격인 LP레코드가 전년 대비 17%나 더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디지털의 편리함 대신 아날로그의 따뜻한 음색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가 늘어났다. 한편으로는, 비싸고 불편해도 턴 테이블 위에 LP판을 올려놓는 사치스러운 낭만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사실 LP레코드의 판매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복고는 전 세계의 트렌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왜 전 세계가 복고에 열광하는 것일까? 디지털화가 심화되면서 영구적으로 물건을 소유하기보다는 단기간의 서비스나 체험을 구입하는 ‘비물질적 소비’가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물질성과 다소의 불편함을 대변하는 복고풍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최근 일본의 유통 전문지(닛케이 MJ)의 조사 결과를 보면, 복고풍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이들이 “디지털이 아니라서 편안하다”, “친근하지만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아날로그가 오히려 희소가치가 된 디지털 시대에 대한 반동으로 복고풍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는 가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편,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은 각국의 복고 열풍을 비슷한 문화적 취향으로 수렴시킨다. 인터넷을 매개로 서로 다른 문화와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의 레트로 취향이 묘하게 닮았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숨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외교가의 분위기가 변화한 덕에 한일 간의 문화적 호감이 급격히 커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한일 관계가 싸늘했던 최근 몇 년 동안에도 젊은이들의 상호 호감은 식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조각조각 분열시킬 것인가? 인터넷의 사회적 영향을 탐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질문이다. 다만, 적어도 복고 열풍라는 점에서는 인터넷이 전 세계를 대동단결시키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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