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궁극의 맛’ 중 한 장면. 쫄깃한 떡에 탈북민의 애잔한 삶이 버무려진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엄마가 끓여준 소고기 뭇국이 생각나. 그래서 너무 싫어.”

휘휘 저어도 살코기 한 점 떠오르지 않는, 고기는 냄새로만 남아 있는 “희뜩하고 멀건 국”에 짭조름한 눈물로 간을 한다. 후후 불어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으면, 그래도 한때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날은 다신 오지 않는다. 고된 삶에 지친 엄마는 죽으려 불을 질렀고, 화마에서 살아나온 아들은 죽음보다 더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병상에서 소고기 뭇국 식사를 받아 든 아들은 교도소로 편지를 쓴다. “엄마, 거기도 뭇국 나와?”

연극 ‘궁극의 맛’은 여성 죄수를 둘러싼 7가지 사연을 맛에 빗대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요리했다. 도박, 폭행, 살인 등 제 각각 사연은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한 그릇엔 추억, 회한, 체념, 원망, 그리움, 그리고 죄의식이 담겨 있다.

딸 성폭행범을 죽인 엄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문어를 라면에 넣어달라 한다. 딸은 해물라면을 먹고 싶어 했다. 모시는 영감님 대신 감옥에 온 국회의원 보좌관은 입천장을 홀랑 데어버릴 만큼 뜨거운 권력을 해장국에서 만난다. 탈북민 가사도우미는 쫄깃한 펑펑이 떡을 빚으며 남한살이의 퍽퍽함을 떠올린다. 한 번 길들여지면 쉬 변하지 않는 게 입맛이다. 그렇기에 자그마한 사치나 희망이 허락되지 않는 감옥에서 입맛은 고통이다.

스파게티 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재소자들의 에피소드 ‘파스타파리안’. 두산아트센터 제공

일곱가지 에피소드엔 저릿한 사연만 있는 건 아니다. “매끈한 면발의 스파게티 님”을 신봉하는 재소자들은 ‘휴거’를 기다리며 코믹한 춤과 랩을 펼쳐내는데 코믹 뮤지컬의 한 장면 같다. “까르보나라, 라비올리, 라자냐, 라멘!” 흥에 겨워 함성이 절로 나온다.

극의 백미는 ‘체’라 이름 붙은 마지막 에피소드다. 급체한 미술치료사가 구토를 한다. 재소자와 미술치료 장면을 찍던 사진작가도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게워낸다. 이들이 토사물 위에 넘어지고 뒹구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앞서 6개 에피소드가 하나로 버무려진다.

그 모든 걸 싹 비워냈기 때문일까. 속이 가벼워진다. 개운해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혀 끝에 감칠맛이 돈다. 그 순간이 ‘궁극의 맛’이다.

이 연극은 넌지시 이야기한다. 비워 내야 다시 채울 수 있다고, 어긋난 삶도 깨끗이 지울 수 있다고, 그러니 새로운 맛을 미리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마치 고급 레스토랑처럼 차려진 무대가 몰입감을 선사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무대가 상당히 독특하다. 바처럼 길다란 테이블이 삼각형 형태로 놓여 있고, 관객은 테이블 앞 좌석에 앉는다. 그 테이블 위엔 음식이 차려지고, 배우들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면서 연기한다. 마치 교도소 담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 몰입감이 생생하다. 110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만화 ‘도쿠도메시’를 토대로 황정은, 진주, 최보영 작가가 7개 에피소드를 새로 썼다. 최근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을 수상한 신유청 연출의 요리 솜씨도 매우 탁월하다. 20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