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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연에 거액 슈퍼챗 쏜 의사... '배신자' 낙인 찍히자 '불륜' 거짓 영상까지

입력
2022.08.25 23: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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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정치 평론 유튜버도 의문 품자 신상 털려
적 만들어 욕할수록 충성 구독자 수익 늘어
"팬덤은 사이비 종교… 견해 다르면 타깃"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전문의 김연수(가명)씨는 지난달 말 한국일보와 만나 가세연 팬덤으로부터 받은 공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정원 기자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전문의 김연수(가명)씨는 지난달 말 한국일보와 만나 가세연 팬덤으로부터 받은 공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정원 기자

"저는 '네임드(특정 집단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였죠. 가세연(가로세로연구소) 멤버들도 저를 알았어요. 처음엔 관심받는 게 신나서 중독되고 있단 생각도 못했어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전문의로 일하는 김연수(가명)씨에게 지난 1년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올해 2월 보수 유튜버 이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이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씨에 대한 모욕적 허위사실을 담은 영상을 지속적으로 게시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정신적 피해보상금으로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2019년 여름부터 열성적인 정치 유튜브 구독자가 됐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을 향한 각종 유튜브발 허위 소문 탓에 유튜브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최근 병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김씨는 "정치 유튜브에 몰두했던 시간들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라며 "피해를 당했지만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의사 구독자님' -> '배신자'... 낙인찍기는 순식간

한국일보는 정치 유튜브 관련 판결문과 재판 진행 서류 30건 이상을 분석해 맹목적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포화상태가 된 정치 유튜브 생태계를 분석했다. 최주연 기자

한국일보는 정치 유튜브 관련 판결문과 재판 진행 서류 30건 이상을 분석해 맹목적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포화상태가 된 정치 유튜브 생태계를 분석했다. 최주연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논란이 한창이던 2019년 김씨는 의료업계 지인의 추천을 받고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를 접하게 됐다. 김씨는 "예능처럼 재밌는 영상을 보니까 가세연이 '젊은 보수'를 대변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퇴근 후 시청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실시간 방송에서 수십만 원대 슈퍼챗을 반복적으로 쏘고, 의학 전문성이 묻어나는 댓글로 진행자들과 소통하며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김씨의 명성은 독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3월 가세연 구성원 A씨가 올린 내부 폭로 영상이 도화선이 됐다. A씨가 영상에서 "가세연이 거짓 선동으로 후원금을 전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김씨는 A씨 폭로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A씨가 가세연 구독자들 사이에서 이미 '배신자'로 낙인 찍혔기에, 김씨도 곧바로 표적이 됐다. 김씨를 둘러싼 악성 루머가 팬덤 내부에서 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해 4월 이씨의 유튜브 채널에는 "A씨와 김씨가 불륜 관계"라는 거짓 영상이 올라왔다.

"비난하고 욕할 때 수익 최고치"

김씨가 가세연 구독자들의 표적이 되자, 이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엔 김씨의 가족 사진부터 본명, 나이, 직장 등 수많은 신상 정보가 올라왔다. 신경불안 증세에 시달리던 김씨는 결국 이씨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씨는 가세연 멤버였던 강용석 전 의원의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다. 이씨는 법정에서 "김씨가 가세연을 비방한 A씨에 동조하는 걸 보고 골탕 먹이려고 루머를 퍼트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김씨에 대한 영상을 제작한 배경에 경제적 유인이 있다는 점도 적시했다. 재판부는 "가세연과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이씨는 김씨의 개인정보를 취득해 허위로 김씨를 비방했는데, 이씨가 김씨를 비난하는 방송을 할수록 시청자 수와 광고 수익은 최고치를 찍었다"고 밝혔다. 구독자가 1만 명도 되지 않던 이씨의 채널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데엔 자극적 방송이 큰 역할을 했다고 진단한 셈이다.

올해 4월 가세연 진행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유튜브 채널 가세연 영상 캡처

올해 4월 가세연 진행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유튜브 채널 가세연 영상 캡처

김씨는 승소했지만 정치 유튜브의 폭력성에 질린 상태였다. 그는 "의사가 되겠다고 공부도 많이 하고, 평소 객관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신기루 같은 정치 유튜브에 중독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가세연이 조 전 장관 딸이 근무하는 병원까지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방송하는 걸 봤을 땐, 내 일과 겹쳐 보여 숨이 막혔다"고 말했다.

적대 문화가 부른 고소·고발전... 유튜버들끼리도 진흙탕 싸움

한국일보는 정치 유튜브 관련 판결문과 재판 진행 서류 30건 이상을 분석해 맹목적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정치 유튜브 생태계를 분석했다. 최주연 기자

한국일보는 정치 유튜브 관련 판결문과 재판 진행 서류 30건 이상을 분석해 맹목적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정치 유튜브 생태계를 분석했다. 최주연 기자

몰지각한 정치 유튜버의 폐해는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보가 최근 4년간 유튜브 관련 명예훼손 판결문 3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유튜브 채널에서 특정인을 상대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을 일삼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 중엔 김씨 사례처럼 '불륜'을 소재로 허위사실을 퍼뜨린 경우가 많았다. 정치 유튜버 C씨는 다른 유튜버 D씨를 상대로 "대학 교수를 유혹해 불륜을 저질렀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지난해 9월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C씨는 D씨가 자신이 지지하는 보수 성향 유튜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

특정인을 타깃으로 한 공격은 온라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19년 진보 성향의 한 유튜버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쥐약을 전달하려다 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과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도 피고인의 행동은 사회상규나 정당한 행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반대 진영 유튜버 사무실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업무를 방해하고, 같은 진영 내 유튜버를 상대로도 '유흥업소를 운영한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도 있었다.

실시간 채팅창과 스튜디오 지원사격... 팬덤의 형성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김씨 설명에 따르면, 가세연 팬덤 문화의 출발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 두세 시간 전부터 개방되는 실시간 채팅창이었다. 김씨는 "채팅창을 장시간 열어놓다 보니 구독자들이 서로 존재를 인식하고, '00님 오셨네요'라며 인사를 한다"며 "방송 중 센스 있는 채팅과 함께 슈퍼챗을 쏘게 되면, 그 구독자에 대한 팬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씨도 팬덤 내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의사 구독자'로 알려지게 됐다.

김씨는 한때 소수의 충성 구독자만 입장할 수 있는 오픈 메신저방에서 방장을 맡았다. 해당 메신저방에 들어가려면 가세연 멤버의 반려견 이름을 알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김씨는 "방에 모인 사람들은 강남의 가세연 방송 스튜디오에 거의 매일 나갔고, 방송이 끝나면 출연자들과 회식을 하기도 했다"며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스튜디오까지 찾아와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기도 했다"고 전했다.

잠적한 정치 유튜버 "팬덤은 사이비 종교... 난 세상에 악영향만"

강용석(왼쪽)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경찰서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강용석(왼쪽)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경찰서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정치 유튜브의 폭력성은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까지 질리게 만든다. 잠적한 정치 유튜버 최정욱(가명)씨는 한때 정치 평론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수년 전 가세연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가 김씨와 유사한 방식으로 공격을 받았다. 가세연 구독자들이 최씨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비난하자, 그는 유튜브와 담을 쌓았다.

전직 정치 유튜버 최씨는 한국일보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부하다가 어렵사리 통화에 응할만큼 유튜브 생태계의 폭력성에 질려 있었다. 최씨와의 메신저 화면 캡처

전직 정치 유튜버 최씨는 한국일보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부하다가 어렵사리 통화에 응할만큼 유튜브 생태계의 폭력성에 질려 있었다. 최씨와의 메신저 화면 캡처

최씨는 "맹목적 팬덤 형성은 정치 유튜버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라며 "공동의 적을 만들어 다 같이 헐뜯을수록 성공한 유튜버가 되는 구조"라고 한탄했다. 최씨는 특히 "유튜버들이 충성 구독자들을 향해 '우리는 위기다' '저들이 우릴 괴롭힌다'고 주입할수록, 유튜버에 대한 맹신은 더욱 강화된다"며 "사이비 종교식 구조가 정착되면 자정 기능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한때 유튜브 팬덤 문화를 이용해 인기를 누렸던 사실에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돌이켜보면 당시 자극적 주장을 인용하고 거짓인 걸 알면서도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 같다"며 "세상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부채감이 커서,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1. 평산마을의 여름 한 달간의 기록

2. 팬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세계

3. 불순한 후원금, 선의와 공갈 사이

4. 정치권, 필요할 땐 이용하고 뒷짐

이정원 기자
조소진 기자
심희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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