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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은 후쿠시마 문제를 어떻게 보나

입력
2023.05.27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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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뜬소문 피해’의 속사정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일본인들도 해상방류의 위험성을 인정하지만, 예산과 기술적 한계 등의 이유로 일본 정부의 방류 방침에 강하게 제동을 걸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일본인들도 해상방류의 위험성을 인정하지만, 예산과 기술적 한계 등의 이유로 일본 정부의 방류 방침에 강하게 제동을 걸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 '국제민폐' 알면서도, 오염수 방류 인정하는 일본 여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 문제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매우 껄끄러운 사안이다. 사고 원전의 오염 물질을 바다로 흘려보내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반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본 시민들도 근해를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는 것을 잘 안다. 회나 초밥 등 수산물 중심의 식문화도 발달된 만큼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주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 일본 정부의 재정 규모와 과학 기술로는 사고 이후 10여 년 동안 축적된 천문학적 규모의 방사능 물질을 깨끗하게 ‘처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지역 신문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후쿠시마 민보, 2023년 3월 6일 자 보도), 응답자의 대부분(90.5%)이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로 인한 피해가 클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낸 반면,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가 41%, 찬성이 38.9%, 잘 모르겠다가 20.1%로 의견이 갈렸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 불 보듯 뻔한 후쿠시마 지역 주민조차 오염수의 해양 방류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데에는 납득한다. 일본 정부의 입장이 주로 보도되는 한국의 언론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사실 많은 일본 시민들이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이 국제적 민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일본인 친구는 “이웃 나라에 말할 수 없이 큰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속상해하면서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후쿠시마 문제를 보는 일본 시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지만, 달리 보면 패배주의적이다.

◇ ‘뜬소문 피해’를 부추긴 일본 정부

2011년 방사능 유출 사고 이후,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사고 초기에는 후쿠시마 피난민이 차별을 받거나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연애나 결혼 상대로 거절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또 후쿠시마뿐 아니라 인근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까지 급감했고, 그 지역 농산물이나 수산물이 팔리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사실 방사능 사고 이후에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을 기피하는 경향은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이나 먹거리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소비자들이 후쿠시마산을 기피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뜬소문 피해’(일본어 표현으로는 ‘풍평 피해 風評被害’라고 한다)를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일찌감치 선언해 버렸다. 이 사고에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주체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에 실패한 정부와 운영 회사 도쿄전력이다. 어떻게 보면 후쿠시마 주민뿐 아니라 마음 편하게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선택하지 못하게 된 소비자들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상황을 ‘뜬소문 피해’로 왜곡하면서, 애꿎게도 후쿠시마 브랜드를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헛소문에 속아 넘어간 어리석은 ‘가해자’로 지목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정보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다. 그러다 보니 방사능 오염과 관련해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고, 실제로 ‘뜬소문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상황이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나자 일본 정부는 바로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고 사고 현장 반경 20㎞ 권역을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는 ‘경계구역’으로 선포했다. 그런데 동일한 시기에 미국 정부는 일본에 있는 자국민들에게 사고 현장 반경 80㎞ 권역 밖으로 바로 피난하라고 권고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미일 정부의 온도차가 뚜렷이 드러났는데, 미국 정부는 일본보다 사고를 훨씬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당시 필자도 일본에 거주하던 주민으로서 일본 정부 태도에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동일본 대지진 이전부터 일본에서 지진이나 자연 재해를 여러 차례 경험했었다. 그때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하고, 재난 정보를 폭넓고 꼼꼼하게 공유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감탄했었다. 재해나 재난과 관련한 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한국이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정부의 모습은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사고가 발생한 현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채 그저 “안심하라”, “문제없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평정심을 잃을 정도로, 사고가 매우 심각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시민 사회 전반적으로 정부 발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싹튼 계기였다.

원전 사고 이후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적어도 일본 국내에서는 후쿠시마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시민들은 후쿠시마의 ‘뜬소문 피해’를 줄이자는 정부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후쿠시마의 농수산물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려고 애쓰는 지인도 있다. 대체로 중장년 이후의 고령자들로 출산과 육아를 앞둔 젊은이들 대신 후쿠시마 부흥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 시민들이 “후쿠시마는 이제 안전하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선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 원전 사고는 일본 사회가 떠안은 ‘불치병’

원전 사고는 일본 사회가 떠안은 ‘불치병’일지도 모른다. 일본 정부와 시민 사회가 10여 년 동안 끙끙 앓아 왔지만,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전 사고가 일본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은 단순하게 수치화하기 어렵다. 사고 현장의 복구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 후쿠시마나 인근 지역의 경제적 피해 등도 천문학적이지만, 일본 사회의 정치와 사회 심리 전반에도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원전을 둘러싼 소모적인 여론전에 국제 관계와 외교 문제까지 얽히며 배타적인 극우 세력의 존재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원전 사고와 관련한 공공 정보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과학자나 전문가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지성주의도 커지고 있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혼란을 보면, 애초에 원자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에 섣불리 손을 댄 것, 그 자체가 문제였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오염수의 해양 방류 문제를 그저 외교적 사안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일 관계 개선도 좋고, 이웃 나라의 어려움에 손을 내미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이 일은 모두의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사안이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오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바다의 오염을 걱정하는 한국 시민을 괴담에 휘둘리는 ‘뜬소문 피해’의 가해자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어도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는 그 어떤 주체도 섣불리 자신할 수 없는 ‘초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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