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중국에만 의존했던 네오디뮴... 기술 앞세워 자체공급망 구축 성공

입력
2022.07.18 04:30
수정
2022.07.18 09:30
1면
0 0

<상> 기술로 이룬 탈중국
중국 편중·환경규제 탓 희토류 공급망서 소외
KSM, 친환경 기술 무기로 국내에 공장 신설
영구자석 분야 대중 의존도 대폭 낮아질 듯

KSM메탈스 직원들이 네오디뮴 합금 생산시설의 점검 작업을 하고 있다 네오디뮴은 희토류에 속하는 희소광물로, 이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네오디뮴합금은 전기차 구동을 위한 영구자석의 필수소재다. 청주=윤현종 기자

KSM메탈스 직원들이 네오디뮴 합금 생산시설의 점검 작업을 하고 있다 네오디뮴은 희토류에 속하는 희소광물로, 이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네오디뮴합금은 전기차 구동을 위한 영구자석의 필수소재다. 청주=윤현종 기자


우리나라에선 처음입니다.

5일 오후 충북 청주시 한국전략소재금속(KSM메탈스) 공장. 조성래(55) KSM메탈스 대표는 공장 안으로 발을 딛자마자 한 설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너비 20m, 높이 3m가량 돼 보이는 육중한 기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희토류 원소 네오디뮴(Nd·원자번호 60번)을 제련해 합금으로 만드는 시설이다.

발음도 어려운 네오디뮴은 일반인에겐 매우 생소한 원소지만, 초강력 자석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광물이다. 네오디뮴 합금은 전기자동차 모터를 돌리는 영구자석 완제품에 반드시 쓰이는 중간재라, 네오디뮴은 희토류 17개 중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원료다.

한국은 지금껏 희토류 합금을 생산할 수 없는 나라였다. 국내에도 희토류가 존재하긴 하지만, 채산성 문제로 채굴이 어려웠다. 어렵게 캐더라도 제련 과정에서 독성가스가 생기는 등 환경오염이 심했다. 그래서 네오디뮴이 들어간 영구자석은 완제품 형태로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네오디뮴의 수입처는 거의 중국(2020년 의존도 88%)이었다. 희토류 원료→희토류 원료로 만든 금속(합금)→희토류 합금이 쓰인 부품→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네오디뮴의 공급망 안에서 한국이 낄 자리는 없었다.

중국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희토류는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원소임에도 반도체·전자제품·통신기기·자동차 등에 필수적인 원료로 '산업의 비타민'이라고 불린다. 이 희토류 공급 세계 시장의 약 70%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보호주의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2020년 12월 특정 품목 수출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수출통제법을 시행했으며 작년 1월엔 희토류 생산·수출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관리규정을 발표했다.

물론 한국이 희토류 자체 공급망을 만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 조건이 붙는다. 첫째, 자원을 무기화할 우려가 적은 나라에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둘째, 그렇게 공급받은 희토류를 국내에서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을 대신할 나라를 찾기가 쉽지 않고, 국내 환경 규제를 충족할 생산 시설을 만들기도 어렵다.

대체 공급지와 친환경.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 거의 유일한 국내 기업이 바로 KSM메탈스다. KSM메탈스는 친환경 금속 제련 기술을 보유한 충남대 스타트업(지론텍)을 인수해 국내에서 희토류 합금(네오디뮴+철+붕소)을 만든다.

희토류 공급망 흐름도 비교 그래픽. 김문중 기자

희토류 공급망 흐름도 비교 그래픽. 김문중 기자

KSM메탈스의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는 호주의 종합 광물기업 ASM인데, ASM은 자체 광산에서 채굴한 희토류 원료를 KSM메탈스에 공급할 예정이다. 네오디뮴 채굴·가공(ASM)→네오디뮴 합금 제작(KSM)→부품 제작(국내 업체)→완성품 제작(국내 업체)으로 이어지는 '탈중국 공급망'이 곧 완성된다. 희토류 분야에서 가장 처음으로 구축되는 자체 공급망이다.

자원부국 ‘러브콜’ 부른 국내 기술

네오디뮴 독립의 시작은 ‘기술’이었다. 이종현 충남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주도로 2018년 설립된 스타트업 지론텍은 독성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희토류 원료(산화물)를 금속으로 제련하는 기술(LCE 공정)을 개발했다. 이 교수팀은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했다. 그러자 호주의 대형 광물기업 ASM이 움직였다. 폐기물 없이 한국에 희토류 광물을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조성래 대표는 “기술이 자원부국의 러브콜을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ASM은 2019년 지론텍에 120만 달러(당시 기준 약 14억 원)를 투자해 LCE 공정 상용화를 위한 시험 생산설비를 세웠다. 여기서 가능성을 확인한 ASM은 2020년엔 아예 지론텍 회사 자체를 인수해 한국법인(KSM메탈스)을 설립하고, 기술 특허를 확보했다. 5월엔 청주 공장이 완공됐다. 한국 연구진이 KSM메탈스의 연구개발 인력으로 소속돼 있고, 원천 기술을 개발한 이종현 교수는 기술자문을 맡고 있다.

조성래 KSM메탈스 대표가 청주공장에서 생산된 네오디뮴 금속괴(잉곳)를 들어 보이고 있다. 청주=윤현종 기자

조성래 KSM메탈스 대표가 청주공장에서 생산된 네오디뮴 금속괴(잉곳)를 들어 보이고 있다. 청주=윤현종 기자


1차 가동만으로 국내수요 20% 충족

전체 면적 1만9,800㎡(약 6,000평)의 공장엔 영구자석에 쓰일 네오디뮴 합금을 만드는 기계 소리가 가득했지만, 일하는 직원은 20명도 채 안 돼 보였다. 조 대표는 “희토류 합금 생산시설의 자동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원료 주입부터 합금이 나오는 전 과정을 무인화하는 계획인데, 전 세계에서 시도해 본 적 없는 작업이다.

현재는 네오디뮴 합금의 시제품을 생산 중인데, 정식 판매를 앞두고 있다. 조 대표는 작은 비닐로 포장된 제품을 들어 보이며 “지금 제품 사양을 맞추는 중인데, 9월 말이면 판매 가능한 제품이 생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 생산한 네오디뮴 합금 시장의 전망은 밝다. 조 대표는 “전기차 모터에 네오디뮴 합금으로 된 영구자석만 3~4kg 정도가 쓰이는데, 향후 수요는 20배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반면 공급은 10년 안에 2배 이상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시운전 종료 후 공장이 본격 생산에 돌입하면 우선 국내 수요 20%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SM메탈스 공장에서 전기유도방식으로 네오디뮴 합금이 주조되고 있는 모습. KSM메탈스 제공

KSM메탈스 공장에서 전기유도방식으로 네오디뮴 합금이 주조되고 있는 모습. KSM메탈스 제공

판로도 몇 곳은 이미 정해졌다. 모두 영구자석 관련 업체다. 조 대표는 “국내 업체 1곳, 해외 업체 1곳과 양해각서(MOU) 단계까지 와 있고 제품 규격 조율 등이 끝나는 대로 판매가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SM메탈스가 완성 중인 자체 공급망은 영구자석 관련 산업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영구자석 완제품 생산업체 중 하나인 성림첨단산업은 국내에 형성되고 있는 희토류 공급망의 수혜를 입을 예정이다. 성림첨단산업 관계자는 “호주 ASM 측에서 영구자석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들여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만드는 영구자석 등 부품 상당수는 현대차로 공급된다.

자체 공급망 완성에 관심 필요

KSM메탈스를 중심으로 한 네오디뮴 산업 공급망은 이제 ‘마지막 고리’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ASM이 호주 현지 희토류 광산에서 원료(희토류 산화물)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일이다. 문석진(51) ASM 아시아총괄대표는 “호주 정부에서 환경 관련 인허가를 받고, 채굴한 희토류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기술을 10년 이상 걸려 개발했다”고 밝혔다.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KSM메탈스 공장 전경. KSM메탈스 제공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KSM메탈스 공장 전경. KSM메탈스 제공

ASM은 정제시설 완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길게는 약 3년으로 본다. 이안 갠들 회장은 “공정 수행 상황에 따라 더 단축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제시설을 만드는 기본 설계 등엔 국내 기업 현대엔지니어링이 참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영구자석을 많이 쓰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향후 희토류 수급 등 긴밀한 협력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의 스타트업이 호주의 거대자본을 만나 탄생한 KSM메탈스의 자체 공급망 구축 실험은 희토류 수입 의존도가 심한 한국 산업계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경훈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핵심원료 공급망의 자체 구축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시점에서 KSM메탈스와 같은 접근 방법은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희토류 및 전기차 원료의 중요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는 만큼 유사 모델이 계속 생길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희토류, 독립의 조건

<상> 기술로 이룬 탈중국
<하> 희소금속 수급 리포트


청주 = 윤현종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