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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미용도 보험금으로 해드려요"... 병원의 은밀한 유혹

입력
2022.09.1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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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 좀먹는 보험 사기]
과잉 진료, 의료쇼핑 지목 병원 가봤더니...
피부 미용·코 성형까지 '치료 목적' 둔갑
백내장 외 갑상선·하이푸도 과잉공급 의심
"의료수가 등 가이드라인 만들어 관리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떤 회사 실손보험 가입하셨어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받고 로그인해서 보여 주세요.”

이달 초 서울 시내 한 피부과를 찾아 “실비 청구되는 미용 시술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상담실장은 익숙한 듯 보험사 앱에서 이것저것 눌러보며 일일 통원 한도를 조회하더니 아토피 등 피부 치료용 보습 관리인 ‘NDA플러스’를 권했다.

순수 미용 목적인데도 (보험) 청구가 가능한 건지 재차 묻자 “건조증은 개인이 느끼기 나름 아니겠느냐”며 “한 번에 5회씩 결제해도 서류와 영수증은 한도에 맞게 나눠서 끊어 주겠다”고 안내했다.

이어 방문한 인근 가정의학과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자 비타민 등을 혼합한 영양 주사를 추천했다. 영양제 개념인데도 보험 처리가 되는지 묻자 ‘백옥주사’로 유명한 글루타치온 등 청구가 제한되는 성분을 뺀 조합으로 처방해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시간가량 수액을 맞고 받아본 진단서엔 “탈수, 섭취 불량으로 소모성 질환에 대한 의학적 필요에 의해 치료 목적으로 주사제 및 수액제제를 병행했다”고 적혀 있었다. 진료 과정에서 (기자가) 언급하지 않았던 구토ㆍ허리통증ㆍ급성인두염ㆍ위십이지장염 같은 증상도 잔뜩 나열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피부미용ㆍ성형ㆍ영양제까지… 의료쇼핑 백태

병원 안내대로 비싼 피부미용 시술이나 영양주사를 맞고 보험금을 청구해도 괜찮을까? 당연히 불법이다. 의료법 22조에 따라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 기재 또는 수정해선 안 된다. 병원이 미용 목적의 비급여 진료를 치료로 둔갑해 소견서를 발급하고, 소비자가 이를 이용해 보험금을 타내는 행위는 일종의 ‘보험사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의료기관과 보험 소비자가 실손의료보험 보상 한도를 악용해 과잉 진료와 의료쇼핑을 일삼고 있다고 업계는 우려한다. 관련 실손보험금 지급이 계속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상위 5개 손해보험사(삼성ㆍ현대ㆍDBㆍKBㆍ메리츠)의 실손보험 지급보험금 중 피부 관련 보험금은 전년 대비 18.57% 증가한 1,526억 원에 달했다.

기자가 잠깐 두어 곳을 직접 체험한 사례도 이런 현실을 방증한다. 실손보험을 이용해 코 성형수술을 했다는 후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비염, 축농증 등 치료 목적으로 콧속 휘어진 비중격(좌우 코 안의 경계를 이루는 벽)을 다시 세우거나, 좁아진 비밸브(코 안의 빈 공간 중 상단에 위치한 좁은 길)를 넓히는 재건술을 하면서 콧대도 높이는 식이다. 탈모나 양악수술, 휜 다리 교정 등도 치료와 성형을 오가며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내는 의료쇼핑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제2의 백내장 수술? 과잉 진료 널려 있다

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대표 비급여 항목으로는 백내장 수술과 함께 도수치료, 갑상선 결절 고주파절제술, 자궁근종 하이푸 시술(고강도초음파집속술) 등이 꼽힌다. 생명보험협회ㆍ손해보험협회도 최근 보험 사기 제보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특별 신고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면서 백내장에 한정됐던 신고 대상을 이들 치료까지 확대했다.

갑상선 결절 고주파절제술은 갑상선에 생기는 혹이나 종양 크기를 줄이는 치료법이다. 양성 결절은 그냥 둬도 되지만, 크기가 점점 커지거나 압박감, 이물감이 심할 경우 치료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보험사들은 일부 병원에서 고주파절제술을 과도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 한 대형 손해보험사의 갑상선 수술보험금 지급액은 2018년 5,900만 원에서 지난해 45억7,500만 원으로 약 78배 급증했다. 특히 청구 다발 병원 상위 10곳에 전체 보험금의 70%가량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궁근종 하이푸 시술도 고강도 초음파를 집중시켜 종양의 괴사를 일으키는 비급여 시술이다. 역시 매년 청구 건수가 늘고 있고, 소수 의료기관에 청구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의료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인 '고무줄 진료비'가 눈에 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종합병원에서 평균 372만 원인 하이푸 시술비는 의원급에서 평균 979만 원까지 치솟았다. 비용을 부풀리는 대신 자궁거상술, 질성형 수술 등을 함께 해주는 병원도 있다. ‘서비스’ 명목으로 이들 시술에 대한 비용까지 보험사에 전가한 셈이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비급여 수가 등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일부 보험 소비자의 과잉 진료ㆍ의료쇼핑에서 비롯된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같은 보험에 가입한 다른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다. 실손보험 적자는 계속 심화하는 추세다.

2017년 1조2,004억 원에서 지난해 2조8,602억 원으로 적자액이 뛰었고, 올해 3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위험손해율은 매년 100%를 상회해 지난해 130.4%를 기록했다. 쉽게 말해 가입자가 보험료 10만 원을 낼 때 보험사는 13만 원을 지급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올해 실손보험료는 평균 14.2%나 인상됐다.

전문가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비급여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 협의 채널을 구축해 실시간 모니터링과 통계 수집을 강화하고, 중ㆍ장기적으로 독일처럼 진료량과 수가를 항목별로 표준화한 ‘비급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단기 과제로는 과잉 공급이 빈번한 몇몇 비급여 항목을 집중 관리해 치료 인정 기준을 정립하고 선별적 급여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보험 사기 처벌 강화 목소리도 있다. 현행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라 보험 사기 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징역형은 극히 드물고, 보험회사 임직원이나 의료기관 종사자 등에 대한 가중처벌도 없어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관련 개정안은 총 9건. 손보업계 관계자는 “보험 사기 적발액이 1조 원에 달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6조 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며 “법 개정에 여야 간 공감대가 있는 만큼 연내 처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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