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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공동체 삶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상실에서 회복으로-100명에게 물었다]

입력
2023.01.16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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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회복할 길은 무엇인가···오피니언 리더 설문조사

편집자주

한국 사회가 3년의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이들의 성찰과 제언을 통해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길을 찾아봅니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대립과 갈등, 경제난, 전쟁과 관련한 우울한 소식뿐. 목표도, 좌표도 혼란한 사이 온라인 공간은 정치 진영·성별·세대별로 갈려 혐오와 조롱, 적대감으로 들끓고 오프라인에선 얼굴을 가린 채 각자도생에 몰두하는 게 우리 시대의 서늘한 자화상이다.

한국일보는 우리 사회의 방향 감각을 찾기 위해 연말과 연초에 걸쳐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물었다. 지난 3년간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길은 무엇인지. 설문 대상자는 각계 전문가, 일간지 칼럼리스트, 한국출판문화상ㆍ한국일보문학상 등 심사위원, 뉴스이용자위원회 위원 등에서 추렸다. 어쩌면 추상적이고 모호한 질문이었지만 놀랍게도 응답자 거의 모두에겐 공통의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표현과 강조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것은 대면 소통과 교류의 단절로 인해 함께 하는 삶, 함께 하는 즐거움이 근원적으로 사라지거나 부서지고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공동체 와해….삶의 토대 무너지는 위기감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바로 ‘공동체’였다. 공동체 의식·가치가 약화되거나 이를 잃었다는 응답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공동체의식의 다른 표현인 ‘연대’의 실종이나 약화를 거론한 이도 11명이었다. '함께 하는 삶'(4명) 등 이런저런 비슷한 맥락의 표현을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치들이 여럿 있건만, 한두 가지 요소가 아니라 공동체 그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나온, 다급하면서도 직접적인 응답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살벌한 경쟁, 개인과 집단 차원의 이기주의, 능력주의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지쳐 있다. 서로 만나서 부대끼고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런 추세에서 공동체의 와해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김선지 작가)는 언급처럼 전면적인 위기감의 발로다.

소설가인 전성태 순천대 교수도 “더불어 사는 삶을 잃어버렸다”며 “팬데믹은 인류가 문명 발전을 지향하며 맹신해온 모든 면에 대해 경고를 받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소수자에 대한 공감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한 곽민해 커뮤니케이션즈 매니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공동체 그 자체인지 모른다”고 했다. “좋든 싫든 사회구성원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서로가 지탱하고 있는데, 이런 감각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효인 시인의 진단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계층과 세대를 떠나 우리가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 같아요. 연대의 실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연대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 사정에 시선을 맞추는 데서 가능할 텐데, 이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는 삶의 기본적인 원천과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경고음에 가깝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발달하더라도 개인이 공동체, 좁히면 타인의 존재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까닭이다. “팬데믹이란 초유의 사태에 의해 조직, 공동체, 국가, 인류 공동체의 삶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생생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속한 대학 사회도 비대면 수업, 새로운 평가 방식 등이 마련돼 이에 적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죠. 현대사에 많은 굴곡이 있었으나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삶이 근원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운 경험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고리와 매듭, 뿌리째 흔들

공동체 와해의 위기감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들이 뿌리째 흔들리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응답과 맞물려 있다. 이번 설문에서 '공동체의식'과 '연대'만큼이나 많이 언급된 단어가 ‘신뢰’(11명) ‘공감’(9명) ‘소통'(6명)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 없이 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리 없다.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을 지낸 이성현 박사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코로나 초기를 떠올려 보세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나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사람으로 변했어요. 사람들이 만나지 않으면서 소통이 더 어려워졌고. 결국 사회적 분열이 더욱 심화됐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살피는 공감능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응답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단절과 고립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 서 보려는 마음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토양이 무너지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포용, 관용, 환대 등 인간관계의 소중한 덕목들 또한 썰물처럼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번 설문에선 이런 개별 가치들보다 더 근본적인 토대에 대한 응답이 많았는데, 이 역시 위기감의 정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매우 추상적 표현인 ‘관계’(7명)나 '연결'(3명)의 상실을 거론한 응답이 꽤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경시하는 차원을 떠나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있고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지고 있다는 것으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뿌리 깊은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음울한 진단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모든 고리와 매듭이 흔들리는 초유의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근원적 상실을 우려하는 이런 응답처럼.

“관계가 단절된 사회가 가속화되는 느낌입니다. 함께 하는 삶의 패턴이 파괴되고 있는 것 같아요.”(홍헌표 캔서앤서 발행인) “인간살이의 기초와 기본이 되는 가치관을 잃어버렸어요”(이정록 동시인) “관계에서 오는 소중함을 잃었습니다. 친구 관계가 됐든, 직장동료 관계가 됐든 이게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여겨져 왔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줬던 거죠. 하지만 이제 그런 관계가 사라져 모든 걸 혼자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팬데믹을 계기로 아픈 분들이 많아졌다고 들었는데, 그 결과가 아닐까요.” (이경재 문학평론가)

이근아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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