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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 대입과 자유전공학부 실험

입력
2024.03.25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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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1월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1월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근래 교육부가 대학 무전공 입학 제도를 추진하면서 자유전공학부가 다시 주목된다. 무전공 입학 제도가 자유전공학부(자전학부) 모델과 비슷하거나 그 확대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자전학부 도입 때 벌어진 것과 비슷한 논란이 근래에 다시 벌어진다. 피할 수 없는 논란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 대학에 자전학부가 도입된 지 15년이 되었다. 자전학부는 로스쿨 체제 도입으로 학부 모집정원이 남게 되어 그것을 발판으로 출범했고, 학생에게 자유로운 전공 선택을 허용하고 학문 간 창조적 융합을 실험하며 대학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등 혁신을 불러오는 마중물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 대부분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학부를 해체했고, 제도를 유지하는 대학도 사실상 로스쿨 시험 준비반으로 운영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유독 서울대가 제도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예외적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자전학부가 남긴 성과 중에, 주목이 덜 되는 게 학문 생태계 활성화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다. 자전학부는 출범 당시 기존 학과들을 위협하리라는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기존 학과들과 제로섬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고 보완관계를 이루었다. 특히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으로 학생들을 유도하여 학문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했다. 학문 생태계 활성화로 기존 학과와 공존하면서 유연하게 체제 변화를 추동할 가능성을 보여준 점은 자전학부가 남긴 큰 성과다.

하지만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그것을 구성하는 종의 다양성이다. 아무리 우월한 종이라도 그것으로만 구성된 생태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최근 서울대 자전학부에 다양성이 위축되는 조짐이 보인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의 지나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경영, 경제나 컴퓨터공학 등 일부 전공으로 선택이 몰린다. 게다가 2022년 문이과 통합수능 시행으로 정시 입학생은 100% 이과생으로 채워졌다. 취업난과 부정적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이들 학생들이 기초학문 토대 위의 학문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할 다양한 종으로 안착할 가능성은 낮다. 자전학부가 그동안 거둬온 중요한 성과들이 빠르게 퇴색할 수 있다. 이는 무전공 입학의 미래이기도 하다.

근래 벌어지는 무전공 입학 논란의 답은 자전학부의 경험 속에 있다. 이 학부가 기초학문을 강화하고 학문 생태계를 활성화해서 대학 혁신을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무전공 입학도 그런 순기능을 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려면 학문 생태계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필요하고, 지금 서울대 자전학부에 나타나는 전공 쏠림현상에 대처할 방안이 충분히 있음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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