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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재 변호사는 왜 제자와 사랑을... 억지 로맨스로 '캐붕'

입력
2022.07.14 1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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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로스쿨 교수와 학생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SBS 제공

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한 장면. 로스쿨 교수와 학생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SBS 제공

"로맨스 좀 빼면 안 되나."

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이런 류의 글이 빗발친다. 없는 로맨스도 만들어 달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반대다.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시청률도 떨어졌다. 4회 만에 10%대를 돌파(10.1%)했던 시청률은 후반으로 갈수록 7%대(11회 7.0%, 12회 7.7%)에서 머무는 추세다.

드라마의 배경은 TK로펌이다. 고졸 출신의 변호사 오수재(서현진)가 굴지의 로펌에서 대표 변호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수재는 정의롭지 않다. 오로지 성공에 대한 열망만으로 가득한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치인, 기업가 등 고객들의 지저분한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회사의 거물급 고객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를 향해 "엄마 아빠 동생들은 네가 이런 일 하는 거 아니? 우리나라 네티즌 못 찾는 거 없어. 딱 죽고 싶게 만들어 줄까?"라고 협박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오수재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야망이 큰 변호사다. SBS 제공

오수재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야망이 큰 변호사다. SBS 제공

서현진의 연기력은 빛난다. 국내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에 흔하지 않은, 야망으로 가득찬 인물을 표현하는 데서 나무랄 데 없다. 자신을 대표 변호사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자, 회의장에 들어가 "나만큼 TK에 돈 많이 벌어오신 분?", "아니면 나만큼 재판에서 이겨보신 분?"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영화 '미스 슬로운'의 로비스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TK로펌의 최태국 회장(허준호)과 대립하는 장면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긴장감에 균열을 내는 건 로스쿨 제자 공찬(황인엽)과의 로맨스다. 공찬은 과거 살인 누명을 썼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끝까지 믿어줬던 변호사인 오수재가 로스쿨 교수로 오자 한눈에 알아본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 오수재와 공찬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드라마는 시청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로스쿨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두 사람은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 SBS 제공

로스쿨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두 사람은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다. SBS 제공

공찬이 수재와 사제지간으로 다시 만난 지 며칠 안 돼(수재는 공찬을 알아보지 못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손을 잡으며 "저, 교수님 좋아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뜬금없다. 수재가 실수로 유리컵을 깨뜨리자 공찬이 느닷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수재를 책상 위로 안아 올리는 대목도 시청자를 피식거리게 만든다. 로맨스를 위한 억지 설정이 드라마 전체의 긴장감을 무너뜨린 셈이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수재가 제자 공찬에게 너무 쉽게 흔들리고 마음을 여는 것은 '캐붕'(캐릭터 붕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리바이가 있긴 하다. 드라마 기획 의도에는 "이 드라마는 잘못된 선택으로 잘못된 성공을 꿈꿔 온 여자가 한 청년과의 사랑으로 인생을 수정하고,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한 적 없던 자신을 비로소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적고 있다.

수재와 수재가 지도하는 로스쿨 '리걸 클리닉' 학생들. SBS 제공

수재와 수재가 지도하는 로스쿨 '리걸 클리닉' 학생들. SBS 제공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만이 인생을 수정하는, 각성의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로맨스가 없더라도, 공찬을 포함한 로스쿨 '리걸 클리닉' 학생들이 TK로펌의 과오를 밝히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만 담았어도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자신의 초임 변호사 시절을 기억해주는 제자의 무조건적인 신뢰만으로도 수재는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등장인물 각자에 얽힌 사연과 사건이 많기 때문에 이를 풀어나가면서 인간적인 호감을 가진 관계로 남았어도 됐는데, 두 사람을 애정 관계로 묶어 놓으려고 한 점이 아쉽다(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평가에 깊이 공감한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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