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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도 까도 끝을 알 수 없는 묘한 식물, 산달래

입력
2023.03.2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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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실하고 향이 강해 약용·식용으로 대접받아
독도에도 뿌리내리는 강인한 식물이기도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산달래. 우리가 ‘달래’라고 부르며 나물로 먹는 식물은 실제로 산달래다. 봄이 무르익으면 분홍색 자잘한 꽃이 한 움큼 모여서 백열등처럼 핀다. 허태임 작가 제공

산달래. 우리가 ‘달래’라고 부르며 나물로 먹는 식물은 실제로 산달래다. 봄이 무르익으면 분홍색 자잘한 꽃이 한 움큼 모여서 백열등처럼 핀다. 허태임 작가 제공

“봄나물 캐러 가자, 임아.”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큰 나는 이 말을 들어야 비로소 봄이 온 걸 체감했다. 해마다 이 무렵 어린 나는 호미랑 바구니 챙겨서 할머니 따라 졸래졸래 밭으로 들로 나갔다. 거기서 만난 냉이며 쑥이며 달래가 내게 인사하는 걸 일종의 환청처럼 들었던 것도 같다. "그간 잘 지냈니? 이제 겨울잠 다 잤으니 너의 그 자그마한 바구니로 들어갈까?" 그들이 기지개를 켜듯 땅을 뚫고 올라와서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내 꼬마 허태임의 바구니는 그 봄 친구들로 꽉 차곤 했다. 할머니는 달래가 나는 자리를 기가 막히게 짚는다고 나를 치켜세웠다. 펑퍼짐하게 방석처럼 싹을 내는 냉이와 쑥은 눈에 잘 들어오는데 얄브스름한 달래는 잘 안 보인다고, 네 덕에 달래를 이만큼이나 캤다고 볼록 튀어나온 내 뒤통수를 할머니는 쓸었다. 후두엽까지 전해진 그 온기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건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십오 년이 흘렀다.

그보다도 식물분류학을 전공하며 내가 정말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 옆에서 캤던, 지금도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반갑게 캐는 그 식물은 달래가 아니라 산달래라는 거다. 한반도에 사는 달래는 달래와 산달래 두 종류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그 두 식물이 널리 퍼져 산다. 둘 중에 뿌리가 더 실하고 향이 더 강해서 예로부터 약용과 식용으로 대접받은 건 산달래다. 편의상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달래’라고 합쳐서 부른다.

달래. 산달래에 비해 달래는 전체적으로 소형이다. 산달래처럼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산다. 꽃은 어른 새끼손톱보다 작고 서너 송이가 성글게 모여 핀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튤립을 닮았다.

달래. 산달래에 비해 달래는 전체적으로 소형이다. 산달래처럼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산다. 꽃은 어른 새끼손톱보다 작고 서너 송이가 성글게 모여 핀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튤립을 닮았다.

달래의 한약명은 해백(薤白)이다. 늦여름과 초가을에 제법 굵어진 산달래 구근을 캐서 볕에 쬐어 말린 것을 한방에선 약으로 쓴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의 2,000년째 쓰고 있다. 중국 본초학서인 '명의별록(名醫別錄)'과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내부 냉증, 가슴이나 복부의 통증, 구토 및 설사를 다스리는 데 양기가 강한 산달래를 처방한다고 설명한다. 20세기를 통과하면서 과학은 산달래의 면면을 파헤쳤다. 항암·항균·항천식·항산화·항우울 효과와 같은 약리학적 활성을 가능케 하는 190종 이상의 화합물이 산달래 몸에서 확인되었고, 무려 96종의 스테로이드 성분과 플라보노이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 현대 문명 이전에도 그걸 알았던 걸까. 우리 선조들은 이미 고조선 시대에 산달래를 기가 막히게 이용했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0일간 곰이 먹었다는 쑥과 마늘. 여기서 일컫는 ‘마늘’은 지금 우리가 거의 매일 먹는 마늘이 아니라 산달래일 거라고 식물학계를 비롯하여 한의학계에서도 추정한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인 마늘이 한반도에 수입되어 재배된 때는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이다.

산달래는 무엇보다 힘이 정말 센 식물이다. 그 불사조와도 같은 능력을 나는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보았다. 작년 이맘때 울진에 역대급 산불이 불어닥쳤다. 그 불로 울진 동해안 일대는 서울 면적의 3분의 1이 잿더미가 되었다. 폐허가 된 그 땅에서 가장 먼저 싹을 내는 식물은 다름 아닌 산달래였다. 독도의 동도 경비대 건물 동쪽 비탈길 8평 정도 되는 땅에 산달래가 울릉산마늘과 섬기린초 등과 어울려 사는 걸 나는 몇 해 전 독도 식물탐사에서 목격했다.

산달래 한약명은 해백(薤白)이다. 중국에서는 대량으로 재배해서 약재로 유통한다. 식물사진은 GBIF·약재사진은 herbalsland 제공

산달래 한약명은 해백(薤白)이다. 중국에서는 대량으로 재배해서 약재로 유통한다. 식물사진은 GBIF·약재사진은 herbalsland 제공

산달래가 지닌 강인한 힘의 원천은 그들 유전자에 있다. 사람을 포함해서 보통(고등)생물은 모계와 부계로부터 각각 염색체를 하나씩 받아서 쌍을 이룬다. 우리 인간은 그래서 23쌍 46개의 염색체를 지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을 이배체라고 한다. 이례적인 기후변화와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의도적으로 염색체 수를 늘리기도 한다. 쌍으로 존재하는 염색체가 는다는 것은 달리 말해 그 수가 배수로 증가한다는 것. 산달래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 2배체, 4배체, 5배체로 방식을 바꾼다. 그것 말고도 산달래는 다채로운 번식방법을 쓴다. 씨앗을 퍼뜨리거나 꽃이 피는 자리에 싹을 내는 주아(主芽)를 만들거나 땅속에서 구근을 쪼개어 마치 아메바처럼 제 몸을 복제한다.

나는 요즘 산달래로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 송송 썰어서 달래장을 만들고, 어슷하게 썬 무와 당근을 함께 넣어 물김치를 담근다. 맵싸한 향이 강해서 저 혼자 튈 법도 한데 다른 재료들과 신기하게 잘 어우러진다. 같은 혈통의 마늘이나 양파처럼 산달래 역시 땅속 구근이 겹겹이 싸인 인경(鱗莖), 즉 비늘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야말로 까면 깔수록 더 궁금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식물이 아닐 수 없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허태임의 초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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