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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 먹이고 물고문하고…양육이란 이름의 살인

입력
2021.07.05 05: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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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잔혹성 두드러지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 77%가 20·30대 '준비 안된' 젊은 부모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충동·분노 통제력 약해
"사회적 양육, 청소년기부터 부모 교육 필요"

편집자주

‘묻지마 범죄’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상 범죄’가 늘고 있다. 범행 동기는 물론 방식과 대상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괴기한 범죄들이다. 이상 범죄 증가는 결국 우리 사회가 이상 사회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경고다. 한국일보는 ‘신(新) 이상 범죄의 습격’ 연재를 통해 사회적·심리학적 부검을 시도한다. 범죄를 막을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10세 조카를 폭행하고 물고문을 하는 등 학대로 사망케 한 혐의를 받는 이모 부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10세 조카를 폭행하고 물고문을 하는 등 학대로 사망케 한 혐의를 받는 이모 부부. 한국일보 자료사진

열 살 A양은 '이사, 직장 문제로 아이를 돌보기 어렵다'는 친모 B(31)씨의 손에 이끌려 지난해 11월 초 경기 용인시에 사는 이모 C(34·무속인)씨와 이모부 D(33·국악인)씨에게 맡겨졌다. 이혼한 친부, 가끔 얼굴을 비칠 뿐인 친모의 무관심 속에 A양의 양육은 전적으로 이모 부부의 몫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어린 조카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학대는 나날이 가혹해졌다. 지난해 12월 말부터는 "귀신이 들렸다"며 A양을 파리채와 나무 막대기로 때렸다.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는 게 이유였다. 발달 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A양에게 개의 대변을 먹게 하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2월 8일, 지속적인 폭행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멍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A양에게 이모 부부는 '물고문'을 자행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A양의 손발을 움직일 수 없도록 빨랫줄과 비닐로 묶고는, 물을 채운 욕조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을 수차례 반복했다. 50분간 이어진 만행에 A양은 결국 숨을 거뒀다. 사인은 '다발성 피하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익사'로 판명됐다.

A양은 사망 전날에도 이모 부부에게 4시간 넘게 폭행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당일에는 걷기는커녕 손조차 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들 부부의 친자녀들도 사촌이 학대당하는 걸 지켜보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고문에 대해선 "대소변을 본 상태라 씻기려고 물에 담근 것"이라고 진술했다.

수원지검은 이들이 A양이 위중한 상황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미필적 고의)는 판단 아래 올해 3월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재판 중 친자녀들에게 정서적 학대를 한 혐의도 추가됐다. 자식의 비극적 죽음에도 B씨는 언니 부부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재판부에 합의서를 제출해 공분을 샀다. B씨 또한 두 사람에게 A양을 때릴 때 쓸 나뭇가지를 건넨 사실 등이 드러나 아동학대 방조·유기·방임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겨졌다.

아동학대 사망 5년새 2.6배 증가

2015~2019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와 아동학대의심사례 신고접수 건수. 그래픽=박구원 기자

2015~2019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와 아동학대의심사례 신고접수 건수. 그래픽=박구원 기자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의 오랜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와 맞먹을 만큼 잔혹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분유를 토한다는 이유로 생후 2주 아들을 내던진 20대 부부, 생후 105일 된 딸을 쿠션 위에 엎어놔 숨을 못 쉬게 한 20대 친부, 잠을 안 잔다며 생후 29일 된 딸을 반지 낀 손으로 때린 20대 친부 등이 비근한 사례다. 또한 발생 건수가 추세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점, 20·30대 젊은 양육자의 범행 비율이 특히 높다는 점에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경각심을 갖고 대처할 현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는 최근 5년간 계속 증가해왔다. 증가 속도 또한 2015년 1만1,715건에서 2019년 3만45건으로 2배 이상 뛸 만큼 가파르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도 동반 증가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접수된 사례를 기준으로 아동학대 사망은 2015년 16명에서 2019년 42명으로 늘어났다. 수사당국은 학대 신고가 없었거나 피해 아동이 혼자 있다가 숨지는 등 학대와 죽음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아 단순 사망으로 처리됐을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5~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발생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2015~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발생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통계상의 아동학대 증가를 두고 학대 행위 자체가 늘었다기보단 이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훈육 명목의 체벌도 학대로 인식하는 등 달라진 사회 분위기 속에 의심 신고가 활발해지고, 이 과정에서 과거 암수범죄(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은 범죄)가 많던 아동학대 사건이 대거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 통계에서도 아동학대 사례뿐 아니라 의심사례 신고접수 건수 또한 2015년 1만6,651건에서 2019년 3만8,380건으로 2배 넘게 증가한 걸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올해 1월 부모에게 자녀 징계권을 부여했던 민법 제915조 조항이 삭제되기도 했다.

수사당국에선 아동학대 사건 증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여성·아동·청소년 사건을 주로 맡아온 한 경찰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지만 실제 부모들의 인식과는 아직 간극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준비 안된 젊은 부모가 위험군

2015~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학대행위자 연령과 2017~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20·30대 학대행위자 비율 통계. 그래픽=박구원 기자

2015~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학대행위자 연령과 2017~2019년 아동학대 사망사례 20·30대 학대행위자 비율 통계. 그래픽=박구원 기자

하지만 아동학대 사망의 경우 발생 빈도가 잦아진 데다 잔혹성이 두드러지는 사건이 많은 만큼, 사회적 감시망을 높이는 것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사례에서 보듯이 젊은 부모 또는 양육자가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뚜렷해 심층적 분석을 요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례에서 가해자로 파악된 53명을 연령대별로 보면 20대(20세~29세)가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30세~39세)가 16명으로 뒤를 이었다. 최근 3년 통계에서도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가해자 중 20·30대 비중은 △2017년 69.5% △2018년 73.4% △2019년 77.4%로 압도적일뿐더러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젊은 부모가 처한 환경적 특성이 비슷한 학대 행위라도 아동을 죽음에 이르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분석한다. 부모가 어린 만큼 자기 방어가 어려운 영유아 자녀를 기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올해 4월 인천의 모텔에선 생후 2개월 영아가 뇌출혈,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자꾸 울어 화가 났다"는 이유로 아이를 던진 20대 부부는 10대 때 아이를 낳은 후 금전적 문제로 모텔을 전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경찰청 범죄분석관인 윤정아 경장은 "가해 부모가 젊을수록 경제적 기반이 약하거나 충동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등 양육에 부적절한 환경에 처한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8세 딸을 폭행하고 대소변을 먹이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20대 계부(왼쪽)와 친모. 연합뉴스

8세 딸을 폭행하고 대소변을 먹이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20대 계부(왼쪽)와 친모. 연합뉴스

올해 3월 학대로 사망한 8세 여아의 계부는 당시 아이가 화장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거실에서 모바일 게임을 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이들 20대 부부는 아이를 굶기고 대소변을 먹이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최근 각각 징역 30년의 구형을 받았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24세 미만에 아이를 갖게 된 청소년 부모 중에는 준비 없는 양육과 사회적 단절에 따른 스트레스로 아이를 방임·학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사망의 상당수가 장기간에 걸친 상습 학대에서 비롯하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가해자들이 대체로 "죽을 줄은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도 그만큼 학대가 습관화됐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공 대표는 "학대를 되풀이해 죄책감이 무뎌지면 아이를 생명보다는 물건처럼 대상화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고 부연했다.

최근 법정에선 장기간 학대에 따른 아동 사망 사건에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학대 행위가 지속되다 보면 변명 그대로 사망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질 수는 있다"며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만큼 일반적 살인 사건보다 엄격하게 고의성이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막기 위해 조기 개입 및 빠른 분리에 더해 '사회적 양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배 교수는 "출산, 단계적 아동수당 지급 등 일련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사회가 개입해 양육 환경을 감시하는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도 중요하다. 공 대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라며 "청소년기부터 피임뿐 아니라 양육 방법 등의 부모 교육, 아동 권리 및 학대 예방 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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