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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끝' 엄벌주의 넘어 조직문화 바꿔야 2차 피해도 막는다

입력
2021.03.19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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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희롱 사건과 조직의 회복

편집자주

서울시장 선거가 다음달 7일로 임박했습니다. '2차 피해' 문제는 잊혀지고 '대선 풍향계'로만 주목받습니다. 박원순 사건이 낳았던 2차 피해 문제를 <상> <하> 에 걸쳐 짚어봅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 앞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열린 당 전국위원회에 앞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스1


“회식자리에서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어요. 매우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신고하고 싶어요.”

이런 말을 듣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짐작하다시피 이런 문제에 대해 가해자가 한 번에 바로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거나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손사래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의 호소, 가해자의 부인과 회피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차 피해 방지 논란은 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대응을 조금 잘못했다가는 성폭력 피해 호소를 듣는 게 아니라 2차 피해 유발자가 되기 십상이어서다. 이 때문에 잘못됐다 해도 단순한 실수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를 잘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피해자 절대주의'는 다르다

가령 성희롱 피해자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임원에게 전해듣고 불편했다'고 상담을 해온다면 '해당 임원이 2차 가해를 했다'고 단정 지을 게 아니라 '이상한 소문'에 대한 불편함인지, 임원 때문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임원으로서는 '이상한 소문'이 있다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피해자에게 이를 전달하고 확인시키는 과정이 세련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이걸 2차 피해라 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성희롱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력한 처벌은 2차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판받아 마땅한 언행을 했다 해도, 정말 모르고 한 것이라면 처벌보다는 교육 등 다른 방식을 써야 한다. 문강분 노무법인 행복한일 대표는 “성희롱은 피해자가 느낀 굴욕감을 기준으로 삼기에 무조건 강한 처벌로만 대응하면 가해자가 이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며 "정말 몰라서 한 행위에 대해서는 시정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탄력적 성희롱 대응이 2차 피해 줄인다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성희롱 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결방식은 좀 더 부드러워져야 한다. 약하게 처벌하라거나 대충 넘어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수준별로 다양한 대응방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강경대응만 주문하면 피해가 발생해도 피해자는 신고 자체를 주저하게 되고, 가해자의 반발이 극렬해지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 기관 등 외부기관에 맡겨 버리는 것보다 사안에 따라서는 조직 내부에서 풀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외부에만 맡기는 것은 사실상 조직 내부의 자체적 해결을 포기하는 것으로, 그럴 경우 조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고작 처벌 규정 안내, 형식적 예방교육뿐이다. 궁극적 목표인 '조직 문화 바꾸기'는 외면당하는 셈이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를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1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오대근 기자

정의당 젠더인권본부를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왼쪽)가 1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호진 대변인. 오대근 기자


문강분 대표는 “가령 부적절하다 해도 잘 모르고 한 언행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징계보다는 교육 등을 통해 고쳐 나가는 방법을 써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저항감이 줄면서 성희롱 신고의 문턱도 낮아지고, 조직문화 개선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전문가들이 지난 1월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주목할 만한 사례로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사 의뢰 등 외부 전문기관의 개입 등을 불러들인 조치는 없었다. '공동체적 해결'을 내세워 자체 해결을 선언했다.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이라 사안 자체에 대한 여러 평가와 말들은 떠돌아다녔지만, 최소한 성희롱 사건 그 자체 내용으로 인한 '2차 피해'는 없었다.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 오대근 기자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 오대근 기자


김종철 사퇴 이후, 조직문화 개선이라는 정의당의 실험

그 덕에 정의당에서는 실제 조직문화 개선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성평등이 중요하다는 뻔한 교육 대신 토론 시 발언권이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왜 어떤 말은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게 되는가 등 구체적 사례에 대해 교육하고, 실제 토론 규칙을 정해 연습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젠더폭력 대응센터 마련이다. 원래 당내 젠더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당기위원회로 넘긴다. 하지만 김 전 대표 사건 처리 과정에서, 당기위가 열리기 전까지 피해자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 피해자의 판단과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젠더폭력 대응센터에는 징계와 처벌과 별개로 피해자의 입장과 요구를 적극 반영, 조정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 사건 처리를 주도한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정치권 역시 ‘걸리면 정치생명 끝’이라는 생각에 피해자는 피해 호소를 어려워하고 가해자들은 온 힘을 다해 가해 사실을 부인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한다"며 "공동체적 해결을 내세운 만큼 김 전 대표 사퇴를 넘어 조직문화 자체가 바뀌는 모습을 꼭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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