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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담쌓은 공붓벌레가 로스쿨이 원하는 인재일까

입력
2021.10.26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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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정형근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미시간 주에 거주하던 백인 바바라 그루터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학도로 1997년 미시간대학교 로스쿨에 지원했다. 그루터는 학부 평점(GPA) 3.8점(만점 4.0), 로스쿨 입학시험(LSAT) 161점(만점 180)으로 상당히 좋은 성적이었음에도 불합격했다. 그루터는 자신의 불합격 원인이 소수 인종 학생을 우대하는 입학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우대정책은 인종과 무관하게 동등한 대우를 규정하고 있는 수정헌법 제14조 위반이라며 미시간대학교 총장 볼린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연방대법원은 2003년 6월 23일 대법관 중 5대 4로 미시간대 로스쿨이 입학사정에 있어 인종선호 정책의 활용이 수정헌법 제14조 평등보호 위반 등에 해당되지 않고, 신입생 선발과정도 적법하다고 했다. 미국 첫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작성한 법정의견에 의하면, 로스쿨 입학사정에서 학생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소수인종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여 인종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인 공익이다. 로스쿨은 국가의 미래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훈련장이라서 사회 지도층으로 가는 길은 모든 인종과 문화 배경을 가진 재능있고 자격을 갖춘 개인들에게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로스쿨이 입학 심사단계에서 인종 요소를 제한적으로 고려한 것은 수정헌법 제14조 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이처럼 소수 인종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입학정책을 적극적 평등실현조치 또는 잠정적 우대조치라고 한다. 이 조치는 종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일정집단에 대해 그동안의 불이익을 보상해 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입학 등의 영역에서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인종차별의 관행을 철폐하기 위한 소수인종 집단에 대한 고용정책 등에서 이런 우대조치를 취해 왔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이런 우대조치를 합헌이라고 했다. 예컨대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는 종래부터 차별을 받아 왔고 그 결과 현재 불리한 처지에 있는 여성을 유리한 처지에 있는 남성과 동등한 처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잠정적 우대제도로 합헌이다. 반면, 제대군인가산점제도는 공직사회에서의 남녀비율에 관계없이 무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서 우월한 처지에 있는 남성의 기득권을 직·간접적으로 유지·고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위헌이다. 잠정적 우대조치는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집단의 공직 임용우대 및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50% 여성공천할당제도, 양성평등기본법 등에서 다양하게 인정되고 있다.

로스쿨 역시 매년 입학자의 7% 이상을 특별전형으로 사회적 취약계층 학생들을 선발한다. 과거 사법시험처럼 가난한 자도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한 제도다. 비수도권 지역 로스쿨은 그 지역대학 출신자를 선발하는 지역인재 선발제도를 시행한다. 그러나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제도의 희생자로 남는 문제가 있다. 로스쿨 제도를 위하여 변호사가 되기 어려운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국가가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는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을 위하여 지원자의 제출서류에 이름 등 개인식별정보를 삭제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서울의 주요대학 입학자 중에 지방대 출신은 단 1명도 없다는 통계가 있다. 법은 사회활동과 봉사활동 자료를 입학전형 요소로 활용하여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도록 한다. 따라서 사회와 담쌓고 학교에서 공부만 한 학생은 로스쿨이 선호하는 인재가 아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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