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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까지 아날로그 감성… 중국인이 이곳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

입력
2023.03.11 1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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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계림산수 ④ 황야오고진

황야오고진 안락가에서 신랑신부가 웨딩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황야오고진은 의외로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가에서 신랑신부가 웨딩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황야오고진은 의외로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최종명


중국엔 인문·문화 자원이 풍성한 오래된 마을, 고진(古鎮)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장 아름다운 10대 고진에 자주 언급되는 마을이 있다. 몇 년 전에는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선정됐다. 중국 우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조금 낯설다. 소박한 옛날 모습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 황야오고진(黄姚古鎮)이다. 카르스트 지형을 품은 마을로 소계림(小桂林)이라 불린다. 계림산수의 땅 양숴에서 동남쪽으로 2시간 걸린다. 고속도로 출구를 빠져나와 2㎞를 들어가면 고진 입구다. 그 속살로 들어가 본다.

황야오고진 골목 끝에 카르스트 봉우리가 보인다 ⓒ최종명

황야오고진 골목 끝에 카르스트 봉우리가 보인다 ⓒ최종명


꼬불꼬불한 황야오고진 골목엔 삼거리가 많다. ⓒ최종명

꼬불꼬불한 황야오고진 골목엔 삼거리가 많다. ⓒ최종명

마을로 들어가는 문이 많다. 큰길 쪽에 있는 북문으로 들어간다. 100m가량 들어가면 마을 한복판이다. 민가를 고쳐 예쁘게 장식한 객잔이 두루 보인다. 공예품과 토산품 파는 가게와 식당, 카페도 많다. 반질반질한 석판이 깔린 골목이다. 마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선지 첫인상이 소담스럽다. 때깔이 좀 다른 운치다. 시간의 얼룩이 묻은 건물마다 홍등이 걸려있다. 퇴색된 벽화와 잘 어울린다. 팔괘(八卦) 형태로 조성돼 골목 동선이 꼬불꼬불하다. 사거리는 없고 삼거리만 만들어 반듯하지 않고 미로 같다. 표지판을 살펴야 길을 잃지 않는다. 거무스레한 담장을 따라가며 구석구석 살펴본다.

낡은 색깔이 오히혀 편안한 황야오고진 골목. ⓒ최종명

낡은 색깔이 오히혀 편안한 황야오고진 골목.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객잔인가' 객잔.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객잔인가' 객잔. ⓒ최종명


동양의 유태인, 황씨·요씨가 세운 마을

황야오고진이 처음 번창한 시기는 남송 시대다. 꽤 많은 마을이 그렇듯 천년고진이다. 광둥 출신의 객가인(客家人)이 이주하면서 번성했다. 객가인은 중원에서 남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통칭한다. 상업의 귀재로 동양의 유태인이라 불린다. 황씨(黄氏)와 요씨(姚氏) 일가가 처음 거주했다. 자연스레 마을 이름이 됐다. 명나라 말기에 더 많은 상인들이 황야오로 들어왔다. 장사에 유리한 요충지였다. 예로부터 중원과 영남(嶺南)을 잇는 길목이었다. 남쪽 지방에 다섯 곳의 산이 산맥처럼 이어져 있다. 이 오령 남쪽을 영남이라 했다. 지금의 광둥과 광시 일대다. 마을에 '객가인가' 객잔이 있다. 마을 연원을 알고 지은 이름이다.

황야오고진 안락사의 이도청.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의 이도청.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의 재신전.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의 재신전. ⓒ최종명

고진 중심이 안락가(安樂街)다. 안락사(安樂寺)가 있어서다. 명나라 말기 만력제 시대에 민란이 일어났다. 좡족과 야오족이 주동했다. 원래 소수민족 대표인 토사가 대리 통치를 하고 있었다. 중앙 관리를 파견해 직접 통치하는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이 시행됐다. 자율이 사라지고 빈곤이 가속화되자 봉기했다. 조정은 천호장군 이도청을 파견했다. 사태가 진압되자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창을 들고 말을 탄 장군의 형상이다.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은공을 잊지 않고 있다. 바로 옆에 재신전도 함께 있다. 은혜는 은혜일 따름이고 재물은 또 다른 욕구인가 보다.

서문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면사포를 넓게 펴고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 카르스트 봉우리가 불쑥 솟아있다. 건축물과 어울려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신랑신부에게 구미 당기는 모양이다. 크지 않은 마을인데 가옥이 300채에 이른다. 여느 집성촌과 달리 성씨 다른 종사가 많다. 장사하기 좋은 위치 때문에 앞다퉈 어울려 살았다. 거상으로 성장하고 일가를 이루자 마을 규모가 커졌다. 가문의 경계가 필요했다. 모두 7개의 쪽문을 세웠다. 마을이 7등분돼 있다고 보면 된다.

황야오고진 곽가대원의 원홍문. ⓒ최종명

황야오고진 곽가대원의 원홍문. ⓒ최종명

쪽문인 태평문이 있다. 안쪽은 곽가대원(郭家大院)이다. 청나라 도광제 시대에 7세손인 곽경장이 건축했다. 원적지인 광둥 지방의 고택을 그대로 모방했다. 동그란 원홍문(圆拱門)이 연이어 나타난다. 바깥에서 보니 원 안에 원이 있다. 태양문과 월량문이다. 해가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오는 문이다. 태양문과 월량문은 각각 65개와 64개의 벽돌로 쌓았다. 음양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쌓았다. 일월동휘(日月同輝), 해가 뜨거나 달이 뜨거나 언제나 함께 빛나라는 뜻이다. 출인두지(出人頭地)하라는 메시지도 담겼다. 문 밖에 나가 남보다 두각을 나타내라는 말이다.

황야오고진 곽씨종사. ⓒ최종명

황야오고진 곽씨종사. ⓒ최종명


황야오고진 오씨종사 ⓒ최종명

황야오고진 오씨종사 ⓒ최종명

저택을 지나면 종사가 나타난다. 분양 곽씨 시조를 비롯해 조상 신주가 배치돼 있다. 당나라 시대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헌한 곽자의와 8명의 아들 초상화도 걸렸다. 역사학과 고고학 등에서 탁월한 인물인 궈모뤄도 있다. 부근에 오씨(吳氏) 종사가 있다. 고씨(古氏), 임씨(林氏), 양씨(梁氏), 황씨(黄氏), 노씨(勞氏) 종사도 있다. 규모에 차이는 있어도 종사가 각각 보존돼 있다. 모두 일가를 이룬 집안이다. 천년고진에 사당이 여럿 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황야오고진의 연못과 카르스트 봉우리 진무산.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연못과 카르스트 봉우리 진무산. ⓒ최종명

연못이 나온다. 삼각형으로 솟은 진무산(真武山)이 멀리 보인다. 카르스트가 낳은 봉우리 반영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못이 있으니 정자도 있다. 봉우리와 구름, 파란 하늘까지 반영되면 한 폭의 산수화로 일품이다. 안주 놓고 술병 들면 신선이 따로 없다. 장수촌으로 알려져 있다. 복록(福祿)보다 어려운 일이 장수다. 백수 노인이 많은 마을이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99다. 99나 100이나 도달하기 쉽지 않은 나이다. 신비한 산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보석 같은 땅이니, 옛날부터 백수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야오고진의 우물, 선인고정.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우물, 선인고정. ⓒ최종명

동쪽에 에스(S) 자로 요강(姚江)이 흐른다. 풍부하고 맑은 물 덕분에 건강을 유지했다. 강변에 선인고정(仙人古井)이 있다. 다섯 칸으로 나눈 우물이다. 식수와 채소 씻는 우물이 각각 하나다. 나머지 셋은 빨래하는 우물이다. 용도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옷 씻는 우물은 하류, 먹는 물은 상류 쪽이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규칙이다. 물 흐름을 보면 변할 이유도 없다. 빨래터 우물에서 아주머니들이 재잘거린다. 소문이 퍼지는 근원지다. 항아리를 들고 와서 조용히 식수를 받아가는 할아버지도 있다.

황야오고진 호룡교와 흥녕묘. ⓒ최종명

황야오고진 호룡교와 흥녕묘. ⓒ최종명


황야오고진 흥녕묘의 진무대제. ⓒ최종명

황야오고진 흥녕묘의 진무대제. ⓒ최종명


속살까지 퇴색한 아날로그 감성

강변으로 나서니 사당이 하나 보인다. 열 발자국 정도로 짧은 호룡교(護籠橋)를 건넌다. 사당은 흥녕묘(興寧廟)다. 도교 신인 진무대제를 봉공하고 있다. 명나라 영락제가 황제를 찬탈하고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격화했다. 무당산에서 수련했다는 신화도 전해진다. 정상에 금전을 짓고 황제 자신의 얼굴과 닮은 진무대제를 세우고 봉공했다. 사방 천지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명산의 진무대제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편이다. 손으로 매만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니 인간미가 풍긴다. 화려하지 않고 매무새도 퇴색됐다. 검을 들고 탐관(貪官)을 베고(斬), 발로 오리(汚吏)를 짓누른다(鎭)는 대련이 불타는 듯하다. 소박한 인상이지만 백성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결코 약하지 않다. 탐관오리가 발붙이기 힘들어 보인다.

황야오고진의 요강.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요강. ⓒ최종명


화가가 황야오고진의 풍광을 화폭에 담고 있다. ⓒ최종명

화가가 황야오고진의 풍광을 화폭에 담고 있다. ⓒ최종명

마을을 가로지르는 요강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편이다. 도랑에 가깝다. 배를 타고 유람할 정도는 된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산보한다. 건축물을 화폭에 담는 사람이 있다. 캔버스에 물감이 번지니 서서히 고진 윤곽이 채색된다. 어디에 가서 무얼 그릴지 계획하고 자연과 인문의 정취를 그리는 일은 참으로 행복한 예술이다. 카메라와 달리 속살까지 덧칠하는 듯 보인다. 아날로그 감성이 부럽고도 그리운 세상이다. 마을 끝에 있는 동문루까지 걷는다.

강 위를 걷는 듯한 모양으로 설치된 석도교. ⓒ최종명

강 위를 걷는 듯한 모양으로 설치된 석도교. ⓒ최종명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언덕을 살짝 내려오니 강 위에 놓인 석도교(石跳橋)가 나타난다. 31개의 받침돌로 만들었다. 전체 길이는 19m다. 돌을 밟고 강을 건넌 후 다시 돌아온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하다. 마을에 크고 작은 다리가 모두 15개다. 대부분은 봉긋하고 평평하며 땅과 땅을 이어주고 있다. 물 위에 돌을 둔 다리는 없다. 청나라 가경제 시대인 1811년에 만들었다니 생각보다 연륜이 길다. 아래를 소나무로 고정해 보기보다 꽤 견고하다. 살짝 곡선으로 이어서 생김새도 정겹다.

황야오고진의 대룡교.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대룡교. ⓒ최종명


황야오고진 대룡교 우표 안내판 ⓒ최종명

황야오고진 대룡교 우표 안내판 ⓒ최종명


황야오고진 대룡교. ⓒ최종명

황야오고진 대룡교. ⓒ최종명

석도교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돌다리가 나타난다. 너비 3m인 대룡교(帶龍橋)다. 2016년 5월 19일 중국 고진 기념우표 여섯 장이 발행됐다. 그중 하나가 돌다리를 배경으로 한다. 다리 옆에 안내판이 있다. 소를 끌고 가는 어린이가 다리를 건너려는 모습과 주위 건축물을 담았다. 진무산도 보인다.

대룡교에는 재미난 비밀이 하나 있다. 다리 옆에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일부러 살피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평소에는 강물도 흐르지 않는다. 이런 다리를 한공교(旱拱橋)라 부른다. 홍수가 나면 범람을 방지하고 물길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위험을 분산하는 다리다. 꼭 필요한 다리인데 우표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황야오고진 용조용 나무. ⓒ최종명

황야오고진 용조용 나무. ⓒ최종명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자라고 있다. 850년 수령을 자랑하는 용조용(龍爪榕)이다. 아래로 축 늘어진 가지가 용 발톱처럼 생겼다는 나무다. 가지 일부가 이미 200년 전에 고사했다. 그런데 죽은 가지에 넝쿨이 옮겨와 푸른 빛깔을 띠며 자라나고 있다. 여전히 줄기는 푸릇푸릇하다. 생과 사를 모두 포용하고 공생하는 나무다. 신비로운 나무라 마을의 자랑이다.

황야오고진의 역공지고. ⓒ최종명

황야오고진의 역공지고. ⓒ최종명

나무 옆에 쪽문이 있다. 역공지고(亦孔之固)라 부른다. 강도를 방어하는 대문으로 사용했다. 한 사람이 지켜도 만 명을 막아내는 문이라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문 위에 감시용 창문도 있다. ‘구멍이 하나뿐이라도 공고하다’는 뜻이다. 역(亦) 자는 ‘~뿐이라도’라는 의미를 지녔다. 일(一)과 발음이 같다. 낱말 하나로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 공(孔)은 구멍이다. 마을을 지키려는 의지를 담은 작명이다. 이름만 들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을까.

황야오고진 견룡사의 용왕 부부. ⓒ최종명

황야오고진 견룡사의 용왕 부부. ⓒ최종명

호룡교와 대룡교 외에도 좌룡교, 쌍룡교, 쇄룡교도 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말이 있다. ‘산이 있으면 반드시 물이 있고 물이 있으면 반드시 다리’가 있다는 말이다. 다리 이름에 유난히 용이 많다. 물이 많으면 반드시 용왕도 있기 마련이다. 강 옆에 견룡사(見龍祠)가 있다. 불감이 매우 작다. 사당이라 하기에 너무 조그맣다. 용왕 부부가 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바람을 조절하고 비를 막아준다고 믿는다. 신이 반드시 웅장한 모습으로 등장할 필요는 없다. 믿을 수 있느냐가 존재의 이유다. 청나라 초기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당이다.

황야오고진 안락가 풍경.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가 풍경. ⓒ최종명

다시 안락가로 들어간다. 노란 벽에 마오쩌둥의 얼굴이 보인다. 고진에서 문화혁명의 흔적을 만나면 왠지 반갑다. 당시 색감은 아니고 ‘그때 그 자리’의 느낌으로 다시 그린 듯하다. 당시 건물일 테니 약간의 상상만 하면 그때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문화혁명도 가끔 관광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민들은 고통의 기억을 알고 있지만 지우지 않고 늘 새로이 복원하고 있다. 반성이며 경계인 지도 모를 일이다.

황야오고진 안락가의 그림과 글씨.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가의 그림과 글씨. ⓒ최종명

바로 옆에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바구니가 열리고 박쥐 세 마리가 날아오르는 벽화다. 박쥐를 편복(蝙蝠)이라 한다. 복(福)과 발음이 같으니 재물을 상징한다. 상인이 살던 마을엔 박쥐 문양이 많다.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으니 밥 굶을 걱정은 없을 듯하다. 평생토록 의기투합해 화목하게 살자는 백년호합(百年好合)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아야 행복하게 장수한다는 생각이다.

더우츠로 만든 라장 광고판. ⓒ최종명

더우츠로 만든 라장 광고판. ⓒ최종명

농가반(農家飯)이나 토채반(土菜飯) 간판이 많다. 토속 음식이 많아 옛 마을 보는 맛이 난다. 맛도 좋은 편이다. 가장 유명한 특산품은 더우츠(豆豉)다. 메주와 비슷하고 만드는 방법도 거의 똑같다. 양지바른 곳에 더우츠를 말리고 있다. 공깃돌 크기다.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검은콩을 사용한다. 제작 방법은 광시 무형문화재 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거리에 더우츠로 만든 라장(辣醬) 파는 광고판이 수두룩하다. 맛을 보니 짭짤하다.

황야오고진 안락사 야경.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 야경.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 야경. ⓒ최종명

황야오고진 안락사 야경. ⓒ최종명

안락사가 어둠을 안고 굳게 대문을 닫았다. 홍등의 조명이 거리를 밝게 비춘다. 골목을 오가던 소리는 사라지고 고요가 찾아온다. 낮에도 혼잡하지 않았고 밤이 오니 더욱 조용하다. 가끔 식당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만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다. 어둠 속에서도 하늘 저편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은근히 자태를 뽐내고 있다. 쉽사리 떠나지 않을 듯한 기세다.

거리를 천천히 거닐어본다. 계림산수 끝자락에 숨은 마을이다. 다정다감한 손길을 잡은 듯 마음이 따뜻하다. 숙소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봉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조명을 길동무 삼아 느긋느긋 걸음을 옮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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