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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기들로의 도발(6.8)

입력
2020.06.08 04:3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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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기들로가 1986년 실명으로 출간한, 최초의 레즈비언 실명 자서전 표지. amazon.com
엘사 기들로가 1986년 실명으로 출간한, 최초의 레즈비언 실명 자서전 표지. amazon.com

영국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뒤 몬트리올에 정착한 만18세 레즈비언 여성 엘사 앨리스 기들로(Elsa Alice Gidlow, 1898.12.29~ 1986.6.8)가 1917년 가을 어느 날 지역 신문 ‘몬트리올 데일리 스타’에 독자 편지를 썼다. ‘작가 모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자기 집으로 모여 달라’는 제안 편지를 썼다. 필자가 여성이라는 데 솔깃해진 어중이떠중이들이 주류였지만 훗날 기들로가 자서전에 소개한 바 “놀라운 기품을 갖춘(…) 아름답고 긴 금발의” 남성이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스타’지에 여자 이름으로 ‘What Girls May Do’라는 칼럼을 연재하던 게이 로즈웰 조지 밀스(Roswell George Mills)였다.

둘이 의기투합해 그해 펴낸 잡지가 북미 최초의 동성애자 매체 ‘레 무쉬 판타스티크(Les Mouches Fantastiques, 웽웽대는 파리떼라는 의미)’였다. 기들로가 주로 여성성을 주제로 한 자작시와 번역 작품을 소개했고, 로즈웰은 동성애 관련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반전 평화의 메시지와 가부장 사회에 대한 풍자에도 힘을 쏟았다. 물론 대다수 시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엘사 기들로는 인종차별ㆍ동성애자 차별주의자인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레프트(H.P Lovecraft)와 지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20년 기들로는 뉴욕으로 이주, 잡지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작가를 만났고, 26년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지역 의회 등에도 진출했다. 2차대전 전후인 1950년대 중반까지 반전ㆍ인권 등에 관한 글을 잇달아 발표, 하원 ‘비미위원회(HUAC)’ 청문회에 선 적도 있었지만 그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웠다.

그는 1954년 지인과 돈을 보태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뮤어우즈(현 국립공원) 숲 5에이커를 구입, 은둔 예술인마을 ‘드루이드 하이츠(Druid Heights)’를 설립했다. 시인 게리 슈나이더, 시인 앨런 긴즈버그 등 수많은 사람이 거기서 생활하며 글을 썼다. 기들로도 23년 레즈비언 연애시집 ‘On A Grey Thread’와 실명으로 쓰인 최초의 레즈비언 자서전 ‘Elsa, I Come with My Songs(1986)’ 등 13권의 책을 출간했다.

쇠락한 ‘드루이즈 하이츠’ 부지는 현재 공원관리국이 소유하고 있고, 유적 보전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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