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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노숙인이 다시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누군가의 관심”

입력
2022.12.27 04:30
수정
2022.12.27 10:3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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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③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끝>
자활 노숙인 3인 인터뷰로 만났다
"노숙인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어"
"단 한잔의 술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
"빚지고 삶의 희망 놓았지만··· 달라져"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노숙인 문제를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취약 계층의 현실을 더 돌아보는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자활을 준비 중인 노숙인 배연호씨가 14일 서울 중구 서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앞에 서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자활을 준비 중인 노숙인 배연호씨가 14일 서울 중구 서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앞에 서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두 차례의 노숙으로 거리에서 보낸 시간만 10년 이상이었다. 자신을 지속적으로 격려해준 한 지인의 도움으로 일어설 힘을 얻은 배연호(55)씨는 이제 '후배 노숙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책임감이 생긴 것이다. 술에 기댔던 삶도 떨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은 '누군가 날 보고 있구나' 이런 마음만 생겨도 열심히 하게 된다"며 소외된 계층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도 요청했다.

8,956명. 지난해 기준 전국 노숙인(시설 노숙인 포함·보건복지부)의 숫자다. 거리 노숙인과 처음 맞닥뜨리면 놀라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물'을 보듯 무감해지기도 한다. 그 모습이 평범한 풍경이 되어버리는 건, 지켜봐 주고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자활복지개발원, 서울시립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서울과 대전, 강원에 사는 3명의 자활 노숙인을 만났다. 자활을 준비 중이거나 더 이상 노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노숙인이 다시 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이나 정책을 묻자 세 사람의 답은 같았다. 바로 '관심'이다. 사회의 끊임없는 관심이 결국 노숙인이 일상을 되찾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경험담이다.

①배연호씨, 10년의 노숙을 뒤로하고

재활 노숙인 배연호씨가 14일 서울 중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인근에서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재활 노숙인 배연호씨가 14일 서울 중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인근에서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배씨는 한 번도 하기 힘든 노숙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2000년에 처음 노숙을 시작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종로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차리며 일상을 찾았다. 배씨는 "장사는 잘됐으나 술 문제로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17년 봄, 술에 파묻혀 다시 노숙 생활로 돌아간 그는 음주로 당뇨와 고혈압이 생기며 건강도 나빠졌다.

배씨는 "한번 노숙을 시작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첫 노숙은 '어영부영' 지냈다가, 두 번째 노숙 때는 '짤짤이' 혹은 '꼬지'라 불리는 교회나 성당에서 나눠주는 구제금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노숙 생활에 젖어든 것이다.

두 차례의 노숙 시간만 10년이 넘는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지인의 소개로 한국자활복지개발원의 희망포인트라는 만성화된 거리노숙인특화자활사업에 참여했다.

그 사업을 통해 몸이 불편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고,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도 들었다. 한자 검정시험에도 처음으로 도전, 만점으로 합격을 따냈다. 배씨는 "살아가면서 미래, 혹은 나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희망포인트와 인문학 과정 등을 거치며 어느새 그런 상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10명의 노숙인이 있다면 8명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게 배씨의 말이다. 술이나 돈, 혹은 인간관계에서 고충을 겪었기에 거리로 나서게 됐다는 이야기다.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오랜 노숙을 했던 그가 자활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타인의 '기대'였다. 배씨의 경우 지속적으로 찾아와 격려해주는 지인이 있었다. 그는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다지만 용기와 격려가 중요하다"며 "사람은 '누군가 날 보고 있구나' 이런 마음만 생겨도 열심히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배씨는 경기 시흥의 '매입임대주택'(공공 등에서 매입해서 취약계층에게 임대로 지원하는 주택)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이제 술은 끊었냐는 질문에 그는 "다 끊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후배들을 위해서 '모범'이 되려고 한다"고 답했다. 노숙인주민자치회 반상회의 서기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는 그는 자신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노숙인들에게 기회가 더 이상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는 "가서 술 마시고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면 이웃들이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겠나"라며 "도움을 주고 싶어도 '이 사람들 안 되겠구나'라고 여기지 않게 몸 관리 잘 해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언론사가 노숙인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배씨는 이렇게 당부했다. 매일매일 지면에 노숙인이 나올 수는 없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심층 분석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만큼 노숙인에게 '계속 지켜보고 있다'라는 메시지도 주고, 여론이 모여 지원 정책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문점승씨, 50대 후반에 딴 자격증을 쥐고

과거 노숙 생활을 했던 문점승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서울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전혼잎 기자

과거 노숙 생활을 했던 문점승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서울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전혼잎 기자

"선생님도 공부 좀 하세요."

알코올 사용 장애(알코올 중독)로 노숙생활을 하던 문점승(64)씨가 겨울철 한파를 피하려 들어간 재활시설의 '새파랗게' 젊은 스태프로부터 들은 말이다. 나이 많은 어른을 놀리는 소리로 들은 문씨는 벌컥 화를 냈고, 결국 스태프를 울렸다. 아차 하며 달래준 다음날부터 두 사람은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 2009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다.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만 무려 7년의 여정이었다.

문씨는 노숙인 자활에서는 유명 인사다. 지금도 '세상에서 술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그는 술 때문에 2000년 초 노숙을 시작했다. 알코올 문제로 긴급 치료를 받거나 정신병원 폐쇄병동 신세도 여러 차례 졌다. 거리를 떠돌던 문씨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A)이라는 이름의 단주 모임을 통해 술을 끊었고, 요양보호사와 중독치료전문가,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얻었다.

2012년에는 헤어졌던 가족과도 다시 만나 지금은 강원 춘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언뜻 '모범적인' 노숙인 자활 사례로 보이지만, 매 순간마다 고비가 존재했다. 재활시설에서 자격시험에 합격했다고 '고생 끝 행복 시작'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을 때 문씨는 이미 50대 후반이었다. 그의 삶이 담긴 이력서를 보고 다들 '대단하다'라고 치켜세웠지만, 채용하겠단 복지시설은 없었다.

문씨는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시설에서도 대학교 갓 졸업하고 일 시키면 빨리 해내는 사람을 뽑고 싶지, 아버지뻘 연배의 사람을 쓰고 싶겠어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시설에서 나와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사회복귀에 임했다"는 문씨는 수십 번의 낙방으로 우울증마저 생겼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실태조사에서도 노숙인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취업의 문은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다시서기센터에서 소개한 공공근로로 서울역 노숙인 상담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춘천의 요양병원에 연이 닿았다.

누구에게나 해결해야 할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씨의 말이다. 자신의 경우 "술만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며 "어떤 사람은 경제 문제, 또 누구는 가족 관계 등 사회로 복귀하려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자활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문씨는 "1년 365일 한 잔의 술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최고였는데 A.A모임에 가니 한 달, 1년에 술을 한 잔도 안 마셨다는 사람들이 있더라"며 "'저 사람들은 되는데 나라고 왜 안 될까'라는 생각에 금주를 시작했다"고 했다.

문씨는 "노숙인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노숙인을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지 말고 어떤 문제적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달라"라는 것. 노숙인도 그저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 서울역 길거리에 누워 계신 분에게 가서 얘기한다고 바로 닫힌 마음이 열리지는 않겠죠. 하지만 계속 두드리고 자극을 주면 사실 마음속엔 언제라도 열릴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숨을 쉬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요."

③김중기씨,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후에

15일 대전 동구의 대전역 앞을 오가는 시민들 옆에 노숙인(맨 왼쪽)이 앉아 있다. 지난해 기준 대전에는 41명의 거리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혼잎 기자

15일 대전 동구의 대전역 앞을 오가는 시민들 옆에 노숙인(맨 왼쪽)이 앉아 있다. 지난해 기준 대전에는 41명의 거리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혼잎 기자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라는 이유로 14일을 집에서 격리하게 됐어요. 홀로 하꼬방(판잣집)에 있으려니 나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집을 두고 그냥 나와 버렸어요."

부산에서 건설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김중기(가명·53)씨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었다.

경기도의 한 컴퓨터 학원에서 설계소프트웨어인 오토캐드 등을 가르쳤지만 건강 악화와 사업으로 진 빚으로 인해 고향 근처로 온 상황이었다. 이 시기와 맞물려 통장까지 압류되면서 삶의 희망이 서서히 사라졌다고 김씨는 전했다.

격리된 채로 보증금도 얼마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지내며 무기력함을 느끼던 그는 지난해 9월 거리로 나섰다. 반쯤 읽던 책 '사피엔스'를 포함해 모든 세간살이를 그대로 둔 채였다.

발 닿던 대로 움직이던 김씨는 부산에서 대전역 지하상가까지 흘러왔다. 지하상가에서 잠을 자던 그에게 어느 날 대전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사회복지사가 말을 걸었다. 노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어가던 시기의 일이었다.

김씨는 "처음에 노숙인 일시 보호시설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갈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연락은 끊겼지만 살아계신 노모의 얼굴이 아른거려 더 이상 불효를 할 순 없다는 생각에 결국 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빚이라는 게 내가 사라진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피를 따라간다는 거예요. 가족이든 사촌, 팔촌이든 남는다고. 피하지만 말고 파산이나 개인 회생을 통해 회복을 하라기에 정신이 들었죠."

김씨는 거리노숙인특화자활사업을 통해 듣게 된 신용 회복 교육에서 이런 말을 듣고 파산 신청을 하게 됐다. 파산 등의 절차는 이전에도 알았지만, 사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던 시절에는 이런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실제로 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인의 절반에 가까운 48.4%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의심된다.

또 관련 사업에서 정신건강 관리 및 목공과 인문학 수업 등을 들으며 그는 점차 삶의 의지를 찾았다. 김씨는 "시설에서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울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지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센터에 들어오고 요양보호사, 지게차 운전, 대형 운전면허까지 자격증 3개를 취득했지만, 신용 문제로 취업은 아직 쉽지 않다. 김씨는 앞으로 대형 견인차를 모는 면허를 따 해당 분야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거리노숙인특화자활사업'이 시범사업이라기에 너무나 아쉬웠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이 사업이 정식사업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노숙을 하기 전엔 몰랐지만 대전에만 해도 역 주변이나 시장, 마트, 동사무소 어딜 가든 길가에 캐리어를 끈 채 앉아 있는 사람이 보여요. 이분들도 저처럼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면 평범한 삶을 되찾지 않을까요."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①노숙인 거리상담에 동행하다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③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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