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1억 연봉' 받으며 단순 조립하려는 대기업 생산 현장

입력
2023.03.27 04:30
수정
2023.03.27 10:07
25면
0 0

편집자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최대 숙제였지만, 이해관계 집단의 대치와 일부의 기득권 유지 행태로 지연과 미봉을 반복했던 노동·연금·교육개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3대 개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한다.

노동개혁: <3> 임금체계 개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방위 약점 드러난 연공적 호봉급
이중구조 해소 등에서 우려 나와도
부당 차별 해소에 직무급 역할 기대

공장 연구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작업현장을 돌아다녔다. 자동차, 조선, 철강, 공작기계 등 업종은 다양했지만 내가 방문한 대공장의 임금체계는 거의 호봉제였다. 호봉제가 숙련과 근로 의욕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 현장에서 다음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호봉제하에서는) 능력을 개발하여야 할 유인이 없다. 수당이 더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은 잘 고치지만, 저 사람은 잘 못 고친다. (그러나) 같이 잔업하고, 돈도 똑같이 탄다. (그러니) 안 배우려는 풍조가 있다. (작업자들은) 조장이 하겠지, 직장이 하겠지라는 식으로 자기계발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숙련과 능력을 개발하여야 할 유인이 없다 보니 생산현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10년 이상의 습숙기간이 필요한 기계가공노동자가 기계이상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을 육성하기가 귀찮아 작업공정이 단순한 조립공정으로 이동해줄 것을 대의원에게 부탁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연 1억 원을 넘게 받는 노동자가 단순 조립 공정으로 이동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공장이라면, 사용자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채용하려는 게 자연스럽다. 단순 공정의 외주화, 자동화가 이뤄지는 이유다. 대기업에서는 근로자가 50대가 되면 연봉이 1억 원을 넘게 되는데, 고임금에 어울리는 직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연봉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화이트칼라 중고령층은 우선적으로 고용조정 대상이 된다. 이처럼 호봉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므로 대·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한 원인이 된다.

윤석열 정부가 호봉제를 노동개혁의 주요 목표로 설정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정부에 제출한 권고안을 보면, "고용 형태 및 원·하청 기업 간 과도한 임금 격차를 축소할 수 있도록 연공성 완화 및 직무·숙련 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특히 중요한 1차 목표이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 두 가지 논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는 이중구조와 임금체계 사이의 관계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의 원인은 두 가지로, 생산성 격차(불공정거래도 약간 원인일 수 있다)와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 극대화 전략이 그것이다. 호봉급 수정만으로는 이중구조를 약간 완화할 수 있으나 크게 줄일 수 없다. 유럽의 산별 노조운동처럼 직무급을 이용한 임금연대성 전략으로 이중구조를 크게 축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늘의 한국 노조 운동으로부터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원하청기업 간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중구조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크게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중소기업 기술 경쟁력의 증가이다. 혹자는 호봉급을 개편하여도 기업의 이윤이 증가할 뿐 중소기업 노동자의 보상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부인하나 호봉급 개편의 목적이 이중구조 개선만은 아니다. 그 목적은 숙련 촉진, 중고령자 고용안정, 더 많은 정규직 채용, 60세 이후 계속고용을 위한 전제 등 여러 가지이다.

둘째는 호봉급의 대안으로서 직무급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직무급을 신설하거나 직무별 시장가치를 고려하여 연공성을 축소한 사례들도 있지만, 기업에서 연공성을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역할급을 도입한 사업장이 증가하고 있고, 임금체계를 숙련급으로 설계한 빅테크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연공급을 폐지하고 성과급을 도입한 사례도 있다. 직무급의 빠른 확산을 기대하기 힘들게 하는 몇 가지 요소들도 있다. 직무별 노동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가 부족한 것, 직무급과 약간 충돌하는 '유연한 직무배치'가 강조되는 기업 현실, 노조의 반대 등이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렇지만 정부가 직무급 보급을 지원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리를 내장한 유일한 임금체계로서 정규-비정규간·성별 차별을 드러내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에서는 정부 지원을 받아 직무급과 연공급으로 구성된 병존형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사업장이 증가하고 있다. 건설업이나 영화산업, 조선업의 하청회사 등 외부 노동시장은 직무급적 성격이 강하므로 이들 업종에서 표준적인 직무급이 정착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는 직무별 시장임금 정보의 구축은 장차 직무급 도입과 확산에 필요한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이다.

글 싣는 순서-노동개혁

<1> 왜 노동개혁인가? (정승국)
<2> 근로시간제 개선 (김기선)
<3> 임금체계 개선 (정승국)
<4> 격차해소 위한 제도개선-1 (권혁)
<5> 격차해소 위한 제도개선-2 (정승국)
<6> 미래지향적 노동법제 (권혁)
<7> 자율·책임 노사관계 (박지순)
<8> 노동시장 활력 정책 (고혜원)
<9> 노사법치주의 강화 (권혁)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