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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길고양이 학대, 왜 더 심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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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길고양이 학대, 왜 더 심해지나

입력
2020.06.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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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what]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 퍼져야

재개발 폐허 속 다치고 병든 길고양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개발 폐허 속 다치고 병든 길고양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반려인 뿐만 아니라 동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하는 사건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바로 길고양이를 학대하거나 죽이는 사건인데요. 학대 내용도 너무 잔인해서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도 늘면서 ‘애묘인’, ‘집사’라는 단어까지 등장할 정도인데, 왜 길고양이에 대한 학대는 계속되거나 더 심해질까요. 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지난주 주말 온·오프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동묘 시장에서 한 상인이 고양이를 목줄로 묶어 내동댕이 친 건데요, 한 시민이 이를 온라인에 제보하면서 알려졌고 “정확한 수사를 통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19일 오후 기준 8만9,000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해당 상인이 “덩치가 큰 고양이가 무서워서 그랬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만 이유가 어찌됐든 고양이를 다루는 영상과 사진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 서울 관악구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고양이 사체가 여러 구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요, 이달 초에도 서울 마포구를 비롯해 경남 창원 주택가에서도 잔혹하게 신체가 훼손된 고양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길고양이 왜 학대대상이 되나

지난주 주말 서울 종로구 둉묘시장에서 한 상인이 길고양이를 줄에 묶어 밖으로 꺼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주말 서울 종로구 둉묘시장에서 한 상인이 길고양이를 줄에 묶어 밖으로 꺼내고 있다. 연합뉴스

길고양이는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도 야생에 사는 야생동물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반려동물처럼 주인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개는 학대를 가하면 물 수라도 있지만 길고양이는 더욱 힘없고 약한 존재”라며 “특히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기 쉽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변호사도 “주인이 없다는 건 피해자가 없다는 뜻이 된다”며 “죄가 성립해봤자 동물학대죄 밖에 안되고, 경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도 단순 민원으로만 접수된다”고 했습니다.

실제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에서는 40대 남성이 경의선 숲길 인근에서 고양이 꼬리를 잡아 바닥에 내리쳐 죽게 한 뒤 재판 과정에서 “취업도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살아가다 화풀이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 길고양이는 일부 사람들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겁니다.

◇길고양이 학대, 지금까지 어떻게 처벌했나

토치에 그을린 듯 전신 화상 입은 채 발견된 길고양이 호순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토치에 그을린 듯 전신 화상 입은 채 발견된 길고양이 호순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길고양이가 반려동물, 야생동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동물보호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길고양이를 함부로 다루면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게 되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 처벌 수위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최근 동물학대 판례와 처벌 내용을 담아 발간한 ‘동물을 위한 법률지원매뉴얼’을 살펴봤습니다. 2016년 고양이 600여마리를 무단으로 포획해 산채로 끓는 물에 담가 도살한 이른바 ‘나비탕’사건에서 학대자는 동물보호법 제8조 위반 등을 이유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는데요. 당시 재판부는 정씨의 행위가 생계를 목적으로 동물을 도살했고 더 이상 동물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을 감안해 실형은 면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동물단체들은 ‘동물학대를 용인한 판결’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터트렸지요.

최근 들어 동물을 죽인 사건의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곤 하지만 이는 소유자가 있는 고양이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올해 초 50대 A씨는 B씨가 기르는 ‘시컴스’라는 고양이를 쓰다듬었으나 하악질(경고의 의미로 이빨을 드러내며 공기를 내뿜는 행위)을 하며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죽였고, 이튿날 저녁에는 분양 받아 온 고양이가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죽여 징역 4개월이 선고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컴스의 경우 소유자가 있는 고양이어서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가 별도로 성립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앞서 언급한 경의선 고양이 살해사건 역시 징역 6개월이 나왔는데요, 대상이 길고양이가 아니라 인근 식당에서 A씨가 키우는 고양이 ‘자두’였기 때문에 동물보호법과 재물손괴죄가 적용됐습니다. 한재언 변호사는 “지금까지 길고양이를 죽인 사건은 벌금형인 게 대부분이었다”며 “고양이 관련 판례를 찾아보니 동물학대사건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다가 시비가 붙어서 발생한 폭행, 협박사건이 더 많았다”고 말합니다.

◇길고양이 학대 막을 방법은 없나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동물보호,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특히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수법은 더 잔인해지고 있는데요. 물론 그 동안 처벌이 미약했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특히 시민들이 길고양이 학대 신고를 해도 ‘고양이 한 마리 죽은 것 갖고 그러냐’는 인식이 많았고 경찰도 수사에 미온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양이를 함부로 다루는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길고양이 학대를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는 사람에게 느슨하게 길들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관계상 사람이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천명선 교수는 “길고양이들이 밖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졌고 사람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는 종이다. 느슨하게 가축화된 동물이다”라며 길고양이들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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