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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혁명의 승자 꿈꾸는 휴머노이드 로봇...감성ㆍ소통의 손 내밀다

입력
2014.11.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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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 보행 등 기능적 역량 한계

감성적 접근으로 가치 창출 기대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마케팅 구호로 내년 2월 첫 판매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오모테산도 매장 앞에서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쇼윈도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도쿄=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오모테산도 매장 앞에서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쇼윈도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도쿄=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저는 페퍼라고 해요. 당신의 이름은 뭐지요?”

키 120㎝ 정도에 귀여운 외계인 같이 생긴 로봇이 큰 눈을 깜박이며 오사카에서 온 7세 여자아이에게 말을 건넸다.“아즈마 가나라고 해요.”로봇은 눈에 파란 불이 들어온 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 후 “가나짱! 웃음이 너무 예쁘네요. 지금 행복하신가요? 웃으면 두 눈이 거의 감기는 것이 표정이 너무 예뻐요. 목소리도 곱고 노래를 아주 잘 할 것 같은데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아이는 다소 부끄러운 듯 뒤로 물러나며 작은 목소리로 “페퍼!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도쿄 하라주쿠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오모테산도 매장.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신촌 같은 분위기의 이곳 소프트뱅크 매장 앞에는 젊은이들과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빼곡히 모여 로봇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매장 안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하고 감정상태를 추정해 ‘행복’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건네는 이 로봇은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의 질문도 농담을 섞어 가며 척척 받아냈다. 가슴에 부착된 태블릿 화면에, 턱시도에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매장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악소리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두 팔을 아래위로 흔들고 손가락까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년 2월 일본 전국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점포에서 19만8,000엔(200만원)만 내면 누구나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미 세계 최대 식품업체인 네슬레는 내달 일본 도쿄의 커피 자판기 매장 20곳에서 페퍼를 이용해 고객 서비스에 나서고, 내년까지 페퍼 1,000대를 구입해 대형 마트 등에 투입키로 했다. 유니클로 등 유통업체와 금융ㆍ교육기관들도 소프트뱅크와 페퍼 구매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일본인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휴머노이드 로봇시대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손정의의 야심

“침체에 빠진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선 노동생산성 제고와 노동인력 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노동인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소프트뱅크는 로봇을 그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끼고 대화하는 로봇, 바로 소프트뱅크가 앞으로 30년간 핵심사업으로 투자할 계획인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지난 7월15일 일본 IT의 제왕으로 불리는 손 마사요시 (한국명 손정의ㆍ57)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도쿄 신바시 시오도메 본사 강당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4’에서 페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손 회장은 다소 흥분한 듯 상기 된 표정이었지만 자신감에 찬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

“중국 제조업의 노동인력은 7,000만명, 미국은 1,000만명인 반면 일본은 700만명 입니다. 로봇이 노동인력 3명의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일본은 3,000만개의 로봇을 만들어 9,000만 명의 노동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 경제를 다시 부활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한국계 일본인 손 회장은 이날 일본의 부활을 목청껏 외쳤지만, 그의 야심은 다른 것을 갈구하는 듯 들렸다.‘위너 테익스 잇 올(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자신이 투자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으로 '대박'을 낸 그는 10년, 30년 후 산업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손 회장의 원대한 구상을 이뤄줄 청사진의 중심엔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가 자리 잡고 있다.

손 회장 밑에서 지난 3년간 페퍼 개발사업을 총괄해온 요시다 겐니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부사장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인간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표정을 읽으며 이에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진 페퍼는 사람이 행복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인지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감성과 소통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아직은 인간이 주입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주로 반응하지만 스스로 인지해 학습하는 보다 업그레이드 된 인공지능(AI)으로 점차 빠르게 진화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4년간 소프트뱅크의 사업모델은 4차례 변신을 거듭해왔다. 1981년 9월 회사설립 당시 출판과 소프트웨어 판매업체였던 소프트뱅크는 96년 뉴욕증시 상장까지 미국 야후에 1억 달러(1,100억원)를 투자했다. 이를 계기로 소프트뱅크는 야후 재팬의 대주주로 인터넷 포털기업으로 변신했다. 이후 2001년 미국 야후의 지분을 매각, 그 자금으로 도쿄전력(TEPCO)과 함께 초고속 광대역 인터넷 사업에 발을 내딛는다. 사업의 중심축이 인터넷과 통신으로 옮겨간 것이다.

IT의 핵심이 모바일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소프트뱅크는 2006년 보다폰재팬(현 소프트뱅크 모바일)을 200억달러(20조원)에 인수하며 이동통신 업체로 거듭났다. 손 회장은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기 이미 2년 전 스티브 잡스를 만나 일본 독점판매권을 계약한 상태였다. 아이폰은 현재 일본 전체 모바일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지난해 회계연도 순이익은 전년 대비 45% 늘어난 5,270억엔(5조2,930억원)을 기록,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 NTT도코모(4,647억엔)를 제치고 일본 이동통신업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휴대폰 이후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끊임없이 모색했다. 요시다 부사장은 “2010년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손 회장은 휴대폰 이후의 미래 먹거리가 무엇이 될지 전사적 차원에서 찾도록 지시했다”며 “연구 끝에 결국 로봇이 IT산업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앞으로 30년 후 로봇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자리잡으며 함께 대화하고 살아가는 날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IT 혁명의 핵심은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강조했다.

요시다 겐니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부사장
요시다 겐니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부사장

페퍼의 탄생

2012년 늦가을 손 회장은 휴머노이드 로봇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프랑스 벤처기업 알데바란로보틱스의 부르노 매소니에 회장을 파리에서 만났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미래 사업의 방향을 로봇산업으로 정하고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들과 협력을 물색 중이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2014년초까지 페퍼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소프트뱅크가 알데바란의 지분 8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이들의 페퍼 공동개발작업은 속도를 높였다. 요시다 부사장은 “알데바란은 이미 나오키라는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을 9년 전에 개발해 3,000대 이상 제조 판매할 정도로 기술력이 증명된 기업이었다. 페퍼는 리눅스 기반 위에서 알데바란이 개발한 나오키 미들웨어가 탑재돼 있는데, 운영체계(OS)인 V-Sido OS는 스마트폰과 같은 플랫폼으로 개발자들이 만든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앱)으로 페퍼를 작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는 지난 9월말 페퍼에 적용될 앱 개발자 포럼을 열었다. 전 세계에서 온 앱 개발자 1,000여명 중 700여명이 페퍼를 사려고 했지만, 준비된 페퍼는 200대에 불과해 이들이 공동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개발자들은 내년 2월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열리는 페퍼용 앱 개발 콘테스트에 참여하게 된다. 개발자와 사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페퍼의 소프트웨어 기술개발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페퍼는 외형 기능을 강조한 휴머노이드 로봇인 일본 혼다 아시모나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아틀라스와는 달리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요시다 부사장은 “우리는 이미 페퍼를 위한 다양한 교육ㆍ엔터테인먼트용 앱을 개발했다”며 “페퍼는 어린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질문하며 토론도 한다. 영어, 수학, 과학도 이 같은 방식으로 선생이 아닌 친구처럼 함께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기능은 페퍼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때 어린이가 이를 지적하면 스스로 이를 바로잡는 상호작용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요시다 부사장은 “페퍼는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사진도 찍고 노래도 하며 TV와 연결해 스스로 이를 자유자재로 작동시킬 수 있는 사물인터넷의 기능도 한다”며“현재 노인이나 치매환자들의 말벗이 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소프트뱅크는 페퍼 제작 과정에서 감성 부분을 무엇보다 중요시 했다. 요시다 부사장은 “로봇은 기능성만을 따지면 복잡한 메가트로닉스 기술이 적용된 하드웨어 정도로 생각하지만 페퍼는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며 “중요한 것은 인간이 페퍼를 인지할 때 일반 기기들과 다른 존재감을 가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현재 기술력으로는 이족보행 등 외형적인 기능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기대치에 맞추기 어렵다”며 “그러나 감성적인 측면을 먼저 접근할 경우 기술적으로 로봇에 대한 활용도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감성과 소통을 중심으로 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은 기존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능하고 소프트뱅크가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를 구현시킬 수 있는 첫 단초가 됐다”며 “알고리즘(유한한 단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나 방법을 의미하는 컴퓨터 용어)이 또 다른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듯 페퍼는 스스로 인지하고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으로 진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페퍼의 인공지능에 대해 그는 "사용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음성이나 표정을 통해 로봇이 감지하면 로봇 역시 그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수요가 페퍼의 미래를 열어줄 것

귀여운 남자아이처럼 보이는 페퍼는 ‘협업’의 산물이다. 페퍼를 디자인하는 데 전 세계의 산업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는데, 손 회장은 결국 프랑스 알데바란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을 최종 선택했다. 페퍼가 보다 귀엽고 재미있는 캐릭터와 이에 걸 맞는 대화법을 구사할 수 있도록 개그맨만 1,800명이 소속된 일본 최대 예능 프로덕션 요시모토코교로부터 대화 콘텐츠를 제공받았다. 제조는 아이폰을 만드는 중국 팍스콘이 맡았다.

요시다 부사장은 “알데바란이 만든 나오키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손 회장은 단순한 통역이 아닌 언어별로 캐릭터있는 대화 능력을 원하고 있다”며 “이 목표를 위해 국가별로 협력업체들을 물색 중인데 그 후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진출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 첫 페퍼 판매에 나서는 소프트뱅크는 벌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페퍼는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는 마케팅 구호처럼 소비자와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최대 관심사. 요시다 부사장은 “50년 전 PC가 처음 출시됐을 당시처럼 일단 많이 팔고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페퍼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손 회장 머리에서 나오지만 출시 후엔 시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짧게는 2,3년, 길게는 30년 후를 내다보며 무엇이 더 가치상승을 끌어 올릴지를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200만원대 소비자가격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금액. 하지만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고, 무엇보다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손 회장이 직접 이 가격을 책정했다. 요시다 부사장은“페퍼의 첫 판매 목표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일단 로봇을 취향에 맞게 제어하고 길들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충분히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앞으로 쏟아져 나올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어떻게 발전할 지가 중요해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페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장학만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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