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향기롭고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고양이마저 유혹하는 다래

입력
2023.01.30 04:00
20면
0 0

한반도 전역에 사는 키위 혈통, 다래
'다래 형제' 개다래는 고양이 사랑받아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다래는 한반도 전역에 사는 덩굴나무다. 봄에 나오는 새잎을 ‘다래순’이라고 하며 묵나물로 먹는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다래는 한반도 전역에 사는 덩굴나무다. 봄에 나오는 새잎을 ‘다래순’이라고 하며 묵나물로 먹는다. 이하 사진은 허태임 작가 제공

연휴 때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에서 묵나물 뭉치가 나왔다. 고사리는 알겠고 다른 하나는 뭔지 분간이 안 가서 서너 시간 물에 불렸다. 펼쳐진 잎을 보니 다래순이다. 새순을 따는 것도 일이지만 다래순은 삶은 잎을 한 장 한 장 반듯하게 펴서 말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그걸 네가 어찌 아냐며 기특해하는 눈치다. 삶아서 물기 꼭 짜고 들기름과 간장만 넣고 볶아서 다가오는 정월 보름에 먹으라고 당부한다. 취나물은 특유의 향이 센 편인데 다래순은 순하고 부드럽다. 고사리는 육질이 강한데 다래순은 육질과 섬유질이 반반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은 것을 나는 그 나물의 가장 큰 매력으로 본다.

다래는 억센 덩굴나무다. 겨울에는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봄이 오면 줄줄 연결된 줄기에서 새순을 톡톡 밀어낸다. 곡우 즈음이 다래순 따기 좋은 시기다. 나물로만 좋던가. 다래는 고로쇠나무 못지않게 수액도 좋다.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서 정복하는 힘은 또 얼마나 세었는지. 무엇보다 열매가 일품이다. 얼마나 달면 이름도 달다는 뜻의 다래가 되었을까. 열매로 술을 담그거나 잼을 만들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이게 토종 키위라며 깊은 산에서 따 온 다래를 손으로 닦아서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다래의 꽃과 열매. 매화를 닮은 꽃이 피고 꽃밥은 검은색이다. 달콤한 열매는 일명 토종 키위로 불린다.

다래의 꽃과 열매. 매화를 닮은 꽃이 피고 꽃밥은 검은색이다. 달콤한 열매는 일명 토종 키위로 불린다.

우리가 사 먹는 키위의 원종은 중국에 있다. 1904년 뉴질랜드 선교사가 후베이성 이창에서 중국다래 씨앗을 채집해 가져 가서 개량한 게 키위다. 처음에는 ‘차이니즈구즈베리’라고 부르다가 외국으로 수출하게 되면서 뉴질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키위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열매가 새의 알을 닮았고 열매 표면의 보송보송한 털이 키위새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다래는 한반도 전역에 정말 많이 산다. 식물 조사하러 산에 들어가 보면 다래가 없는 숲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키위와 같은 혈통이라서 그 비슷한 맛이 나고 열매 모양도 키위를 빼닮았다. 형제 식물인 개다래와 쥐다래도 한반도 전역에 산다.

개다래는 약성이 있기 때문에 열매가 좀 쓴 편이다. 단백질, 유기산, 비타민 A와 C와 P 등의 성분도 지녔다. 개다래는 꽃이 참 예쁘다. 매화를 닮았다. 그런데 정작 꽃이 피어도 잎에 가려서 잘 안 보인다. 그래서 개다래는 개화기에 꽃 주변의 잎 일부를 페인트 칠한 것처럼 하얗게 바꾼다. 곤충에게 알리려고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여기 꽃이 있으니 오라는 것이다. 다가가면 향기가 곤충을 꽃의 내부로 안내한다. 그러다가 열매가 맺힐 무렵에 잎은 초록을 되찾는다. 달콤한 다래가 달릴 자리에 더러 해괴한 덩어리가 생기기도 한다. 곤충이 알을 낳거나 기생하여 생긴 덩어리, 충영(蟲癭)이다.

개다래 꽃과 열매. 매화를 닮은 개다래 꽃은 달콤한 향기도 지녔다. 도토리를 닮은 열매. 다래만큼 달지는 않지만 약효가 있다.

개다래 꽃과 열매. 매화를 닮은 개다래 꽃은 달콤한 향기도 지녔다. 도토리를 닮은 열매. 다래만큼 달지는 않지만 약효가 있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개다래를 더 좋아한다. 아니, 격하게 반응한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식물로 캣닢(개박하)이 유명하지만 효능은 개다래가 더 좋다. 개다래를 만나면 고양이는 다가가서 비비고 핥고 침을 흘린다. 개다래 몸에 있는 네페탈락톨이라고 하는 신비한 성분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는 그 성분이 모기를 비롯한 여러 감염병으로부터 고양이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고양이가 개다래에 반응하는 건 아니라고 더 최근 연구는 말한다. 개다래뿐만 아니라 네페탈락톨이 든 다른 식물을 동시에 고양이 앞에 놓아보면 저마다 취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쥐다래는 서양의 정원에서 사랑받는 식물이다. 정원사들은 혹한을 견디는 쥐다래의 내한성을 특히 높이 평가한다. 쥐다래는 잎이 하얗게도 바뀌고 분홍색으로도 바뀐다. 매화를 닮은 하얀 꽃이 향기를 풍기고, 분홍색 하트 모양의 잎이 눈길을 사로잡고, 새콤달콤한 열매가 맛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니 정원에 들이기에 딱 좋다. 그래서 영국의 식물분류학자 찰스 마리스는 일찍이 1878년에 일본 삿포로에서 채집한 쥐다래를 고국으로 가져갔다. 그 이후 쥐다래의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어 전 세계 정원으로 번졌다.

쥐다래. 꽃이 필 무렵 잎은 하얀색과 분홍색으로 바뀐다. 알록달록한 모습이 인상적이라 서양에서 정원식물로 사랑받는다. 오른쪽 사진은 쥐다래의 꽃이다. 순백색의 꽃이 초여름에 핀다.

쥐다래. 꽃이 필 무렵 잎은 하얀색과 분홍색으로 바뀐다. 알록달록한 모습이 인상적이라 서양에서 정원식물로 사랑받는다. 오른쪽 사진은 쥐다래의 꽃이다. 순백색의 꽃이 초여름에 핀다.

우리나라 남서해안 섬 지역과 제주도에는 섬다래가 드물게도 산다. 그보다 더 남쪽에 넓게 사는 남방 식물이다. 서해의 먼 섬 가거도에서 섬다래를 처음 보고는 키위를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섬다래로 새로운 토종 키위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국내에서 다래를 재배하는 규모는 약 30ha 정도로 다른 작물에 비하면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전 세계 다래 시장이 계속해서 커지는 만큼 국내 재배 농가도 늘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실제로 우리 땅에 자라는 다래로 신품종 키위를 개발하는 연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청가람, 새한, 해연, 달애별… 얼마 전에 나온 우리 다래 품종의 이름에 유독 눈길이 간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허태임의 초록목록

허태임의 초록목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