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셜록 홈즈 말고 에놀라 홈즈! [세상의 관점]

입력
2022.12.07 17:00
0 0

<13>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2'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허스펙티브'는 평등하고 다정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세상의 관점'은 이혜미 기자가 직접 보고 읽고 느낀 콘텐츠를 추천하는 허스펙티브 속 코너예요.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한눈에 허스펙티브의 풍성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Letter/herspective.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는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셜록 홈즈'의 주인공에게서 '같은 재능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는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셜록 홈즈'의 주인공에게서 '같은 재능을 가진' 여동생이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넷플릭스 제공

셰익스피어가 이를테면 주디스라고 불리는 놀랄 만한 재주를 가진 누이동생을 두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를 상상해보기로 합시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中

버지니아 울프는 페미니즘의 고전 '자기만의 방'에 희대의 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을 상상하여 등장시킵니다. "오빠만큼이나 모험심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세상을 알려고 열망하였"으나 "아무도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남은 미래란 결혼과 출산밖에 없었던 여성을 말이지요. 울프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재능을 갖고도 끝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히는 주디스의 결말을 상상합니다.

울프의 에세이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여성의 권리가 조금도 보장되지 않았던 1600년대의 현실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오늘날 넷플릭스에서 재현된 셜록 홈즈의 누이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한 운동이 한창이고, 열악한 노동 환경때문에 여성 노동자의 목숨이 촛불처럼 쉽사리 꺼지던 영국 근현대 빅토리아 시대. 당시 이름난 탐정 '셜록 홈즈'의 누이 '에놀라 홈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제약하는 사회문화적 한계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2020년에 개봉한 '에놀라 홈즈'가 속편인 '에놀라 홈즈 2'로 돌아왔습니다. 전편에서 에놀라는 조신하게 웃고 코르셋을 조이는 법을 배우는 신부수업 기숙학교를 탈출해 홀로 런던으로 떠나 좌충우돌 사건을 해결하는 캐릭터였습니다. 여기서 성장한 에놀라는 속편에서 '진짜 탐정' 추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혈혈단신으로 집을 떠나 런던에 자리를 잡은 에놀라가 자신의 이름을 딴 탐정사무소를 차리거든요.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기껏 탐정 사무소를 찾은 손님들은, 에놀라를 보고선 '이렇게 어린 여성이?'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죠.

'에놀라 홈즈2'에서 에놀라는 본격적으로 탐정 활동을 한다. 넷플릭스 제공

'에놀라 홈즈2'에서 에놀라는 본격적으로 탐정 활동을 한다. 넷플릭스 제공

파리만 날리며 사무실 임대료도 제대로 내지 못할 처지에 놓인 에놀라에게, 꼬마 손님 베시가 나타나 사건을 의뢰합니다. 성냥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 새러를 찾아달라며 말이죠. 단순한 실종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도 쉽게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사실 새러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던 성냥공장에서 일어나던 인권 침해의 증거를 훔쳐 고발할 계략을 세우고 있었죠.

사실 이 에피소드는 영국 역사에 기록된 '매치걸스 스트라이크(Matchgirls' Strike)'라 불리는,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1888년 실제 파업을 모티프로 합니다. 새러 역시 이 파업을 주도한 실존 인물 '새러 채프먼'의 서사에 기반을 둔 등장인물이고요. 성냥에 바르는 백린으로 인해 인중독성 괴사가 여성 노동자들 사이에 유행하지만, 이윤을 먼저 생각한 성냥공장주는 이를 은폐하고 방치합니다. 새러는 자본가의 부도덕한 행위를 눈치채고, 증거를 확보해, 세상에 알리고, 파업을 주동한 인물입니다.

영화는 '셜록 홈즈에게 같은 재능의 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허구적 상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전편의 주된 소재인 '여성 참정권 운동'과 마찬가지로 속편도 '여성 노동자 파업'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합니다. 영화는 여성 권리투쟁의 역사와 더불어 주인공 에놀라의 성장이 교차하며 점점 확장되는 세상을 담습니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놀라는 이처럼 독백하는데요. 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주는 이 문장이야말로,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인생은 제 거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죠. (My life is my own. And the future is up to us.)

'에놀라 홈즈' 中 에놀라의 대사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