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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속 '노이즈'를 예술로…오류는 인간성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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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속 '노이즈'를 예술로…오류는 인간성의 증거

입력
2023.03.2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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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갤러리, 화가 박종규 개인전 열어

박종규 작가가 서울 종로구 학고재 전시실에서 자신의 작품 '수직적 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박종규 작가가 서울 종로구 학고재 전시실에서 자신의 작품 '수직적 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컴퓨터나 오래된 텔레비전(TV) 화면 속에서 지글거리는 점들은 통상 노이즈(noise·잡음), 즉 제거해야 할 대상이자 쓸모없는 오류로 여긴다. 그러나 화가 박종규(55)에게는 노이즈야말로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노이즈를 화폭에 옮겨 온 박종규의 개인전 ‘시대의 유령과 유령의 시대’가 다음 달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조각, 영상 등 모두 40점을 선보인다. 대표작은 '수직적 시간' 연작들. 컴퓨터 화면에 등장한 노이즈를 잡아내 길게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형태를 변형, 화폭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작가는 노이즈의 복잡한 모양대로 시트지를 찍어내고, 시트지를 캔버스에 붙인 다음 색칠하고 다시 시트지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캔버스를 매끈한 선들로 채웠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한 분홍색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당초 영상으로 제작돼 지난해 2월 대구 동성로의 전광판에서 틀었는데 이때 기계 오류로 노이즈가 발생해 화면이 분홍빛으로 물들자 그 모습을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박종규 작가가 '수직적 시간' 연작 가운데 또 다른 작품 앞에 섰다. 김민호 기자

박종규 작가가 '수직적 시간' 연작 가운데 또 다른 작품 앞에 섰다. 김민호 기자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노이즈야말로 휴머니즘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선택하는 순간 이것은 노이즈가 아니고 선택하지 않으면 노이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 등 여러 문제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됐다”며 노이즈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더욱 고도화하더라도 노이즈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주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전시를 기획한 학고재 이진명 이사(미술평론가)는 “박 작가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주류인) 모더니즘 양식이자 인간 내면을 다루는 순수주의이지만 여타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 그것도 아니면 인간 내면을 직접 다루지만 박 작가는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의 작품에서는 형식에서도 기존 회화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일부 작품들은 목재를 기계로 깎아내 입체적인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캔버스를 덧씌웠다. 그가 사각형 지지체(캔버스)가 없는 회화를 추구한 프랑스의 거장 클로드 비알라의 제자라는 점이 엿보인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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