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1.5m 난간 넘기 위험천만… 뱀 나와 어른도 안 가는 야산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3일 방문한 경남 창녕의 한 빌라 옥상. 의붓아버지와 친모로부터 상습적으로 학대를 받은 A(9)양은 이곳을 통해 집에서 탈출했다.

“굶주린 아이가 이 좁은 곳에 갇혀 있다가 지붕을 건넜다니. 울화통이 터지죠.”

경남 창녕에서 상습적으로 학대를 당한 A(9)양이 탈출과정과 행로가 알려지면서 이웃주민들은 안타까운 심경을 쏟아냈다. 국가와 사회의 돌봄이 사라진 곳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A양의 탈출경로가 웬만한 성인도 지나다니기 힘든 험지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비통한 심정까지 토로했다. “생각해보니 간혹 A양의 집에서 어린 아이가 죽을 것 같이 우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A양이 살던 경남 창녕 대합면의 G빌라 주민들에 따르면 A양은 지난달 29일 오전 옥상 지붕을 건너 옆집으로 건너간 뒤 인근 야산을 거쳐 1.5km떨어진 편의점 근처 도로까지 이동했다가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 부모의 학대를 피하기 위한 A양의 행적을 추적해 본 결과, 비록 멀지 않는 거리였지만 어느 한 곳 정상적인 길이 없었다. “아홉 살배기가 지나가기엔 터무니 없이 위험한 길”이라는 주민들은 “오죽했으면 생사가 걸린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했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A양이 건너갔다는 빌라 옥상은 한 눈에도 아찔해 보였다. 4층짜리 빌라의 옥상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고 비교적 마찰이 강한 아스팔트 재질이라 이동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굶주린 9세 아동이 이동하기엔 턱없이 위험했다. 또 베란다에 약 1.5m 높이의 난간이 설치돼있어 A양이 난간을 넘어 지붕까지 올라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양의 건너편 집에 사는 주민 B씨는 “A양 집 베란다에 트램폴린이 설치돼 있는 등 화목한 모습이라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집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침통해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A양이 이웃 주민에게 발견되기 전 숨어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산 초입(왼쪽)과 산 속 비탈길(오른쪽). 길이 닦여있지 않아 수풀이 빽빽하다.

정황상 A양이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빌라 인근 야산 또한 정상적인 길이 아니었다. 야산 초입에 성묘객이 이용하는 산길이 나있긴 했지만 묘지 너머로는 썩은 낙엽이 가득 쌓인 비탈길뿐이었다. 부모 눈에 띌까 봐 산길을 택해 걸었다는 A양 말에 따라 야산으로 들어섰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닥이 미끄러워 10분만 걸어도 온 몸이 흠뻑 젖었다. 낙엽으로 덮여 평지처럼 보이는 길 곳곳에 깊게 웅덩이가 패여 자칫 발목을 다칠 수 있다는 우려도 들었다. 인근 차도에서 산책을 하던 한 주민은 “평소 뱀이 나온다며 어른들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29일 오후5시 반쯤 동네 주민으로부터 A양을 인계 받았다는 편의점 주인 김현석(31)씨에 따르면 A양은 구조 당시 흙투성이 상태였다. 김씨는 “A양이 도로를 따라 도망치다간 엄마 아빠 눈에 띌 것 같아서 산길을 따라 걸었고 산에서 도로로 나오자 한 아줌마를 만나 이곳에 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빌라를 탈출한 A양이 주민들에게 구조되기까지 약 7, 8시간 걸린 점을 감안하면 A양은 산 속에서 7시간 가까이 머물거나 헤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현재 A양이 산길이 아닌 다른 경로로 온 건 아닌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창녕=글ㆍ사진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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