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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당선작] '혼자 계단을 오르면'

입력
2023.01.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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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 강영란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오늘은 어떻게 하지?’

돌봄 교실에서 나와 터덜터덜 걸었다. 벌써 우리 집이 있는 5층 연립 주택 앞이다.

화단에는 키 작은 단풍나무가 머리부터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멘 가방을 풀고 화단에 걸터앉았다.

“휴우.”

집에 가려면 3층까지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나는 그게 무섭고 싫었다.

창은 먼지가 내려앉아 뿌옇고 복도 등은 수시로 고장 났다. 항상 나를 마중 나오던 할머니는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지금 병원에 계셨다. 계단에 사는 새가 할머니 발등을 쪼았을 게 분명했다.

두 팔에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나는 늘어뜨린 다리를 끌어올려 감싸 안았다.

번쩍, 가로등 불이 켜졌다. 한여름에는 여덟 시에도 환했지만, 지금은 여섯 시만 지나도 어두웠다.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실까?

나는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것처럼 속삭였다.

“할머니, 할머니가 병원에 간 뒤 주먹만 한 새가 나타났어. 처음엔 아주 작았는데 이젠 창문을 덮을 만큼 커졌어. 나 혼자 계단을 오르면…… 그 새가 더 커질 거야. 할머니 저길 봐. 저기, 저 창문 앞에서 검은 새가 날 기다리고 있어.”

2층과 3층 사이에 있는 창문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자가 날개를 들어 퍼드덕거리자 바람이 훅 일었다. 유리창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단풍잎이 바람에 파르르 나부꼈다.

“수정아,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하니?”

“아……안녕하세요?”

정화네 엄마가 알은체했다. 정화는 옆 건물에 사는 같은 반 친구다.

“날도 어두워지고 바람도 찬데, 얼른 집에 가야지.”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침에는 괜찮다가, 해가 지면 어두운 동굴이 된다고, 오늘처럼 바람이 불면 계단에 사는 작은 새가 더 커진다고 솔직히 말할까?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럴 순 없었다. ‘수정이는 겁쟁이’라고 수다쟁이 정화가 학교에 소문을 낼 게 뻔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세워둔 가방을 쭈뼛쭈뼛 들었다. 그새 고양이는 앞발을 내밀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한쪽 눈 주위가 검고, 갈색과 흰색이 골고루 섞인 삼색 고양이였다.

“야옹. 야아옹.”

고양이가 공동 현관 앞으로 이동해 어슬렁거렸다.

“들어가고 싶은 거야?”

내가 문 앞에 다가서자 공동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내 발끝에서 시작한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야옹, 야아옹.”

고양이는 앞발로 문을 톡톡 두드렸다.

고양이라면 계단에 사는 커다란 새를 쫓아낼 수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띡…… 띡… 띡… 띡.”

문이 열리자 고양이가 꼬리를 한껏 올리고 걸어갔다. ‘내가 앞장설 테니 너는 따라만 오면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이때다 싶어 고양이를 뒤쫓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양이는 계단 밑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같이 간다는 거 아니었어?”

고양이는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 듯 딴청을 피웠다.

어떻게 하지? 다시 나갈까?

고양이가 앞발에 침을 묻혀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우리 집까지 함께 가자고 말할까?

“야옹, 야아옹.”

털을 정리하다 말고 고양이가 나를 보고 울었다.

“칫,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라는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에게 인사하고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가 있으니 약간, 아주 약간 용기가 생겼다. 나를 기다리는 새가 고양이를 보고 겁을 먹어 조금 작아졌을 것만 같았다.

나는 1층에서 2층으로 뛰어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숨이 차올랐다. 2층을 두어 칸 남겨두고 층계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골랐다.

그때 창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1층에 고양이가 또 있나? 친구가 있는 고양이라면 계단에 커다란 새가 살아도 무섭진 않을 거다. 고양이가 부러웠다.

“으앙, 으앙, 으아앙.”

“고양이가 아니라, 아기잖아?”

무슨 일인지 아기가 있는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펴 소리 나는 곳이 어딘지 확인했다. 202호였다.

지난 봄, 엄마와 함께 할머니 병문안을 가려고 집을 나온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은기랑 나들이 가시나 봐요.”

엄마가 아랫집 아주머니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202호 아주머니는 아기를 안고 문단속을 했다.

“네, 바람이 따뜻해서 잠시 나갔다 오려고요.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아주머니가 아기 띠를 고쳐매며 물었다.

“병원에 한참 더 계셔야 된다네요. 그나저나 은기 엄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덕분에 한결 좋아지셨어요.”

할머니가 다쳤을 때, 은기 엄마가 할머니를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엄마는 여러 번 말했다.

“어쩜, 우리 은기 많이 컸다. 많이 컸어. 엄마랑 나들이도 가고.”

엄마가 은기 눈을 맞추고 얼렀다. 그런데 은기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으아앙’하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야단친 것도 아니고, 친절하게 말을 걸었을 뿐인데, 은기가 울어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고, 내가 괜히 아기를 울렸네요.”

엄마도 당황했는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좀 컸다고 낯을 가려요. 며칠 전 이모가 왔을 때도 어찌나 울던지…….”

은기 엄마가 아기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은기, 괜찮다, 엄마 여기 있다.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은기 울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으앙, 으앙, 으아앙, 으아앙.”

은기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202호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기 울음소리 외에 다른 기척은 없었다.

은기가 집에 혼자 있나? 집에서는 계단에 사는 새를 볼 수 없을 텐데. 내가 우당탕거리며 층층 계단을 뛰어올라 무서웠나?

혼자 집에 있을 땐 계단 오르는 소리에 나도 덜컥 겁이 났다. 그러면 얼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언제 와?”

“조금 있으면 마치니깐, 오래 통화 못 해. 무슨 일이니?”

“…… 아니, 언제 오는지 궁금해서…….”

“수정아, 손님 오셨다. 엄마가 나갈 때 전화할게. 알겠지?”

잠깐 엄마와 통화하고 나면 뚜벅뚜벅 울리던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낯선 발걸음이 벽을 통과해 스르르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오싹한 느낌도 사라졌다. 엄마가 전화하지 않아도 한동안은 괜찮았다.

“은기는 아기라, 엄마한테 전화를 못 하는데…….”

울고 있는 은기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를 겁주려는 게 아니라, 위층에 사는 누나가 계단을 좀 시끄럽게 오른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검은 새가 점점 옅어지더니 희미해졌다.

나는 202호 초인종을 눌렀다. 벨 소리 대신 은기 울음소리만 커졌다. 다시 서너 번 더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그때 벽에 붙여놓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초인종이 고장 났습니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문을 살짝 두드려주세요.’

나는 현관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

“우쭈쭈, 우리 은기, 일어났어요? 엄마 화장실 갔다 오느라 늦었네. 어디 보자, 배가 고픈가? 기저귀가 젖었나? …….”

안에서 은기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은기가 울음을 멈추었다. 다행이었다.

‘휴우, 은기는 좋겠다. 엄마가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202호를 뒤로 하고 층계를 올랐다. 이번에는 뛰는 대신 조심조심 걸었다. 우당탕거리며 시끄럽게 뛰어 은기를 또 울리고 싶지 않았다. 한 층만 더 오르면 바로 집이니깐, 얼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한 칸, 두 칸, 세 칸. 나는 창을 빤히 쳐다보며, 한 칸씩 올랐다.

2층에서 3층 사이,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휘익 불어 들어왔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사라진 줄 알았던 새가 어둠을 먹고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가방끈을 양손으로 꼭 붙잡았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심장이 ‘쿵쿵’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새가 날개를 접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복도 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불이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새의 눈동자가 더 또렷해졌다. 내 발은 저절로 빨라졌다. 아무리 은기를 생각해도 소용없었다.

창문 옆을 지날 때는 머리털이 솟아올랐다. 창문에 앉은 새가 날개를 퍼드덕퍼드덕 대며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고양이야, 나 좀 도와줘. 저 괴물 좀 어떻게 해 봐.’

나는 마음속으로 고양이를 여러 번 불렀다. 계단 아래 있던 고양이가 점점 커져 잽싸게 내게 뛰어오기를 바랐다. 커다란 새와 용감하게 싸워 새를 창문 밖으로 쫓아내길 바랐다. 검은 새를 무찌른 후 내 옆에서 함께 걷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발보다 머리와 몸이 앞섰다. 이제 창은 내 등 뒤에 있었다. 불빛이 깜빡였다. 검은 그림자가 계단 위에서 출렁거렸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지날 때마다 그 모양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으, 으악!”

나도 모르게 짧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제 손을 앞으로 뻗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르고 있었다.

“철컹!”

“아악!”

나는 고함을 지르며 우뚝 멈춰 섰다. 갑자기 우리 집 대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우리 수정이 뭐이 그리 무섭누?”

“하……할머니.”

할머니가 문에 몸을 기대고 힘겹게 서 계셨다. 나는 마지막 남은 층계를 두어 칸 뛰어올라 할머니를 와락 안았다. 할머니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할머니 언제 퇴원했어? 할머니가 없어서 얼마나 무서웠다고……. 할머니 발등을 쪼았던 주먹만 한 새가 엄청나게 커졌단 말이야. 혼자 계단을 오르면 나를 막 쫓아다녀.”

나는 할머니 몸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새가 어딨다고 그러누?”

할머니 품에서 얼굴을 떼고 올라왔던 층계참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창문을 흔들던 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저기 창문 위에 있었던데…….”

나는 창을 바라보고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할미가 와서 그놈의 새가 도망갔나 보구나. 그런데……, 그렇게 계단이 무서운데 어떻게 올라 왔누?”

할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엄마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려고 했거든. 근데 고양이가 문 열어달라고 해서, 내가 열어줬어.”

할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2층에 사는 아기는 무지하게 잘 울어. 낯선 사람을 만나도 울고, 내가 계단을 우당탕 뛰어도 울어. 겁쟁이인가 봐.”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며 내가 말했다.

“그래? 그 고양이랑 아기가 우리 수정이랑 똑 닮았구나. 겁도 많고, 할미가 마중 나가야 들어올 수 있고 말이야.”

할머니가 뒤를 돌아 한쪽 팔로 내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할머니, 고양이랑 아기랑 닮기는커녕 난 이제 고양이도 돌봐줄 수 있고, 은기도 달래줄 수 있는걸요.”

난 할머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이고, 그래? 우리 수정이 다 컸네. 고양이랑 아기도 도울 줄 알고.”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로 환한 물결이 일렁였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웃었다. 집 안은 환하고 따뜻했다.


강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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