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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성공만 비추는 한국식 동포관, 숨은 고통과 차별 외면"

입력
2021.10.29 14:00
수정
2021.10.29 14:1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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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끝낼 수 있는 게임, 무국적자
◇'러시아 출신 한국 귀화자' 박노자 인터뷰
'성공 신화' 관점에서만 해외동포 바라봐
무국적·불법체류 등 절박한 처지는 외면
한국, 이젠 무국적 동포 구제할 역량 갖춰
전향적 행정·개방적 문화로 이들 보듬어야

편집자주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들, 무국적자다. 전 세계 무국적자는 300만 명, 그중 3분의 1은 아이들로 추산된다. 무국적 문제는 보편 인권에 바탕해야 할 인간사회의 심각한 허점이자 명백한 인재(人災)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귀화한 러시아계 한국인인 박노자(48) 교수. 박 교수 제공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귀화한 러시아계 한국인인 박노자(48) 교수. 박 교수 제공

2001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학부 교수에게 무국적자, 그중에서도 구 소련 역사와 함께 탄생한 고려인 무국적자 문제는 각별한 관심 대상이다.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외국인'으로 불려왔지만, 귀화 직후 출간한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방인을 향한 한국 사회의 배타성을 강도 높게 비판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 교수는 27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해외 이민자를 '차별을 극복하고 부자가 된 동포'로만 여기는 성공신화에서 벗어나, 무국적 동포들이 직면한 고통을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만큼, 무국적자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언론과 정치권이 여론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이정원 기자

고려인 3세 장 비탈리(50·가명)씨가 이달 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황만금 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이정원 기자


모든 게 비용 문제… '한국식 동포관'의 비극

박 교수는 '한국식 동포관'의 탄생 배경을 박정희 정권 당시 이뤄졌던 대규모 이민 정책으로 본다. 그는 "정부가 국가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미국, 브라질 등으로 이민을 적극 추진했던 것은 오로지 외화벌이를 위해서였다"며 "이때부터 성공한 이민자만을 조명하는 자본주의·개발주의적 동포관이 뿌리내렸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동포관 아래 한인들이 겪는 차별과 국적 상실 등의 문제는 "굳이 옮길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구 소련 패망 후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을 떠돌던 고려인들은 내전과 빈곤, 독재 문제로 극심한 방황을 했다"면서 "이들 중 많은 수가 혼란을 피해 한국이나 러시아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또 국적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고려인 동포의 신산한 처지엔 눈감은 채 그들을 '성공한 마이너리티'로만 소개했다는 것이다.

비용 문제를 우선시한 동포관은 한인 입양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박 교수는 "이민 정책이 '동포 자금' 조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입양아 수출은 비용 절약을 위한 일종의 복지 외주화였다"고 꼬집었다.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려면 고아원 설립과 탈선 방지 교육 등 다양한 복지정책이 필요한데,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를 선진국에 내맡기는 '직무유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양부모 자질 검사도 없이 보낸 탓에 많은 입양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일부는 범죄자가 됐다"면서 "이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시민권 없이 미국으로 입양된 에밀리 워네키(57)씨. 워네키시 제공.

시민권 없이 미국으로 입양된 에밀리 워네키(57)씨. 워네키시 제공.


"무국적 동포 구제할 정치적 의지·여론 개선 시급"

한국은 더 이상 빈곤 때문에 아이들을 수출하거나, 동포 자금을 끌어모아 후진국을 벗어나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무국적 동포 구제에 인색하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진단이다. "귀화시험만 해도 그렇습니다. 생계를 이어 나가기도 벅찬 이들에게 난이도가 상당한 시험 통과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관리하기 어려운' 이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 싫다는 의미입니다."

박 교수는 노르웨이 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한국 정부도 행정비용 지출 의지만 있다면, 무국적 동포들에게 통역을 붙여주고 지속적인 정착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이만큼 전향적인 행정조치를 실현할 정치적 의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국적 부여 문제에 민감한 여론을 개선하는 일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엔 이질적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다"며 "잘못된 근거로 한인 동포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보도나 이를 오락화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개념조차 생소한 무국적자 문제가 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최근 화제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언급하며 답했다. "오징어 게임은 결국 고액채무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거는 살인 게임이고, 현실에서 주인공 기훈(이정재) 같은 이들이 죽음 다음으로 선택하는 것이 이민입니다. 장기불황이 지속돼 많은 이들이 살길을 찾아 다른 나라에 건너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불법체류자, 나아가 무국적자 문제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겁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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