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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라는 사회적 유전자 치료술

입력
2021.11.02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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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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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란 부모의 특성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주는 인자이다. 이러한 특성은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현상과 생로병사와 관련한 정보를 말한다. 유전자는 사람마다 다른 조합을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표현되어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해로운 특성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경우를 유전질환이라고 한다. 유전질환은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만이 치료 방법일 것이다.

만일 유전자가 별도로 존재한다면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어 주는 것이 비교적 쉬울 것이다. 사람의 세포에서 유전자는 두 곳에 존재한다. 전체 유전자의 98% 정도는 핵에 있다. 핵에 있는 유전자는 세포 분열을 통해 자식에게 반씩 전해진다. 나머지 2%는 세포질에서 에너지를 합성하는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한다. 수정과정에서 정자의 핵만 난자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수정란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모두 난자, 즉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만 이상이 있다면, 미토콘드리아가 정상인 난자를 기증받아 이상이 있는 난자에서 꺼낸 핵을 주입해 주면 유전자 이상은 치료될 것이다. 이렇게 유전자가 정상인 난자를 만들어 인공수정을 하면 정상인 수정란을 만들 수 있다. 이 수정란 속에는 정자로부터 받은 유전자, 원래 이상이 있던 난자의 핵에서 받은 유전자와 기증받은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공존하게 된다. 즉, 생물학적으로 볼 때 아버지는 한 명이고, 어머니는 핵을 제공한 엄마와 미토콘드리아를 제공한 엄마 두 명이다. 한마디로 부모가 셋이다.

핵에 있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경우, 핵을 통째로 교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98%의 유전자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 버리면 본인의 특성이 거의 없어지므로 그냥 건강한 난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핵에 있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면 이상이 있는 부분만 수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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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정확히 인식하여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로 대체하거나 심지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개발되어 유전자 조작도 거의 실수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여 성인의 비후성심근염 환자를 치료한 예도 있다. 또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맞춤형 형질변경 아기', 즉 디자이너 베이비가 태어나기도 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하여 유전자 조작을 한 아이는 에이즈에는 걸리지 않지만 뇌졸중으로 사망할 확률이 20% 정도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사회도 지키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전해주어야 할 것들이 있다. 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어떤 사회도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보다 심해지고 있다면 혹시라도 여러 문제 속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없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윤리적 불감증과 도덕적 타락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윤리적 붕괴가 느껴지는 문제가 특히 사회지도층에서 발생하는 경우 우리 사회에는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를 유지해오던 사회적 혹은 문화적 가치를 조절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사회적 유전병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유전질환은 잘못된 유전자를 제대로 된 유전자로 만들어주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다.

다행히 우리는 선거제도라는 좋은 사회적 유전자 가위를 가지고 있다. 선거는 우리 사회의 유전자를 가장 바람직하고 건강하게 조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인 후보를 골라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해 헌법을 만드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의 정신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는 유전자(후보)를 고르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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