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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의 불안감에 대하여

입력
2023.11.0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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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청각장애인인 실비아와 빌리가 대화하고 있다. 마크923 제공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청각장애인인 실비아와 빌리가 대화하고 있다. 마크923 제공

며칠 전 내 단편소설이 장철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됐다. 서울독립영화제와 패럴스마트폰영화제에서도 상영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크레디트에 ‘원작 심너울’이라는 글자가 올라가는 것을 볼 때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주인공의 이름이 ‘나울’로 설정된 것은 살짝 부끄러웠지만). 나의 뇌에서 만들어진 작은 이야기에 십수 명의 사람들이 뭉쳐서, 영상이라는 매체로 구현해 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소설이 내 인생 첫 번째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짜릿했다.

영화화된 소설은 '정적'이라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에만 들어서면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는 초현실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 행정적 경계 내에 있으면 아무도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경계를 나서면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당 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탈출하지만, 텅 빈 서대문구와 마포구를 안식처로 삼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원래 소리를 듣지 못했던 청각장애인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발표하고 난 뒤 나는 꾸준히 불안감과 미묘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청각장애라는 특성을 현실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은유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로 사용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정체성이면서, 동시에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특성을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너무 편리하게 사용해 어떤 죄를 지은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동시에, 내가 감히 은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로 이야기를 쓰지 않았나 되돌아보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야기에 대한 외부적인 평가는 괜찮았던 것 같다.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 ‘사랑의달팽이’가 영화화를 후원했다는 것을 알고 약간은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고민이 끝이 없으리라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고뇌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저씨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전문기술도 없고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고민인 20대 후반 남자가 주인공인 일인극만 쓰지 않는 이상에야, 이야기를 쓰려면 결국 타인의 삶을 모방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인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걱정된다. 내가 편하게 조롱하는 타인의 불합리한 행동은 사실 그 사람의 생애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필연적으로 편견과 인간의 한계에 묶인 불완전한 관찰자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내가 갑자기 인간을 초월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야기 쓰는 것을 그만두고 백수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불안감으로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결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야기꾼이 현실을 투영하는 렌즈라면, 그 렌즈에 방심과 안일함이 끼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불안감이 사그라들어 사라지는 것 아닐까 싶다. ‘쉽게 가자’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할 때. 모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별 상관없다는 사고가 가득 찰 때. 그때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거대하고 입체적인 한 개체를 극단적으로 대상화하게 된다. 그렇게 쓰인 이야기는 별반 재미도 없을 것이다. 하긴, 세상에 그 무슨 일이든 쉬이 한 일과 편히 한 일은 다 티가 나기 마련 아니겠는가.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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