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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수입 0원 찍고 일용직 알바 해도, 첫사랑처럼 스카가 좋다”

입력
2023.04.21 11: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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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6>킹스턴 루디스카 리더 최철욱

편집자주

역사가 승자의 서사이듯, 우리의 이력서도 성공만을 적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열매를 하나 맺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패합니까. ‘삶도-시즌2’는 실패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실패의 정의를 새로이 써보자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실패합니다. 지금도 무수히 실패하는 중입니다. 나의 실패와 당신의 실패는, 그래서 별것 아니면서도 특별합니다. 그 실패의 시간들을 엮는 ‘실패연대기’입니다.


내년 결성 20주년 킹스턴 루디스카
“성수기와 보릿고개 반복한 19년…
그래도 스카를, 음악을 놓지 않았다”

한국의 독보적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더 최철욱씨를 3월 27일 서울 삼청동 ‘과수원 뮤직바’에서 만났다. 그가 트롬본을 불고 있다. 최주연 기자

한국의 독보적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더 최철욱씨를 3월 27일 서울 삼청동 ‘과수원 뮤직바’에서 만났다. 그가 트롬본을 불고 있다. 최주연 기자

잘 벌 때는 한 달 수입 300만 원, 못 벌 때는 0원. 그래도 괜찮아. 돈은 다른 걸 해서 벌어도 돼. 택시 운전기사, 일용직 아르바이트, 뮤지컬 세션, 음악 강사, 디제잉…. 스카(Ska), 너를 할 수만 있다면. 애초부터 우린 너에게 대단한 걸 기대하지 않았지. 너는 그냥 너로 존재하면 그걸로 족해. 내년이면 너와 사랑에 빠진 지 벌써 20년. 우리는 한국 최초의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 그 누구도 우리의 19년을 쉽게 재단할 수 없어.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거든.’

킹스턴 루디스카의 실패연대기를 노랫말로 만들면 이렇게 압축할 수 있을까. 킹스턴 루디스카는 스카 밴드다. 스카는 196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태동한 음악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스카를 듣고 있노라면, 흥과 한이 마치 스카 가락의 씨줄과 날줄 같다. 즐거운데 슬프고, 슬픈데 즐겁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이 독특한 매력의 음악을 20년째 붙들고 있는 인디 밴드다. 데뷔한 2004년에도 한국에서 유일했는데, 지금도 독보적이다. 큰 돈을 벌어서가 아니다. 숫자에 큰 의미를 뒀다면 이들은 진작 관뒀을지도 모른다. 초창기에도 멤버들이 ‘N잡’을 뛰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더이자 같은 이름의 인디레이블 대표 최철욱(46)씨는 “외려 애초부터 음악으로 먹고살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아 지금까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버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 더 좋아서 하고 있다.

음원 차트를 기준으로 들이민다면, 이들은 실패한 밴드일 테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체 그가 생각하는 실패란 뭐기에.

[실패①] ‘갈매기’는 오래 날지 못했다

그는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지속돼 공연을 할 수 없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그는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지속돼 공연을 할 수 없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순박한 이미지예요. 인디 밴드할 것처럼 안 보여요.

“예전에 방송하러 간 적이 있는데 저를 보더니 금융 프로그램 출연자 대기실로 안내하더라고요. 음악하러 온 누구라고 소개하니까, 놀라면서 주식 설명하러 온 출연자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처음부터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가 주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걸 더 즐겨요. 음악하는 사람이 뭐 특별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옆집 형이나 아저씨처럼 생겼는데, 무대 위에 올라가면 달라지는구나 하는 의외성도 관객이 느낄 수 있고요.”

-무대 위에선 달라지는 걸 느끼나요.

“(목소리 톤이 달라지며) 무대에 올라가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죠. 행복해요. 음악으로 관객에게 좋은 에너지를 드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저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힐링되거든요. 실제 공연 전에 심한 감기 몸살로 덜덜 떨면서 대기하다가 오른 적이 있는데, 무대 위에서 아픈 게 다 나아 버렸어요. 이런 게 치유인가 싶을 정도로 신기했어요.”

-원래 록 밴드를 했다고요.

“네, 고등학교 때 기타와 보컬로 시작했어요.”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국민학교… 아, 저기.”

갑자기 그가 말을 멈추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국민학교라고 해도 되나요? 초등학교라고 해야 하죠? 근데 제가 다닌 건 국민학교라서.” 최철욱은 그런 사람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좋아했어요. 2학년 때 제가 꽂힌 음악이 보니엠의 ‘해피송’이에요. 친구가 자기 형이 팝송 녹음해둔 테이프를 들어보라고 줬거든요. 그 곡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영어를 모를 때니까 들리는 대로 한글로 써가면서 따라 불렀죠.”

-악기는 언제부터 했어요.

“아버지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통기타를 사주셨어요. 아마 제가 기타 치고 싶다고 했겠죠. 교본을 봐가면서 혼자 기타를 연습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중창단에 들어갔어요. 음악하는 동아리니까 누구 하나라도 기타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배우려고요. 근데 알고 보니 성악만 가르치는 곳이더라고요. 학교가 개신교 기반이라 노래도 성가를 불렀죠.”

몸은 중창단에서 성가를 불렀지만, 그의 마음엔 록 밴드가 꿈틀댔다. 고등학교가 있던 신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있던 산울림 소극장 근처 음악감상실이 숨통을 틔워 줬다. "진짜 밴드를 만들어 보자." 수소문을 했다. 다른 학교 친구까지 4명이 모여 밴드를 결성했다. 이름은 ‘갈매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멤버 중 누군가가 “야, ‘갈매기’ 어때?” 했고, 다들 “오, 바로 그거야!” 해서 ‘갈매기’가 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단순해서 명쾌한.

‘갈매기’는 신촌 기찻길 옆 합주 연습실에서 모이곤 했다. 한 시간 빌리는 데 5,000원. 그때 카운터엔 머리칼을 빨갛게 염색한 형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엔 아주 튀는 스타일. 게다가 ‘쿨’했다. 그 형의 일렉트릭 기타를 빌려 연습하다 줄을 끊어뜨려도 “괜찮아” 했다.

“홍대에 있는 ‘클럽 드럭’이란 곳에 가면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대.” ‘갈매기’는 클럽 드럭에 출동했다. 그런데 그 빨간 머리 형이 이번엔 클럽 드럭 계단에 앉아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형이 말했다. “너희도 여기 와서 공연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한번 오디션 보러 와!” 수능이 끝나고 ‘갈매기’는 진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결과는 합격. 오디션을 마치고 클럽 드럭을 빠져 나와 극동방송국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갈매기’는 클럽 드럭의 초창기 멤버가 됐다.

그때 클럽 드럭 무대엔 갈매기 외에도 두 밴드가 섰다. 크라잉넛과 옐로우 키친이다. 그뿐인가. 시간이 흘러 ‘갈매기’의 기타리스트 최철욱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더가 되고, ‘갈매기’에 오디션을 제안한 빨간 머리 형은 노브레인의 보컬(이성우)이 됐으니 홍대 인디신의 초대 역사다.

1996년 서울 명동 거리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쇼’ 무대에 선 ‘갈매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가 그다. 최철욱 제공

1996년 서울 명동 거리에서 열린 ‘스트리트 펑크쇼’ 무대에 선 ‘갈매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이가 그다. 최철욱 제공

-클럽 드럭 무대에 섰다고요.

“네! 그때는 관객이 보통 대여섯 명 있던 시절이에요. 한번은 옐로우 키친이 공연할 때 관객이 2명이었대요. 한창 공연을 하는데 그 두 사람이 갑자기 어디론가 가더래요. 관객이 없어져 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데, 다시 들어오더래요. 화장실에 갔던 거죠.”

-무대는 클럽 드럭이 처음이었겠네요.

“맞아요. 우리 앞에 대여섯 명이 있을지라도,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기타도 부숴 가면서 공연을 했죠. 음악이 삶을 압도했던 시절이에요.”

그랬던 클럽 드럭이 유명해진 계기가 있다. 1996년 5월 홍대 주차장 거리와 명동 한복판에서 클럽 드럭이 연 ‘스트리트 펑크쇼’ 이후다. 클럽 드럭을 찾는 발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갈매기’가 공연할 때도 사람들이 많아졌겠네요.

“엄청나게요. 사람들이 몰려서 줄을 서고, 입장도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제 기분은 마치 ‘우드스톡 페스티벌’ 무대에 선 듯했죠.”

‘갈매기’는 오래 날지 못했다. 멤버들 사이에 음악 취향이 달라진 게 문제였다. 그는 스카펑크(Ska-punk)에 관심이 생겼다. ‘갈매기’에서 나온 뒤 ‘기타로 쏜다’라는 스카펑크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타로 제대로 쏘지는 못했다. 1년 남짓 활동한 뒤 접었다. 그리고 군 입대,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오고 있었다.

[실패②] 보험 영업도 길이 아니었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처음부터 ‘공연’에 무게중심을 둔 밴드였다. 사진은 2019년 6월 강원 철원군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킹스턴 루디스카. 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킹스턴 루디스카는 처음부터 ‘공연’에 무게중심을 둔 밴드였다. 사진은 2019년 6월 강원 철원군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킹스턴 루디스카. 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제대 후에 뭐하고 살지 고민이 됐을 것 같아요.

“대학 전공이 기계공학이거든요. 제대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열심히 했어요. 딸 수 있는 자격증이 건설 기계 기사라서 그 준비도 했죠. 음악이야 밴드의 꿈을 갖고 있는 한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공부했죠. 1차 시험에 합격하니까 집안에 경사가 났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엄청나게 자랑을 하셨더라고요. 2차엔 떨어졌지만.”

-회사를 다닌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보험회사에 다녔어요. 필요한 자격증도 땄고요. 3, 4개월 교육을 받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죠. 자동차 보험이었는데, 가입해달라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친척 동생이 가입하겠다고 저를 찾아왔는데 ‘다른 회사 보험도 잘 찾아보고 비교해서 선택해야 한다’며 돌려보냈죠. 군대 후임이었던 지인한테 찾아가서도 밥만 먹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오고요. 고객한테 평생까지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잘 관리하겠다고 약속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음악을 해야 하니까 그랬군요.

“결국 보험회사를 그만뒀죠. 이후 건설 기계 기사 시험에도 떨어져서 아는 형이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알바’를 했어요.”

-킹스턴 루디스카 리더이자 트롬본 주자잖아요. 트롬본은 언제부터 한 거예요.

“일본에 놀러 갔다가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게 됐어요. 특히 브라스(금관악기) 파트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진짜 멋있었죠. 그때 ‘이거는 정말 하고 싶다.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한국에 돌아와선 뮤지컬 무대 조명을 철거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기 살 돈을 모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 중고 트롬본을 싼 값에 구했다.

-트롬본의 매력은 뭔가요.

“소리를 내려면 한동안은 마우스피스만 물고 연습해야 해요. 그러다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악기에 끼우고 수련하죠. 음을 생각하면서 불면 관이 소리를 증폭하고 음계도 정확히 잡아 줘요. 노래 부르는 것과 비슷해요. 바람의 세기와 입술의 진동으로 음이 나오는 거죠. 트롬본의 연주 퍼포먼스도 좋았어요. 정확한 음계 구성 없이 손으로 움직여서 소리를 내는 방식의 악기는 거의 없거든요. 트럼펫이 멜로디를 담당한다면, 트롬본은 받쳐주는 느낌이죠.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역대이기도 하고요.”

킹스턴 루디스카. 왼쪽부터 트럼펫 김정근, 기타 서재하, 색소폰 성낙원, 보컬 이석율, 트롬본 최철욱, 드럼 황요나, 건반 임채선, 베이스 피인혁. 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킹스턴 루디스카. 왼쪽부터 트럼펫 김정근, 기타 서재하, 색소폰 성낙원, 보컬 이석율, 트롬본 최철욱, 드럼 황요나, 건반 임채선, 베이스 피인혁. 킹스턴 루디스카 제공

-스카가 왜 좋았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마냥 신나는 음악을 좋아한 게 아니더라고요. 신나는데 뭔가 애절한 느낌도 있는 음악을 좋아했죠. 스카가 그래요. 리듬은 쿵짝쿵짝 흥겨운데 코드 진행은 단조의 슬픔을 담죠. 대놓고 구슬픈 음악보다 스카가 더 매력 있었어요. 듣다 보면 뭔가를 회상하게 만드는 힘도 있고요. 마음에 여운을 남기죠.”

이윽고 멤버 9명을 모았다(현재는 8명). 그렇게 2004년 킹스턴 루디스카가 만들어졌다. 킹스턴(Kingston)은 스카가 시작된 자메이카의 수도, 루디(Rudie)는 악동, 스카는 이 밴드가 하는 음악 장르다.

-처음엔 수입이 많지 않았겠죠.

“한 번 공연을 하면 개인에게 3만 원 정도가 떨어졌어요. 킹스턴 루디스카는 그때도, 지금도 수입을 N분의 1로 나누거든요. 그래도 공연을 한 날이면, 만 원씩 회비를 걷어서 꼭 뒤풀이를 했어요.”

-밴드를 결성했을 때 가족 반응은 어땠나요.

“킹스턴 루디스카를 만들고 난 뒤 어느 날 아버지가 ‘뭘 하며 살고 싶냐’고 물으셨어요. 그런데 ‘홍대에서 계속 밴드를 하겠습니다’라고 얘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음향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라고 답해 버렸어요.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더니, ‘공부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에도 ‘요리를 배워보는 건 어떠냐. 앞으로 유망한 분야가 될 것 같다’ ‘한옥을 고치는 기술을 배워보는 건 어떠냐. 요즘 그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더라’라고 종종 말씀하셨죠. 그런데 번번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언제 제대로 얘기를 하게 됐나요.

“어느 날 가족들이랑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아버지가 ‘음악이 그렇게 좋으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술도 한 잔 했겠다 제가 ‘너무 좋습니다’ 했어요. 아버지가 또 ‘목숨을 바칠 정도로 좋으냐’ 물으시기에 ‘그럼요’ 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세상에 너를 끝까지 책임져 줄 직업은 없다. 음악이 그렇게 좋으면 한번 해봐라’ 하셨죠.”

킹스턴 루디스카는 스카 밴드로 새 역사를 써 나갔다. 2014년 일본 레게레코드닷컴의 스카 차트 4개 부문에서 1위를 했고, 2015년엔 영국 BBC 음악 전문 매체 ‘글로벌 비츠(Global Beats)’가 선정하는 세계 대표적 스카 밴드 중 하나로 꼽혔다. 2018년 아시아 밴드로는 유일하게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스카 레게 페스티벌’과 미국 ‘시에라네바다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같은 해 쿠바와 북미에서 단독 투어를 한 데 이어 이듬해엔 한국 밴드 최초로 쿠바 음악 페스티벌인 ‘쿠바 디스코’에 초청받았다. 최근엔 한국 전통놀이패 연희컴퍼니 유희와 ‘유희스카’를 결성해 공연판을 들썩이고 있다.

[실패③] 스카가 ‘수입’을 보장하진 못하지만

그는 2003년부터 트롬본을 잡았다. 최주연 기자

그는 2003년부터 트롬본을 잡았다. 최주연 기자

-스카라는 장르 음악에 확신이 있었나요.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은 확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싫어져서가 아니라 확신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서요.”

-어떤 의미에서요.

“킹스턴 루디스카 활동 19년을 포함해 스카에 빠져 지낸 세월이 30년이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질리지가 않아요. 심지어 신선하게 들리기도 해요. 그러니까 얘(스카)는,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붙잡아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있는 존재인 거예요. 그런데 ‘확신’ 같은 확언을 하면 계약 관계가 돼버릴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너를 끝까지 하겠어’라기보다는 ‘나는 네가 계속 좋아, 만나고 만나도 왜 이렇게 새롭고 재미있니’ 같은 느낌이죠.”

-한국의 스카 밴드로서 독보적인 역사를 썼지만, 그와 별개로 생계는 어땠나요.

“음악하는 사람들이면 공통적으로 느낄 거예요. 성수기가 있고, 보릿고개가 있죠. ‘이 정도면 음악만 해도 먹고 살겠다’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공연이 없을 때는 너무 없거든요. 예를 들어, 11월 말부터 3월까지는 야외 공연이 거의 없어요. 밴드에게는 보릿고개죠.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그 시기를 넘기는 방법도 터득했어요.”

-어떤 방법인가요.

“다른 활동을 하는 거죠. 지금도 멤버들은 음악을 가르치거나, 개인 택시를 몰거나, 무인 오락실을 하거나, 디제잉이나 뮤지컬 세션 활동을 해요. 저도 택배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하거나 아내의 일을 돕죠.”

-그런데도 19년이나 밴드를 했으니 대단해요.

“똘똘 뭉쳐서 밴드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경제적인 문제는 각자 해결을 하기로 했죠. 그래야 음악을 고스란히 남길 수가 있더라고요. 스카라는 장르에 이 짐까지 지우면 그때는 싫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스카를 탓하지 말자, 아껴주자, 얘한테 부족한 부분은 다른 데서 채우자, 이런 거죠.”

-내년이 결성 20주년이에요.

“체감상으론 10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이 정말 빨라요. 공연 무대에서 얻는 에너지 덕분인 것 같아요. 힘들지만 버틴다고 생각했으면 아마 10년도 채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도 힘든 일은 있었을 텐데요.

“40대가 되면서 멤버들의 안정적인 수입을 책임지기 어려울 때 리더로서 죄책감이 들었죠. 코로나만 해도, 나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닌데 리더로서 그저 미안한 거예요.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우리 멤버들은 적은 돈을 나눠도 서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런 멤버들이라서 더 미안했죠.”

[실패란] 실패? 벌써?

‘유희스카’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킹스턴 루디스카. 그는 “앞으로도 스카와 함께 떠나고 싶은 음악여행이 많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유희스카’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킹스턴 루디스카. 그는 “앞으로도 스카와 함께 떠나고 싶은 음악여행이 많다”고 말했다. 최주연 기자

-최근엔 ‘유희스카’ 공연으로 전환기를 맞았죠.

“맞아요. 다행스럽게 연희컴퍼니 유희와 2018년 ‘유희스카’를 결성해서 지금은 킹스턴 루디스카보다 ‘유희스카’로 얻는 수입이 더 많을 정도예요. 원래 스카 음악이 한국의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국악과 만나니까 흥이 폭발하는 거예요. 타악 위주인 연희컴퍼니 유희에 킹스턴 루디스카의 멜로디가 얹히니 신선하기도 했죠.”

-킹스턴 루디스카가 이룬 성공은 뭔가요.

“스카라는 장르를 한국에 알리고 저변을 확대해 왔다고 생각해요. ‘유희스카’를 만들면서 또 다른 숙제가 생겼고요.”

-그렇다면 킹스턴 루디스카의 실패는요.

“실패라고 한다면…, 이걸 그만하겠다고 선언하는 날, 그때가 실패 아닐까요. 상승도, 하락도 있었지만, 놓지 않았잖아요. 우리 멤버들은 진짜 스카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오히려 엄청난 성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작은 성공들과 그 사이에 생긴 징검다리들 덕분에요.”

그가 뭔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말했다.

“아, 실패한 게 있네요. 외모 관리에 실패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살이 엄청나게 쪄서…. 요즘은 샤워할 때 거울에 비친 몸을 보기 싫어서 전등 대신 캠핑용 작은 램프를 켜 놓고 한다니까요. 한때 이완 맥그리거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당황했다. 이완 맥그리거라니. 이완 맥그리거 참 좋아했는데. 의아한 표정을 들켰나 보다. 그가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뒤적이더니 사진을 내밀었다. 20대 초반이라고 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이 있었다.

1996년 홍대 클럽 드럭 입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세 번째가 최철욱씨, 네 번째가 노브레인 이성우씨다. 최철욱 제공

1996년 홍대 클럽 드럭 입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 세 번째가 최철욱씨, 네 번째가 노브레인 이성우씨다. 최철욱 제공

-실패의 정의를 새로이 쓴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황이 ‘실패’ 아닐까요. 설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루지 못할까 봐) 함부로 말하지 못할 정도로 스카를 계속하고 싶거든요. 지금도 스카를 토대로 도전하고 싶은 게 많아요. 스카와 함께하는 음악여행 같은 거요. 70년대 올드한 사운드를 스카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힙합하고 만나면 또 어떨까, 90년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같은 레게풍의 대중음악과는 또 어떻게 어울릴까 생각하죠.”

‘모노레일’(2019)을 탄 듯 ‘Everyday’(2015) 스카 음악에 빠져 ‘Ska Heaven’(2012)에서 산 19년이었다. 실패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엔 아직도 스카가 주는 ‘Double happiness’(2010)가 너무도 크다. 적어도 음악 때문에 실패를 체감해본 적은 없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밴드, 행복한 리더 아닐까. 그렇기에 그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입니다’(2010). ‘Ska bless you’(2010)!

김지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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