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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에서 정치 프레임 걷어내고 탄소중립 선도국 돼야”

입력
2022.12.08 17:00
수정
2022.12.08 18:08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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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의 응시] 유가영 경희대 교수

지난달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예정된 폐막일을 이틀 넘기면서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극적으로 이뤄진 합의에 “역사적인 진전”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장 달라지는 건 없다. 보상을 위한 재원 부담을 어느 나라가 얼마나 질지 정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발생한 어떤 종류의 피해를 보상할지 논의도 이뤄지지 못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덮어놓고 끝낸 셈이다. 더구나 기금 조성 이외에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100년까지 섭씨 1.5도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채택한 걸 지난해에 이어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석탄 사용 단계적 감축을 화석연료 전체로 확대하자는 결의를 이끌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이대로는 목표 달성이 위태로운 걸 모두가 알면서도 말이다.

COP27 기간 동안 발표된 전 세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꼴찌에서 네 번째를 기록했다.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한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매우 불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부끄러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산업 구조나 좁은 국토 같은 핑계로 넘기기엔 이제 면이 서지 않는다. 기후변화 위기가 코앞이라 시간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도 활동 중인 유가영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를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났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가 “중장기 기후대응 정책에 좀 더 야심 찬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협정 이전의 세계 기후협상 체제인 교토의정서 공약기간부터 국내외 기후 전문가들과 교류와 연구를 이어온 그는 “기후 정책에 정치 프레임을 씌우지만 않아도 좀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절박한 기후위기 대응에 정치가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냐는 일침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 축소 아쉬워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에서 만난 유가영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은 세계적 흐름이면서 인류 생존의 문제”라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의지를 보여주며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에서 만난 유가영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은 세계적 흐름이면서 인류 생존의 문제”라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의지를 보여주며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합의가 COP27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앞으로 진행될 보상 논의에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나.

“손실과 피해 보상 이슈는 기후변화 협약이 처음 채택된 1992년부터 시작됐다. 30년 만에 드디어 기금 조성에 합의했으니 개도국들에겐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도 COP 현장에선 개도국이 기후변화에 따른 홍수 피해를 주장하면 선진국은 근거를 대라는 요구만 반복해왔다. COP27이 대의명분에 따라 경제적 측면에서 기금 조성에 합의하긴 했지만, 앞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데는 과학적 논란이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손실과 피해에 얼마만큼의 돈을 지불할 거냐를 결정할 때 선진국은 불확실성 감소를, 개도국은 포괄적 지원을 요구할 테니 과학적 근거가 민감한 부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운 교토의정서 체계 때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OECD에 가입하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빠르게 늘면서 책임이 커졌다. 기후 대응 의무를 선진국과 개도국에 함께 지우고 모든 나라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는 현행 파리협정 체계에서 한국은 스위스, 멕시코, 모나코 등과 함께 ‘환경존엄성그룹(EIG)’에 속한다. 선진국과 개도국 양쪽 입장을 대변하는 가교 역할을 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를 잘 활용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제 과학자그룹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는 최근 한국을 탄소 배출량 2년 연속 세계 10위로 평가했다. 국제 평가기관 저먼워치, 기후 연구단체 뉴클라이밋연구소가 COP27 기간 중 공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3)에서 한국은 60개국 중 57위로 분류됐다. 책임 있는 역할은커녕 국내외 환경단체들로부터 ‘기후악당’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다.

“파리협정 이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운 좋게 책임을 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젠 탄소 배출량 세계 10위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대로라면 CCPI도 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온실가스 배출량, 재생에너지 비중, 에너지 소비, 기후 정책의 4가지 평가 부문 모두 단기간 안에 좋아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운 점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원자력발전 비중을 늘리고 신재생에너지를 줄인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지난해 발표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의 23.9%에서 32.4%로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2%에서 21.6%로 낮춘다는 것이다. 현실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 비중 상향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춘 건 너무 아쉽다. 대내외적으로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를 표명한다는 의미도 적지 않은데 굳이 줄여야 할 필요는 없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근 RE100 가입을 잇따라 선언하고 나섰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 캠페인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율 참여지만,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 EU(유럽연합)는 수입 제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해 세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유럽에 수출하려는 철강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RE100이 관세처럼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RE100을 따라가는 세계적 흐름과 엇박자를 내고 있으니 국가가 기업들의 변화를 받쳐주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부로선 물론 현실성도 정책에 중요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2년마다 갱신하는 중장기 계획인데 도전적으로 설정할 수 있지 않나.”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현재 국내 전체 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0%에도 못 미친다. 마른 수건 쥐어 짜는 식으로 다 끌어 모은다 해도 늘릴 수 있는 수치가 얼마 안 될지 모른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자원과 돈, 기술의 삼박자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우린 자원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돈과 기술이 필요한데, 역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연료전지나 수소경제 분야를 좀더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심각한 걸림돌은 신재생에너지가 정치 이슈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탈원전은 전 정부, 친원전은 현 정부, 신재생 확대는 전 정부, 축소는 현 정부 이렇게 프레임이 짜여 버렸다. 원전 발전 비중을 늘린 걸 놓고 과학적 근거를 따져보지 않고 프레임으로만 보려 한다. 지난 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걸었던 수소경제는 이번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가야만 하는 길이고, 정치적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정치 프레임에 묶여 있다. 이것만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에너지나 탄소 정책이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치 프레임이 아닌 과학과 국익의 관점에 기반한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돈 있어도 기후위기 못 피한다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연구실에서 유가영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5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연구실에서 유가영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COP27이 단계적 감축 대상을 석탄에서 화석연료 전체로 확대하는 데 실패한 게 뼈아프다는 지적이 많다.

“온실가스 감축 전략에 ‘심층 탈탄소화(deep decarbonization)’라는 표현이 있다. 성과 내기 쉬운 수단만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 한다면 2100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못 맞춘다는 개념이다.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열매만 취하고 높은 곳의 열매 따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열매를 아예 못 먹는 상황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처음부터 2100년을 목표로 정책 방향을 잡고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COP27이 감축 대상을 화석연료 전체로 넓히지 못한 것은 심층 탈탄소화와 거리가 있다. 탄소중립의 과도기적 수단으로 LNG(액화천연가스)에 의존하려는 움직임이 그런 예다. 석탄발전 폐지 방향으로 가는 동안 LNG를 사용하며 시간을 벌고 그 이후에 신재생에너지로 가겠다는 것이다. LNG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석탄의 절반, 석유의 4분의 3 정도다. 석탄을 LNG로 대체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온실가스가 감축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LNG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과도기적 수단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더 큰 목표를 봐야 한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심각한 위기로 여기지 않는 나라들이 많은 건가. 도대체 얼마나 더 나빠져야 각국이 실질적인 대응에 나설까.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100년까지 1.5도로 제한하려면 2050년에는 탄소중립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2030년까지 2010년에 발생한 탄소의 45%를 줄여야 한다. 파리협정으로 각국이 제안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빠짐없이 실천한다 해도 2100년 상승 폭은 2도를 넘는다. 지금의 목표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더 죽기 살기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파리협정 목표를 ‘미신과 같은(totemic) 1.5도’라고 했을까.

코로나19 대유행은 세계인 모두의 자유를 구속했고 엄청난 희생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희생을 수용했다. 신종 전염병이 부자건 가난하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그렇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피해 갈 수 있었다. 위기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돈으로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문제가 심각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꺼지지 않는 산불, 삶을 위협하는 폭우 등이 바로 내 일이라고 느끼는 때가 온다는 얘기다. 그때 대응을 시작하면 당연히 늦다.

물론 지금도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전등 끄기나 대중교통 타기 말고 뭘 더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개인들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일상생활과 경제 속에 ‘환경 가치’가 파고들어야 한다. 가령 아파트 가격에 녹지 면적이나 제로에너지 기술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도록 한다면 다소 막연했던 기후 대응 방법이 더 많은 이들에게 와닿을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별 탄소 배출량 산정 준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5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컨벤션센터 입구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샤름 엘 셰이크 AFP=연합뉴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5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컨벤션센터 입구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샤름 엘 셰이크 AFP=연합뉴스

-COP27에서 메탄 감축 서약의 참가국이 105개국에서 150개국으로 늘었다. 2030년까지 세계 메탄 배출량을 2020년 대비 30% 감축하자는 건데, 탄소와 별개로 서약을 추진한 배경이 궁금하다.

“100년 동안 지구 기온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는 1인데 메탄은 25~29나 된다. 20년 기준으로 메탄의 지구온난화지수는 80이 넘는다. 가까운 미래일수록 이산화탄소보다 메탄을 줄이는 게 온난화 억제 효과가 더 큰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메탄 감축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메탄은 석유 채굴 같은 산업 현장 외에 농장이나 논에서도 배출된다. 발생량의 약 40%가 농·축산 부문에서 나온다. 국내에선 논에 물을 얕게 대거나 중간중간 빼주는 방식으로 메탄 발생을 줄이고 있다. 메탄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 물이 차 있는 논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탄소 저감 실효성을 높이려면 국가 전체 총량이나 부문별 배출량뿐 아니라 지역별 발생량도 측정할 필요가 있다. 총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저감도 있지만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을 활용해 탄소중립지원센터를 만들고 있다. 이 센터를 통해 지자체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그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제도적 근거를 만들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탄소 흡수를 나무에 의존한다. 국내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2018년 기준 약 8,000만 톤인데, 2050년이면 2,300만 톤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나무가 나이 들면 흡수량이 뚝 떨어져서다. 나무를 대체할 흡수원으로 토양이 주목받고 있다. 유기물이 많은 밭을 갈아엎지 않거나, 나뭇가지와 작물 찌꺼기 등을 숯 형태로 만들어 땅 속에 넣어두면 토양에서 탄소가 오랫동안 저장되게 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을 조언한다면.

“탄소중립의 근본 목표는 기술이 아니라 생존이다. 선진국을 따라 하거나 끌려가는 소극적 태도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인류에 대한 책임감이 기후 대응을 선도하는 자부심과 리더십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

임소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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