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왼쪽) 감독이 'Da 5 블러드' 촬영장에서 출연배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30대 초반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명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평단의 지지가 따랐다. 하지만 자국 주류 영화인들은 냉담했다. 그는 영화 ‘똑바로 살아라’(1989)로 1990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각본상 후보, ‘4 리틀 걸스’(1997)로 98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모베터 블루스’(1990)와 ‘정글 피버’(1991), ‘말콤 엑스’(1992) 등 수작을 쏟아내도 오스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검은 피부색이 원인이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는 언제나 백인들 차지였으니까. 스파이크 리(63) 감독은 30년 가량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영화인으로 꼽히면서도 그렇게 외면 받았다.

예순을 넘어서야 아카데미상은 리 감독을 조명했다. 그는 지난해 ‘블랙 클랜스맨’(2018)으로 생애 처음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각색상 트로피만 가져가는데 그쳤지만, 흑인 첫 수상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는 수상 소감 막바지에 “2020년 대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며 “똑바로 살자”고 말했다. 흑인이 받아온 괄시, 흑인에 대한 부당한 평가, 흑인을 향한 그릇된 시각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행동에 나서라는 의미였다. 1983년 ‘조의 이발소’로 데뷔한 이래 리 감독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메시지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출세작 '똑바로 살아라'(1989).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리 감독은 “이때 황금종려상을 강탈 당했다”고 생각한다.

리 감독은 지난 12일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된 신작 ‘Da 5 블러드’에서 더욱 선명하고 세련되게 오랜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드러낸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차별 문제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이 시기, 이보다 시의적절한 영화는 없다.

‘Da 5 블러드’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4명이 베트남을 다시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노인이 된 네 전우가 베트남에 온 목적은 두 가지다. 여행의 명분이자 공식적인 목적은 정글에 두고 온 분대장 노먼(채드윅 보즈먼)의 유해 찾기이다.

다른 목적은 은밀한 것이다. 노먼 유해와 함께 묻은 황금을 찾는 일이다. 용기 있고 현명했고 정치적 신념까지 지녔던 노먼은 네 사람에게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다. 수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황금은 “뺏기기만 하며 살아온” 그들의 지난 고통을 보상해줄 물질이다. 수십 년 만에 이뤄진 이들의 베트남 여정은 잃어버린 영혼과 물질을 동시에 찾을 수 있는 기회인 셈. 하지만 네 사람은 황금을 두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영혼과 물질 사이에서 고뇌하게 된다.

스파이크 리는 최신작 'Da 5 블러드'를 통해 미국 흑인의 역사를 돌아보고 베트남전을 새롭게 바라보기도 한다. 넷플릭스 제공

리 감독은 흔한 모험극 같은 155분짜리 이 영화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되짚고, 흑인 관점에서 베트남전을 되돌아본다. 미국 독립전쟁의 단초가 된 1770년 보스턴학살 사건 당시 시위를 주도했다가 순교한 크리퍼스 애턱스가 흑인이었음을 상기하거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 장면을 소환한다. 미국 역사의 주요 갈피마다 흑인이 있었고, 흑인의 말없는 희생이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승전 같은 국가적 성취가 가능했다고 역설한다. “흑인이 미국 인구의 11%”에 불구한 데도 “베트남전 미군 32%가 흑인”이었던 부조리를 들추고, 이들 대부분이 최전선에 몰려야 했던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기도 한다. 리 감독은 조국, 미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흑인이 차별 받고, 흑인의 공헌이 외면 받는, 정의롭지 못한 조국을 부정하기도 한다. 영화 막바지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며 여전히 ‘똑바로 살아라’고 강조한다.

‘Da 5 블러드’에 대한 해외 언론과 평단의 반응은 호평 위주다.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구조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선물 같은 영화이고, 이는 어떤 감독도 해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예전문 매체 롤링스톤은 “매 장면마다 인종적 정의를 요구하는 절규가 울린다”며 “리 감독은 우리 시대 영혼을 자극하는 영화 이상의 것을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유명 영화평론전문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Da 5 블러드’의 ‘신선도’(평가 평균점)는 12일 기준 92%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말콤 엑스'(1992). 덴젤 워싱턴이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를 연기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전작 '블랙클랜스맨'(2018). KKK단에 잠입 수사를 하는 흑인 형사의 실화를 담았다. 덴젤 워싱턴의 아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 제공

리 감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으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지난 1월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선정됐다. 칸영화제가 소개한 이력은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선구자로서 라이언 쿠글러(‘블랙 팬서’), 조던 필(‘겟아웃’), 배리 젱킨스(‘문라이트’), 에바 듀버레이(‘셀마’) 같은 신세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감독들이 등장하는 데 길을 닦았다.” 자신의 국적을 ‘뉴욕, 브룩클린인민공화국’으로 소개하곤 하는 리 감독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다. ‘Da 5 블러드’는 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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