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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생산·대량 유기, 강아지 잔혹사

입력
2023.03.09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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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언
한재언변호사

편집자주

반려견 '몽이'를 7년째 키우면서, 동물자유연대의 이사·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동물법을, 누구보다 쉽고 재밌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주말, 한 기자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전화가 왔다. "경기도에서 개 수백 마리가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번식장이나 펫숍에서 안 팔린 개들을 1만 원씩 받고 데려와서, 방치해서 굶겨 죽였대요." 현장 사진을 보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경찰 수사 결과, 사체가 1,200마리가 넘는다). 당초 이번 칼럼에서 개고기를 다루려고 했었지만, 한 번 더 반려동물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 매년 전국 2,000개가 넘는 번식장에서 개들이 생산되고, 경매장, 펫숍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팔리지 않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개는 위 사건처럼 학대당하며 죽거나, 고기로 소모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파양된 반려견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2017년, A업체는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A업체의 수익구조는 ①기존 소유자가 파양하는 반려견을 맡아주면서 파양비(평균 수백만 원)를 받고 ②파양견을 입양시키면서 책임비(수십만~수백만 원)를 받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인 수익구조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개 1마리를 관리하는 데에는 한 달에 최소 10만~2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업체 입장에서는 파양비로 수백만 원을 받더라도 개를 오래 데리고 있으면 적자가 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한테나 입양시키면 된다. 2021년 한 파양업체의 경우, 파양견을 김포 소재의 개농장으로 입양시켰고, 개농장주는 개를 죽도록 방치해 두었다(동물단체가 구조 과정에서 파양견의 동물등록칩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사실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이렇듯 파양업체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반려견을 파양해야 하는 견주들을 기망하고, 파양견을 무책임하게 처리하면서 이득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A업체는 숨겨진 수익모델도 가지고 있었다.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는 이름으로 홍보를 하면서 ③파양견을 입양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고 ④파양견을 미끼상품으로 두고, 품종견을 사와서 분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A업체의 전략은 유효하게 먹혔고, 그 결과 A업체는 현재 수십 개 지점을 가진 대규모 기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파양업체를 처벌할 수 없는가? 동물보호법상 '동물판매업'은 "반려동물을 구입하여 판매, 알선 또는 중개하는 영업"이다. 즉, 반려동물을 '구입'하여 판매하는 것이 동물판매업이므로, 파양견을 맡아주면서 오히려 파양비까지 받는 행위는 동물판매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동물보호법상 영업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규제할 방법이 거의 없다(다만, A업체는 ④와 같이 품종견을 구입하여 판매하고 있으므로, 동물판매업 신고는 되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동물보호소를 신고하게 하고, 신고된 보호소 외에는 보호소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하고, 보호소가 동물판매업을 못하도록 해야 하며, 영리 목적의 파양 및 입양 중개를 금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부터 시행 예정인 개정 동물보호법에는 동물보호소의 신고 제도만이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개정 동물보호법상 '사육포기동물 인수제'(소유자가 불가피하게 반려동물의 양육이 어려울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인수하는 제도)도 그 세부내용이 미정인 상황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동물을 취급·관리할 경우, 영리와 효율성이 최우선시되면서 동물의 생명권은 쉽게 무시된다. 매년 20만 마리 이상의 개가 생산되고, 10만 마리의 개가 유기되는 현재 반려동물 산업구조에서는 동물 학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 영국, 캐나다 또는 미국처럼 번식장의 동물 생산 수를 제한하거나 펫숍 자체를 금지하는 등 반려동물 산업 전반에 대한 대대적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하고, 이러한 근본적인 조치가 없는 한 신종 펫숍과 같은 편법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한재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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