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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오염수 논란에서 정부가 놓친 것

입력
2023.05.29 00: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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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금태섭전 국회의원·변호사

편집자주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외면한 채 양쪽으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고 해결책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삼중수소 미량", 안전 강조하는 정부
안전 지키려는 진정성 국민에 보여야
논쟁보다는 국민 마음 얻는 게 먼저

제주시 도두항에서 도두어부회와 해녀 등 150여 명이 22일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시 도두항에서 도두어부회와 해녀 등 150여 명이 22일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바다의 수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기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지 예측하는 것은 1차적으로 전문가들의 몫이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된다. 현재까지 나온 자료는 상충적이다.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여 만든 태평양도서국포럼 산하 전문가 그룹은 지난 4월 일본이 제공한 데이터가 부족해서 방류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오염수 탱크의 규모와 복잡성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진행된 '다핵종제거설비(ALPS)' 검사만으로는 안전성을 확인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방류를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와 반대로 태평양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삼중수소의 양에 비해 일본이 매년 배출하는 22테라베크렐(TBq)은 극히 미미해서 수질이나 인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본다. 이들은 영국의 헤이샴 원전이 매년 1,300TBq의 삼중수소를 40년간 방류했지만 주변 국가의 환경이나 안전에 해를 미치지 않았다는 실례를 든다. 중국의 푸칭 원전이 2020년 52TBq, 한국의 고리 원전이 2018년 50TBq의 삼중수소를 방류한 것을 후쿠시마 오염수의 양과 비교하기도 한다. 정부도 이런 견해를 채택해서 검증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위험하지 않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염수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일각의 여론을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과학과 괴담의 싸움"이라고 강조하는 발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이런 태도는 국민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에 관한 인식이 결여된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단순히 전문가들의 견해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심판처럼 판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국민들 편에 서서 세부적인 요소까지 하나하나 따져 묻고 가급적 직접 검증하고 때로는 국제사회에서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고집을 부려가며 안전에 관한 요구를 관철하는 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이다. 일반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정부가 챙긴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불안감이 사라진다. 지금처럼 반대 의견을 괴담 취급하면서 가르치려고만 들면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 정부의 후쿠시마 시찰단이 정말 국민들에게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는지 아니면 일본에 면죄부를 안겨주는 들러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는지 재삼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정부도 답답할 것이다. 특히 진짜 국민 건강을 염려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통해서 정치적 동력을 얻으려는 듯한 야당의 태도에는 좌절감이 들 것이다. 후쿠시마 방류를 우물에 독을 넣는 행위에 비유하면서 안전하면 식수로 쓰라는 야당 대표의 발언을 들으면 '우리도 고리 원전 방류수를 식수로 쓰자는 말인가' 하는 한탄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임무는 야당과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수산물 소비량의 변화가 될 것이다. 정부가 안전성을 역설해도 국민들이 불안하면 수산물 소비는 급감할 것이다. 그 피해는 어민들을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간다.

보수 정부는 과거 광우병 논란 때 이번과 비슷한 경험을 했고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그때도 다수의 걱정을 괴담으로 치부하면서 사법기관을 동원해서 억누르다가 정작 중요한 신뢰를 잃고 불안감만 키웠다. 또 국민을 가르치려 들다가는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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