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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조종사들, '네타냐후 총리 보이콧' 나선 이유는

입력
2023.03.11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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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계, 이곳] ⑥이스라엘 베르셰바
이스라엘군 최초의 공군기지 '하체림' 위치한 지역
1949년 이스라엘 영토 된 후에도 아랍계 저항 계속
이번엔 네타냐후의 '사법개혁' 저지 소용돌이 속으로
복무 거부·양심선언…"민주주의 보루 되려는 군인들"

2021년 6월 이스라엘 남부 도시 베르셰바 인근 하체림 공군기지에서 신규 조종사들이 졸업을 축하하며 모자를 던져 올리고 있다. 베르셰바=AP 연합뉴스

2021년 6월 이스라엘 남부 도시 베르셰바 인근 하체림 공군기지에서 신규 조종사들이 졸업을 축하하며 모자를 던져 올리고 있다. 베르셰바=AP 연합뉴스

이스라엘 남부의 하체림 공군기지. 네게브 사막의 중심도시인 베르셰바 외곽에 있는 기지다. F-15I 전투기를 운용하는 69비행대대, F-16I 조종사들로 이뤄진 107비행대대 등이 이 기지에서 근무한다.

이 공군기지에 갑자기 이스라엘 전역의 시선이 쏠렸다. 장거리 임무를 수행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편대인 69비행대대 40명의 예비역 전투기 조종사들 가운데 37명이 훈련을 보이콧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8일로 예정돼 있던 훈련을 거부하고 군 상층부와의 협상을 요구했다.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들은 훈련에 참가하는 대신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을 위한 담론과 사색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며 "기지로 가겠지만 훈련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 아닌 '사법 무력화'"… 군까지 반발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은 지난해 말 출범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의혹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996년 이래로 몇 번이나 총리를 지낸 그는 2021년 쫓겨났다가 부활해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정치생명을 이어가려고 이번에 내놓은 카드는 '사법제도 개편'이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집권 리쿠드당이 내놓은 법안 중에는 정부가 모든 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의회 과반수가 찬성하면 대법원 판결도 무효화할 수 있게 한 것 등이 들어 있다.

네타냐후를 구하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인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 4일 텔아비브 거리에 15만 명이 나왔고, 주요 도시들에서 수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극우파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은 시위대를 무정부주의자들이라 비난했으며 물대포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호황을 누려 온 하이테크 업계를 비롯해 사회 전 분야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달 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예비군들이 도로를 막고 국기를 흔들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른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지난달 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예비군들이 도로를 막고 국기를 흔들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른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군의 움직임이다. 몇 주 새 거의 모든 부대의 예비역들이 복무 보이콧을 예고했다. 최정예 8200부대 예비군의 공동서한에는 5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육군 참모총장도 총리에게 "군의 작전 능력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곧이어 하체림 기지의 보이콧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군대의 핵심 구성원으로, 정기적으로 전투 작전에 참여한다. 전시엔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공군의 경우 평시에도 1년에 60일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전직 공군 참모총장 10명은 조종사들의 항의가 거세자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 위기를 끝내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윽박지르기로 일관했다. 1967년 자신의 군인 신분증 흑백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소집 통지서가 오면 우리는 항상 출동한다"고 적었다. 총리 아들 야이르 네타냐후는 트위터에 "예비군 복무 거부는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 행위"라며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렸다. 조종사들은 총리 전용기를 모는 것도 거부했고, 이탈리아를 방문할 네타냐후 부부를 실어나르기 위해 국영 항공사 엘알이 대체 승무원을 찾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스라엘 시민들이 지난달 20일 예루살렘의 의회 밖에서 '사법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 시민들이 지난달 20일 예루살렘의 의회 밖에서 '사법제도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유대인·아랍계 주민 갈등의 역사… 또 정치적 소용돌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의 무대가 된 하체림 기지는 1966년부터 가동된 곳이다. 과거 팔레스타인 일대를 점령통치한 영국군이 아닌 이스라엘군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공군기지다. 하체림을 이야기하려면 베르셰바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남부의 중심지이고 이스라엘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성경에 나오는 브엘세바('서약의 우물')가 이곳이다. 6,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나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커진 것은 후대의 일이다. 유목민인 베두인들이 물을 공급받고 교역을 하던 곳에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절이던 20세기 초 지금의 도시가 생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1,000명 정도가 살았고 주민 대부분은 무슬림 유목민인 베두인이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베르셰바를 지나는 군사철도까지 깔았지만 패전하면서 1917년 영국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이때 벌어진 '베르셰바 전투'는 영국군이 승리한 마지막 기병전이었다고들 한다. 이 전투는 영국군이 오스만 제국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계기가 됐다.


베르셰바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베르셰바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자면서 베르셰바를 아랍국가의 영토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이스라엘군이 이곳을 점령했고, 1949년 베르셰바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영토가 됐다. 1945년에는 주민 5,600명 가운데 대다수가 아랍계 무슬림이었는데 이내 유대인 이민 물결이 밀려들었다. 1946년 도시 외곽에 유대인 집단거주지인 하체림 키부츠가 세워진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키부츠 주민들은 아랍계를 겨눈 폭력에 열심이던 하가나 민병대의 멤버들이기도 했다.

아랍국들에서 모여든 미즈라히 유대인, 유럽에서 온 세파르디 유대인, 인도에서 온 '베네 이스라엘'과 코친 유대인 등등이 도시를 차지하면서 인구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 이후 제2, 제3의 이민 물결이 일어나 옛소련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에티오피아의 유대인인 '베타 이스라엘' 이민자들도 유입됐다. 현재 인구는 20만 명이 조금 넘는데 아랍계는 3%도 안 된다.


조종사들이 '보이콧' 나선 진짜 이유는

지금의 베르셰바는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다. 그러나 고층빌딩들이 들어서고 첨단기술산업 도시가 됐어도 아랍계의 저항이 끝나지는 않았다. 2004년과 2005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폭탄 테러가 연달아 일어났고, 200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계속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때에도 하마스의 로켓공격을 받았다.

하체림 기지의 한 조종사는 보이콧에 대해 "독재정권에 복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에 말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온전히 도덕적인 명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과 국제인권기구들은 물론, 이스라엘의 인권단체들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저지르는 범죄행위들을 고발해 왔다. 이스라엘은 '자체 조사'로 윤리적 책임을 피해 가고 있지만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늘 따른다.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 쿠데타'로 법원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이스라엘의 자체 조사에 대한 비난이 더 커질 것이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ICC 협정에 서명하길 거부하고, 그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기소를 피해 왔지만 말이다. 군인들은 이를 우려한다고 영국 BBC방송은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고위층이 네타냐후 정부에 '안보 우려'를 전한 데에는 당장의 보이콧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 우파의 상징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AFP 연합뉴스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 우파의 상징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AFP 연합뉴스

그렇다고 보이콧의 의미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이번처럼 항의의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과거 가자지구 공격이나 레바논 전쟁 등에 항의하며 예비역들이 복무 거부를 선언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러 온 이스라엘 군인들의 양심선언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BtS'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침묵을 깬다(Breaking the Silence)'는 이름의 사회단체다. 히브리어로는 쇼브림 슈티카, 아랍어로는 카스르 앗삼트. 2004년에 전역 군인들이 만든 조직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집을 약탈하고, 검문 과정에서 괴롭히는 등 점령지에서 군인들이 벌이는 악행을 폭로하는 것이 이 단체의 일이다. 2015년 네타냐후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이 단체를 대놓고 비난했고, 교육부는 이 단체 회원이 공립학교에서 강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익명으로 된 증언들의 출처를 공개하라는 소송도 제기됐으나 법원은 다행히 BtS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이 군의 도덕성을 높이고 있다"며 옹호한 장성들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단체들, 해외의 유대인 단체들, 유럽의 각국 정부들, 옥스팜 같은 국제기구들이 이 단체의 재정을 지원한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지금도 "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으며 이제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영구 점령을 끝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한 군인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와 있다.

하체림의 조종사들이 현대 이스라엘 역사의 축소판인 베르셰바의 과거를 의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려는 군인들, 증언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료들이 그나마 이스라엘을 지탱해 주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양심의 소리를 정권유지용 법안 따위로 짓누를 수는 없는 법이다.

러시아에도 BtS가 있으면 좋을 텐데.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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