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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의 기적처럼···서울시향의 '판즈베던 사운드'를 기대한다

입력
2023.01.25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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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야프 판즈베던(가운데) 서울시립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이 12일 서울시향의 정기 연주회를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야프 판즈베던(가운데) 서울시립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이 12일 서울시향의 정기 연주회를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얼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차기 음악감독 야프 판즈베던의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임기는 2024년부터 시작되지만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게 된 오스모 벤스케 전 감독의 12일, 13일 정기 연주회 지휘를 대신 맡게 되면서 미리 인사하게 된 것이다. 첫 공연에 대한 언론과 애호가들의 관심이 뜨거웠고 간담회에서도 매우 구체적 질문이 쏟아졌다. 음악감독 변화에 이렇게 많은 관심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

어느 분야든 한 단체의 수장은 누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끄는가에 따라 조직의 문화와 위상을 바꿔 놓는다. 내부의 에너지, 정치, 정신이 바뀌고 같은 인원을 갖고도 능력치가 달라진다. 지휘자는 대개 연주자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바흐, 하이든, 멘델스존, 말러, 슈트라우스, 번스타인, 살로넨, 불레즈처럼 지휘자가 작곡가인 경우도 있지만 뛰어난 창작자가 현실적 리더를 겸업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필드에서 뛴 경험 많은 사람이 좋은 코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탄탄한 연주 경험을 갖춘 이가 좋은 지휘자가 되기에 훨씬 유리하다.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는 지휘봉을 막 잡게 됐던 시점에 이런 말을 했다. “첼로를 연주할 땐 내 악기 연주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지휘자는 혼자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기 악기인 오케스트라를 만나야만 하죠. 지휘자는 리허설 때부터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고 자신을 보여줘야 하는데 금세 바닥이 보이면 누군가를 이끌 수가 없어요. 엄밀히 말해 지휘자가 마주해야 하는 대상은 청중이 아니라 단원들이에요. 과한 표현을 빌리자면 늑대는 피 냄새를 맡고 공격한다는데, 내가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돼 있지 않으면 팀을 이끌 수가 없어요.”

수장은 곧 그 악단의 이름이 된다. 로저 노링턴이 슈투트가르트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을 때에는 ‘슈투트가르트 사운드’라는 별칭이 만들어질 정도로 노링턴의 색채가 독보적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야말로 뉴욕 필하모닉의 얼굴이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가치는 지휘자가 떠난 후에 드러난다. 대통령이 수차례 바뀌어도 나라가 성장한다면 그 나라는 국민이 잘하는 것이다. 지휘자가 바뀌어도 오케스트라의 위상이 유지된다면 오케스트라 내부가 탄탄하다는 말이다. 지금의 뉴욕 필하모닉은 미국 오케스트라인 만큼 더 많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번스타인이 떠난 후 챔피언 자리를 내줬다. 이후 번스타인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겨 단원들의 심드렁한 머리와 딱딱한 가슴에 구스타프 말러가 얼마나 위대한 작곡가인지 일깨웠고 불을 지르고 열정을 태워 결국 말러가 현재의 위상을 갖게 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했다.

역대 음악감독들의 리더십은 음악적 결과물인 음반(영상)과 평전으로 좀더 자세하게 엿볼 수 있다. 지난 연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박스 앨범을 들었다. 1981년부터 2012년까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끈 30년간의 기록이었다. 어떤 작품에서든 ‘새로운 해석’을 고민하던 그의 도전 정신은 ‘원전연주’(당대 악기와 주법으로 작품을 연주하는 방식)라는, 서양음악 해석의 흐름을 뒤집어 놓는 혁명을 만들어냈다. 아르농쿠르가 얼마나 많은 시간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며 음악에서의 ‘낯설게 하기’를 위해 애썼는지, 영원히 안주하지 않았던 청년의 정신에 새삼 또 감동하게 됐다.

음악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지휘자 평전들. '지휘자가 사랑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왼쪽부터) '아바도 평전' '마리스 얀손스 평전'.

음악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지휘자 평전들. '지휘자가 사랑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왼쪽부터) '아바도 평전' '마리스 얀손스 평전'.

다 같은 작품이지만 지휘자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음악이 만들어지는지, 한때 손에서 놓지 않았던 명반들이 있다. 존 엘리엇 가디너의 바흐 종교음악 작품집(오라토리오, 수난곡, 미사곡),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멘델스존 교향곡 전집, 마리스 얀손스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 번스타인의 말러 교향곡 전집 등은 과몰입했던 음반들이다. 지휘자 평전도 음악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좋은 출판사와 번역가들이 애써 준 '지휘자가 사랑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포노 발행) '아바도 평전'(풍월당 발행) '마리스 얀손스 평전'(풍월당 발행)은 음악은 물론 사람 자체의 매력과 품격, 리더십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지, 무엇을 바꿔 놓았는지 알려 준다.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내면의 전쟁은 이들의 음악은 물론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네덜란드 출신의 판즈베던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과 막역한 사이다. 서울시향을 맡게 됐다는 말에 히딩크 감독은 홍보대사가 돼 주겠다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자부심이 되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때의 기억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간 무섭게 성장하고 성숙해 온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또 다른 좋은 기억을 덧씌워 주기를 소망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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