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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등 거시 지표 중시한 文대통령... 우파 성장론에 힘 실었다

입력
2020.05.08 04:30
수정
2020.05.08 13:3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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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년 발언 딥러닝 분석]

文정부 초기엔 소득주도 성장, 이후엔 ‘혁신 성장’ 내세웠지만 뒷받침하는 단어 별로 없어

‘세제 감면’ ‘규제 개혁’ 등도 강조... 한국판 뉴딜 등 右클릭 기조 유지할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경제단체 대표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최태원 SK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경제를 "전례없는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며 민관 상시 소통 및 협력을 강조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경제단체 대표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최태원 SK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경제를 "전례없는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며 민관 상시 소통 및 협력을 강조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우파의 성장 중심 정책에 가까웠다. 한국일보가 7일 문 대통령의 취임 후 공개 발언 183만여자를 인공지능(AI) 임베딩의 한 종류인 ‘Word2Vec’(단어 유사도를 평가해 벡터로 변환하는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결과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고,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분배 중심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다. 성장률을 포함한 거시경제 지표를 중시했고, 기업 인센티브, 규제 특례와 같은 전통적 우파 정책에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이 최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대규모 국책사업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천명한 만큼, 지금의 기조는 남은 2년 동안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가 빠진 문 대통령의 경제 정책

문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국정 관련 핵심 단어는 역시 ‘경제’였다. 3년간 2,936번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를 입에 올릴 때 주로 의미를 실어 사용한 단어는 ‘파고’ ‘저성장’ ‘제고’ ‘활력’ ‘살아나’ 등으로 분석됐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인한 대외 충격의 ‘파고’가 덮쳐 ‘저성장’ 위협에 직면한 만큼 ‘활력’을 ‘제고’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문 대통령 경제 구상을 지배한 셈이다.

‘성장률’ ‘거시’ 등 경제 지표 관련 단어 또한 문 대통령의 경제관을 설명해주는 주요 키워드로 꼽혔다. 문 대통령이 성장의 가시적 성과를 중시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이어서 명분을 고집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실용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경제 담론에는 ‘어떻게’가 빠져있었다. ‘경제’와 연관된 상위 30개 단어는 ‘돌파구’ ‘불어넣다’ ‘발판’ ‘타개’ ‘심리’ 등으로, 경제 회복 의지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주로 사용됐다. 경제 해법과 직결된 단어는 상위 30개 단어 중 ‘내수’ ‘소비’ ‘증대’에 그쳤다. 3개 단어를 포괄하는 정책이 바로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내수ㆍ소비ㆍ성장ㆍ고용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초 소득주도성장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거센 반발에 직면해 사실상 제쳐 뒀다. 이후 ‘혁신성장’을 내세웠지만, 이번 분석에서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어는 별로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비전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불분명해졌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옅어진 진보 정체성…강화된 자유주의 경제정책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잇는 ‘민주정부 3기’라는 정권의 정체성도 그다지 선명하지 않았다. ‘공정경제’는 문재인 정부 3대 경제정책 기조 중 하나다. 그러나 ‘경제’와 연관된 상위 30개 중 ‘공정경제’와 짝을 이룬 단어는 전무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경제적 맥락에서 언급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특권’ ‘반칙’ ‘부정부패’ ‘적폐’ ‘관행’ 경제와 직접적 관련성이 적은 맥락에서 주로 사용했다. 한국일보가 같은 기법으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분석한 결과, 두 전직 대통령이 ‘공정’을 ‘특혜’ ‘배분’ ‘독점’ ‘재계’ ‘정경(유착)’ 등의 의미에서 쓴 것과 비교된다.

집권 전 문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해 보면, ‘대선주자 문재인’은 ‘경제’에 ‘골고루’ ‘공동체’ ‘조세정의’ 등의 의미를 담아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나눠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부각시켰다. 고소득자ㆍ자본소득 과세 강화 등 뚜렷한 방법론도 제시했다.

‘조세 정의’는 집권 이후 ‘세제 감면’과 ‘규제 개혁’으로 대체됐다. 전통적으로 우파가 선호하는 경제정책 수단을 대폭 수용한 셈이다. 3년간 이어진 이 같은 변신은 집권 이후 대외경제 환경이 악화한 영향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재벌 개혁 및 정경 유착 척결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재벌 개혁 및 정경 유착 척결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호(號)의 경제 방향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보다 ‘우클릭’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주문하면서 “대규모 국책사업도 신속하게 추진하라”며 토목ㆍ건설사업 분야 빗장까지 열었다.

여권에는 이러한 정책 기조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하락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임기응변식 위기대응 정책이 경제 체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정부 경제 정책이 개별 산업정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여권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고속인터넷망을, 노무현 대통령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미래세대 먹거리로 남겼다”며 “문재인 정부는 어떤 유산을 남기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응급 처방이나 땜질만 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며 “원칙대로 멀리 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며 뚜벅뚜벅 가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제언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어떻게 분석했나

한국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정밀 분석해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했다.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부터 2020년 5월 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까지, 지난 3년간 문 대통령의 발언 1,054건을 전수 분석했다. 연설ㆍ축사ㆍ회의ㆍ대담 등을 합해 글자수는 183만4,679자에 달한다.

분석 방법으로는 인공신경망(Artificail Neural Network) 기술이 적용된 자연어 처리(임베딩) 기법 ‘워드투벡터(Word2Vec)’를 한국 언론 최초로 사용했다. 워드투벡터는 데이터에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적용, 말뭉치를 수학적 벡터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특정 단어가 어떤 단어들과 의미군(群)으로 묶이는지를 심층 분석하고, 단어의 맥락적 의미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입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에 등록돼 있는 김대중(855건ㆍ222만6,897자)ㆍ노무현(797건ㆍ190만5,447자)ㆍ이명박(819건ㆍ197만8,145자)ㆍ박근혜(493건ㆍ96만361자) 전 대통령의 연설 등도 함께 분석했다. 집권하기 전과 후의 생각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문 대통령의 19대 국회의원 시절 발언 등 642건(83만2,999자)도 분석 대상에 포함했다. 본보가 분석한 발언을 모두 합치면 927만1,528자에 달한다.

코딩에는 파이썬(Python)을 활용했고, 형태소 분석은 ‘은전한닢’(Mecab-ko)을 썼다. 워드투백 학습시 스킵그램(Skip-Gram) 모델을 적용했고, 한번에 학습할 단어 개수는 8개(window=8), 차원은 300차원(size=300)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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