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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본사 출신 순두붓집 사장, 사람과 공존하는 서빙로봇을 만들다

입력
2023.06.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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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하정우(47) 씨에게도 창업은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실리콘밸리는 누구나 창업을 꿈꾸는 곳이고, 게다가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동문들이 한국 정보기술(IT) 붐을 이끌고 세계적 회사를 키워내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창업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에겐 '꿈의 직장'인 구글을 제발로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능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도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도전해야 할 이유보다 더 많았다.


[곧, 유니콘]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

"그래도 사업엔 관심이 있었으니까 소심하게 부업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2016년 실리콘밸리에 순두부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충격적이더라고요. 정말 금방 깨닫게 됐죠. '식당일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거구나'라는 걸요."

식당일이 끝나면 온몸이 두드려맞은 듯했다. 안 아픈 날이 없었지만 쉴 수가 없었다. 인건비 높기로 손꼽히는 실리콘밸리에서 직원을 늘리긴 어렵고, 사장보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아, 사람을 도와 음식을 서빙하는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창업을 생각할 때와는 달리, 정말 필요성을 느끼니까 '지를 용기'가 저절로 생겼다. "전 세계에 테크를 다룰 줄 알면서 식당을 해 본 사람은 얼마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거야 말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2017년 세운 스타트업이 서빙 로봇을 개발하는 베어로보틱스다. 창업 5년여 만에 한국과 미국·일본 시장을 사로잡고, 유럽과 동남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베어로보틱스는 현재 실리콘밸리 한인 스타트업 가운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세계 각국을 오가며 회사를 키우고 있는 하정우 대표를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어렵게 만났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베어로보틱스의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베어로보틱스의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가 활짝 웃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1. 식당

부업 삼아 시작한 일이 인생을 바꿨다

순두부가게 운영 경험은 하 대표에게 창업 아이디어만 준 게 아니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이 동네(실리콘밸리)엔 연간 수억 원씩 버는 고액 연봉자가 많잖아요.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소득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식당에서 만난 분들은 그보다 훨씬 적게 벌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삶의 만족도과 풍족함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내로라하는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창업을 했다가 설사 잘 안 되더라도, 무슨 일이든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한 식당 식구의 일침도 큰 동기 부여가 됐다. "스타트업 창업을 계속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식구가 이해가 안되는 듯 묻더라고요. '나는 평생 식당에서 일해서 모은 돈으로 내 식당 하나 차리는 게 소원이다. 어렵게 식당을 차리더라도 망하면 재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장님은 설사 잘 안 돼도 (테크업계로) 돌아가면 되는데, 왜 안 하고 있느냐'는 거였죠."


#2. 서버들을 위한 로봇

서빙 로봇의 존재 이유

베어로보틱스의 서비가 식당에서 서빙 중인 모습. 베어로보틱스 영상 캡처

베어로보틱스의 서비가 식당에서 서빙 중인 모습. 베어로보틱스 영상 캡처


이후 1년의 설계, 4년의 양산 준비 기간을 거쳐 2021년 출시된 베어로보틱스의 서빙 로봇 '서비'(Servi)는 로봇에 '얼굴'이 없는 게 특징이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경쟁사들의 제품과 디자인 측면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얼굴 없는 서빙 로봇을 만든 건 처음부터 '서버들에게 사랑 받는 로봇'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처음부터 로봇을 '서버의 도우미'로 생각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로봇에 얼굴이 있고 없고 여부는 서버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로봇의 존재감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어디에 갖다 놔도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과 편의성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100% 자율주행으로 구동되는 서비의 기능 역시 서버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현장의 편의성을 최우선에 두고 개발했기 때문에 베어로보틱스의 로봇은 사용률이 높다고 하 대표는 자신한다. "중국 경쟁사 로봇은 저렴하니까 사는데, 실제로 안 쓰는 경우도 많아요. 반면 서비를 쓰는 일본의 한 식당은 하루에 300번씩 쓴다고도 합니다. 가격 부담에 일단 한 대만 써보고 추가 주문하는 식당도 늘고 있어요." 로봇 도입이 늘면 사람의 일자리가 줄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노동력 부족으로 갈수록 서버 자체를 고용하기는 게 어려워지고 있어 실제 서비를 쓰는 식당 중 인력을 줄인 경우는 극소수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베어로보틱스는 지난해 말 아일랜드에 지사를 세우고, 영국·프랑스·아이슬란드 등 유럽 각국 식당에 서빙 로봇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제 서빙 로봇이 인지도나 신뢰도는 충분히 쌓은 것 같고, 앞으로가 본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8월 테슬라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8월 테슬라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3. 시장성

로봇에 있어 혁신만큼 중요한 것

베어로보틱스의 잠재적 경쟁자 중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가 있다. "테슬라의 미래는 로봇이 될 것"이라 말하는 머스크는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사람을 닮은 로봇이 나오면 지금까지의 모든 로봇을 대체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그러나 머스크가 설사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서빙 로봇을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는 게 하 대표의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도 있죠. 그런데 현실에선 쉽지 않을 겁니다. 가장 근본적 이유는 가격을 낮출 수가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사람들의 거부감도 크고요."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웬만한 자동차 가격보다 비쌀 것으로 전망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로봇 시장은 기능별로 세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리 다방면에 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오더라도, 식당 서빙만큼은 베어로보틱스가 최고일 것이란 자신으로 들렸다.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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