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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가업 잇는 '대장장이'… "누가 아직 수제 농기구를 찾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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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가업 잇는 '대장장이'… "누가 아직 수제 농기구를 찾냐고요?"

입력
2024.05.21 10:00
수정
2024.05.21 18:0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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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연산대장간' 3대째 가업 이어
"몸 아프고 고되지만"… 전통 방식 고수
"대학생 아들도 원한다면 대 잇게 할 것"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장터에 있는 연산대장간에서 대장장이 류성배씨가 야전괭이를 만들고 있다. 류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112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논산=윤형권 기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장터에 있는 연산대장간에서 대장장이 류성배씨가 야전괭이를 만들고 있다. 류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112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논산=윤형권 기자

‘탁탁탁탁 타악탁 찰칵찰칵 탕탕탕 탁탁….’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모루에 올려 놓고 망치로 힘차게 내려치자, 쇳덩이가 흙반죽처럼 부드럽게 펴졌다. 이어 편평해진 쇠를 뻘겋게 달궈진 화로에 넣었다가 도로 꺼내 두드리고 접기를 반복했다. 두드려 접은 쇠를 원통형으로 돌돌 말아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둥근 공간을 만들자 익숙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초꾼이나 문화재 발굴 작업자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이른바 ‘야전괭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석탄 화롯불로 익힌 쇳덩어리를 10분도 안 돼 괭이로 만들어낸 주인공은 충남 논산 연산면 연산장터에서 112년째 가업을 잇고 있는 ‘연산대장간’의 대장장이 류성배(55)씨다. 그는 “호미, 괭이, 부엌칼 등 단골 고객들이 주문한 것들을 약속한 날짜에 맞춰 보내려니 명절 당일 빼고는 휴일이 없다”면서도 “재미가 있으니까 쉬는 날도 모른다”고 했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을 닦는 표정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류성배씨. 논산=윤형권 기자

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류성배씨. 논산=윤형권 기자

류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은 ‘3대 대장장이’다. 2014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그가 대장간을 이어받았다. 류씨는 “할아버지께서는 북한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다가 6·25 전쟁 때 가족들을 데리고 계룡산 아래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선 계룡시 남선리에 자리를 잡고 대장간을 운영하셨다”고 밝혔다. 류씨의 형 류성일(59)씨와 조카 류현우(26)씨도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며 가업을 잇고 있다. 류씨 조카가 ‘4대 대장장이’인 셈이다. 류씨의 아들도 방학 때마다 틈만 나면 대장간 일을 돕는다고 한다. 그는 “졸업 후 본인이 원하면 대장간을 물려줄 것”이라며 “아들도 쇠 다루는 일을 좋아한다”고 흐뭇해했다.

류씨와 형, 조카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 방식을 지금도 고집한다. 쇳덩이를 화로에 묻어뒀다가 노랗게 익으면 집게로 꺼내 전동 망치로 수백 번 때려 도구 모양의 ‘꼴’을 잡고 전동 망치질을 한 뒤 다시 화로에 넣었다가 물에 담가 식혀 모루에 올려 놓고 쇠망치로 때린다. 이런 작업을 대여섯 번 반복하고 혁두(쇠 자르는 작두)를 이용해 도구 모양대로 오려낸다. 그는 “쇠는 1,538도에서 녹아 내린다. 쇳덩이 온도가 1,300~1,400도 정도일 때 노란색을 띠는데 이때가 망치질 하기에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온도’는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감’으로 알아챈다. 담금질과 두드림을 여러 번 반복하면, 어깨와 팔뚝이 아프고 몸은 고되지만 ‘찰진 맛’ 때문에 참고 견딘다. 그는 ”쇠는 두드릴수록 질기고 강해진다고 하지 않느냐. 아버지 때부터 찾아오는 단골 고객들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화로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모습. 논산=윤형권 기자

화로에서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모습. 논산=윤형권 기자

이런 전통 방식으로 대장간을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 손에 꼽을 정도다. 호미나 낫, 괭이 등 농기구는 기계에 밀려 농민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마저 값싼 중국산에 치여서 철물점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단골 고객들은 값이 조금 비싸도 류씨네 대장간을 꾸준히 찾는다. 부산, 춘천,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호미의 경우 일주일에 300~400개를 제작한다. 수입도 나쁘지 않다. 대장간 운영해서 밥은 먹고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에 류씨는 “가족 부양하고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고된 망치길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은 ‘112년 가업을 잇고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이다.

“우리 고유의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분들 덕분에 대장장이라는 직업도 대를 이어 물려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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