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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토박이 교수의 일갈 "선비정신? 조선 때도 없던 걸 미화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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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토박이 교수의 일갈 "선비정신? 조선 때도 없던 걸 미화하지 맙시다"

입력
2024.04.30 15:25
수정
2024.04.30 15:4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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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 한번 펴내
50년 연구 정리한 정진영 전 안동대 교수

지난 25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폐막식이 열리고 있다. 퇴계 선생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안동시 제공

지난 25일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폐막식이 열리고 있다. 퇴계 선생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안동시 제공

"글쎄요. 그 시대, 조선 시대에도 구현하지 못한 양반, 선비를 지금 시대에 와서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요." 허허 웃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지식인들을 봐도 올곧은 사람은 일부일 뿐이고 변절자, 꼰대 같은 이들이 더 많잖아요. 옛 양반, 선비라는 사람들도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대개 그러했습니다.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죠."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을 내놓은 정진영(71) 전 안동대 교수의 대답이다. 정 전 교수는 안동 태생으로 영남대에서 공부했고 안동대 교수와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등을 지낸, 그야말로 '안동 토박이'다. 정 전 교수 본인 또한 안동 지역에 세거지를 이루고 살아온 청주 정씨 후손이다.

안동 토박이로서 50년간 양반 연구

"집안이 명문 대가는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양반 축에 드는 바람"에 정 전 교수는 어려서부터 늘 양반이 어떻느니, 선비와 가문이 어떻느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자랐다. 이 때문에 커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양반들이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을 내놓은 정진영 전 안동대 교수. 그간 공부한 양반론에 대해 다 풀어놨다. 산처럼 제공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을 내놓은 정진영 전 안동대 교수. 그간 공부한 양반론에 대해 다 풀어놨다. 산처럼 제공

정 전 교수는 "굳이 세부 전공을 따지자면 사회경제사를 했다 할 수 있는데, 공부를 해나갈 수록 구체적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배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50여 년간 그렇게 들여다 본, 각종 문집과 편지 등의 자료에 남아 있는 양반의 삶을 한데 모아 정리한 책이 바로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이다. 양반론의 총결산인 셈이다.

그런 정 전 교수의 책이니 양반이나 선비 정신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이 배어 나올 것 같은데, 의외로 양반을 바라보는 시각은 건조하다.

'영남 유림'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던 외침

당대의 시대상, 양반이라는 신분제의 성격은 물론, 영남의 대표적 선비라 할 수 있는 남명 조식(1501~1572), 갈암 이현일(1627~1704) 같은 인물도 다룬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한 선비정신 못지 않게 그저 '임금이 도덕적으로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식의 성군론 이외 별다른 내용이 없다며 이론적 사상적 빈곤을 지적해뒀다. 또 이앙법의 전국 확산에 따른 경제적 몰락 때문에 실제 세상을 경영하는 경세론에서 멀어지고 이게 예법에 적합한가만 따지고 드는 예론에 갇히는 보수화 경향까지 함께 짚어나간다. 지금이 아니라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한계를 노출했다는 얘기다.

정진영 전 안동대 교수가 50여년 연구생활을 정리한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 산처럼 제공

정진영 전 안동대 교수가 50여년 연구생활을 정리한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 1,2권. 산처럼 제공


구한말 지식인 류인식(1865~1928)을 내세우는 대목도 그렇다. 류인식은 명문가 전주 류씨 출신으로 안동 유림의 핵심이었으나 집안에서 절연당하고 스승에게 파문당할 정도로 영남유림의 보수성을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심지어 나라가 망한다면 영남유림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기까지 했다. 정 전 교수는 "지금도 선비 정신 운운하며 허세 부리고 폼 내는 이들이 있는데 정말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향촌지주의 삶, 부유한만큼 고달팠다

정 전 교수는 조선 시대 양반의 가장 큰 특징으로 향촌지주라는 점을 들었다. 유교문화권이라는 중국과 일본의 특권층은 대개 도시에 따로 모여 산 부재지주였으나, 조선의 양반은 농민과 한데 섞여 살았다. 농민이 너무 많이 죽거나, 달아나거나, 반란을 일으키면 제일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양반이었다.

서울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재현된 조선시대 모내기 행사. 낮은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조선 사회는 제법 규모가 큰 대지주 양반이라 해도 평온한 사람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창덕궁 옥류천 청의정에서 재현된 조선시대 모내기 행사. 낮은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조선 사회는 제법 규모가 큰 대지주 양반이라 해도 평온한 사람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래서 잘 나간다는 양반이라 해도 고달팠다. 지역민을 잘 아울러야 했고,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을 유지하려면 노비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긴 매한가지였다. 물론 이 또한 지나치면 욕 먹기 일쑤였다. 정 전 교수는 "요즘 사람들이야 양반이라 하면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편하게 산 특권층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런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고 말했다. 농민들과 부대끼며 살았기에 "조선의 양반은 농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선비정신' 말로만 내세울 게 아니라 입증을 해야

향촌지주라는 특이한 존재형태가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정 전 교수는 "양반들이 근대화 물결에 강하게 저항하는데, 물론 거기엔 국권회복이라는 명분이 있기도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그간 유지해온 향촌지주 중심의 농업체제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서였다"고 지적했다.

조선 선비정신의 표상 남명 조식의 초상. 하지만 정진영 전 교수는 그 주장의 현실성에는 의문부호를 붙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선 선비정신의 표상 남명 조식의 초상. 하지만 정진영 전 교수는 그 주장의 현실성에는 의문부호를 붙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때문에 한국의 근대화 주역은 향촌 지주였던 양반이 아니라 도시의 중인이나 관아 주변의 심부름꾼 같은 사람들이 맡게 됐다. "근대 주역으로 전환하지 못했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양반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선비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게 선비정신의 핵심인데, 비임을 내세우기 보다는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거나 입증해보이는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건 왠지 그럴 자신이 있느냐, 되묻는 듯한 결론이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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